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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우 Dec 20. 2018

월간 김창우 : 2018년 12월

산책


요즘 일상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은 하루 두 번의 산책이다.


두 달 전엔 하루 2천 보 걷기도 힘들었다. 조금 컨디션이 좋게 느껴졌던 날, 100m 정도를 야심 차게 뛰어 봤는데, 그다음 날까지 누워 있어야 했다. 운동이 아닌 재활이 필요한 몸뚱아리였다. 그래도 아주 조금씩 걷는 거리를 늘려 나갔고, 이젠 정상인의 상징인 하루 만 보를 걷게 되었다. 8km 정도 되는 거리. 그중 700~1,000m는 뛴다. 이젠 뛰어도 드러눕지 않는다. 지난 몇 달 왕숙천 산책길이 나의 재활을 뿌듯하게 지켜봤다.


혼자 으쓱해하고 있는데, 하정우의 인터뷰 기사를 봤다. 매일 하루에 3만보를 걷는다고. 하정우 나이를 찾아봤다. 나보다 2살 어리네. 그래도 이제부터 형이라 불러야겠다. 싸움 잘하는 동갑 효도르도 형인 것처럼, 하루 3만보 걸으면 형이지.


가끔 지영이도 함께 걷는다. 

지영이도 우리 동네 산책로를 참 좋아한다. 둘이 걸으며 이런 대화를 나눴다.


지영 : 이 동네로 이사오길 정말 잘한 것 같아. 산책로 너무 좋아. 진짜 뉴욕 같아.

나    : 뉴욕에 가봤니?

지영 : 아니...


한 번도 뉴욕 안 가본 사람조차 뉴욕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곳, 남양주 왕숙천으로 오세요.

 

우리동네 뉴욕 산책길



응답하라 1995


모두 나이가 43이 되었지만, 우리에게도 응답하라 시절이 있었다.


2013년, '응답하라 1994' 첫 방을 보면서 우린 엄청나게 흥분해서 단톡방에 모였다. 

이건 우리 이야기라고. 

90년대 중반, 신촌에서 살면서 함께 사투리와 촌스러움을 벗어 던지며 젊음을 나누었던 친구들. 

비주얼을 담당하던 칠봉이는 당연히 나였고, 쓰레기, 삼천포, 해태, 나정이, 도희 모두 우리 이야기였다.


접속 장소는 미국, 일본, 서울, 부산으로 뿔뿔이 흩어져 있었지만

우린 몇 년째 끝없는 수다를 떨고 있다.

지금 이 단톡방은 개미지옥이 되어, 아무도 나가지 못하는 곳이 되었다.


그 응답하라 친구들을 오프라인으로 5~6년 만에 만났다.

나의 병문안이었는데,

마침 미국과 일본에 5년씩 나가 있던 친구들이 들어왔고,

부산 친구들은 ktx를 타고 기꺼이 올라왔다. 

부산 아줌마 둘, 제주도 대표님은 함께 하지 못했다. 이들은 안왔다고 두고두고 씹히고 있다.


정말 오랜만에 3시간 수다를 떨었다.

삼성, LG, SK의 부장님들, 수학 전공해놓고 이젠 영어를 잘하는 사모님, PD, 학교 교무부장, 고깃집 사장님.  

타이틀은 모두 많이 바꼈지만, 대화 소재와 수준은 95년 신촌 술집에서 밤새워 놀던 그 때 그대로다. 

3시간 수다 후, 친구 집을 옮겨 다닌 2차와 3차 자리도 가고 싶었지만

내 몸이 놀랠까 봐 참았다.


친구들아, 반가웠다. 멀리서 와줘서 고맙고, 응답하자 1995!


이제 어플 없이는 사진 못찍는 나이들



반려남편


가족들에게 의미 있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8월부터 11월까지 4개월의 투병 기간 동안, 조금씩 글을 썼다.


기쁠 때 기뻐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극한으로 힘들고 아프고 두려운 일상 속에서도 소소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것다는 것을

가족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 글들의 모음이다.


정식 출판이 아니라, 8부 소량 인쇄로 가족들에게만 선물했다.

세상에 8부 밖인 초레어템인데, 하루만에 집에서 굴러 다닌다. 남편이 공들여 쓴거다.


제목은 글 쓰기 전부터 '반려남편'으로 정했었다. 마음에 든다.

"... 반려 남편, 지금 딱 내 상황이다. 가족의 사랑과 보살핌이 없으면 하루도 버티기 힘든..."




아듀, 2018


2018년, 조금 일찍 끝내자.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던 3번의 하와이 여행을 담은 '하와이 패밀리' 책을 내고

본격적으로 마케팅, 홍보란 걸 해보려던 찰나에, 병원에서 큰 병을 선고받았다.

막장 드라마도 이렇게 쓰면 성의 없다고 욕먹을 듯.


2018년 상반기는 책을 썼고,

2018년 하반기는 투병 생활을 했다. 그리고 반려 남편을 끄적였다.

이게 2018년 내 기억의 전부다.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난 한 뺨 더 성장했고 우리 가족은 조금 더 단단해졌다.


애증의 2018년을 마음속에서 떠나보내는데, 열흘 정도의 시간은 필요할 것 같다.

그래서 나의 2018년은 오늘 끝낸다.

훗날 올해를 어떻게 기억할진 모르겠지만, 참 감사한 시간이었다.

말에서 심하게 떨어졌는데, 땅바닥에서 지갑을 주은 것 같은 한 해.

지갑은 훗날 열어보겠다. 잘가라. 이제 작별이다.


마지막 남은 숙제는 2017~2018년 영화를 300편 보겠다는 다짐인데,

현재 스코어 294편을 봤다. 2019년 첫 글은 영화 300편 리뷰가 될 듯.


몇 개월간 연락도 못드렸지만, 여전히 내 삶 근처에 머물며 

응원하고 기도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모두 2018년 마무리 잘하시고, 행복이 가득한 2019년을 맞이하세요.

그리고 가족 모두 건강하시길.


안녕,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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