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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창우 Aug 25. 2018

월간 김창우 : 2018년 8월

수술 후 6주가 흘렀다.


'월간 김창우 : 2018년 7월' 글로 수술 관련 글을 올린지도 3주가 훌쩍 지났으니 내 근황에 대한 업데이트가 필요한 시점이다. 사실 8월은 그냥 건너뛸까도 생각했다. 최근 내 삶을 지배하던 3개를 한 방에 제거한 삶을 살고 있다. 빼곡하던 스케쥴러, 숫자들이 가득한 엑셀,  그리고 전자파. 이 중 전자파는 과학적 근거는 전혀 없는 것 같긴 하지만, 뇌종양의 원인 중 하나일 수 있다는 글을 접한 후 "그래, 이것 때문이라 치자"며 멀리하고 있다. 핸드폰과 노트북은 내 동선에서 떨어뜨려 놨다. 몇 시간에 한 번씩만 확인한다. 그러다 보니, 오다가다 핸드폰으로 초안을 써놓고 노트북으로 업로드하는 글쓰기 습관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다. 그래서 8월은 건너뛰려 했다. 얼마나 건강한 핑계인가.


주말을 맞아 지영이가 지우, 지아를 데리고 키자니아로 떠났다. 나보다 더 힘든 하루하루 일정을 소화 중인데, 난 집에서 좀 쉬라며 조용하고 시원한 집을 남겨주고 떠났다. 이 시간을 집에서 늘어져서 낮잠이나 영화로만 보낸다면 뭔가 동업자 정신에 어긋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노트북을 켜고, 브런치에 접속한 다음, 제목에 '월간 김창우 : 2018년 8월'이라고 써넣었다. 나의 8월을 담담히 만나는 시간을 가져보자.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7월 말 퇴원 후 집에서 1주일 요양하고 곧바로 방사선 치료를 시작했다. 2주 후에 시작할 거라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일주일 빨리 시작했다. 매일 10분 정도의 치료를 위해 남양주에서 세브란스를 통원하고 있다. 총 30회 차 중 이제 14회 차가 마무리되었다. 정말 오래 한 것 같은데 아직 반환점도 돌지 않았다니. 방사선 치료 자체는 힘들지 않은데 횟수가 누적될수록 부작용들이 나오기 시작한다.


우선 코가 상당히 민감해졌다. 주요 치료 부위인 뒤통수와 코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무감각하게 40년을 살아온 내 코가 갑자기 활성화되었다. 마음은 지코인데, 현실은 개코라니.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데 누군가가 저 멀리 냉장고 문을 열면 이내 냄새가 우회전 두 번 하고 내게 다가와 코를 후벼 판다. 이 과정에서 코털들은 아무런 역할을 못한다. 냉장고를 청국장, 마늘, 홍어, 두리안, 취두부, 고수 등으로 꽉꽉 채워 넣은 것도 아니고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내용물들인데, 냄새들은 각자의 역한 부분들만 뒤섞어 캡슐 모양으로 뭉쳐진 후, 내 코에 쏘옥 들어와 터져버린다. 길거리에서 나 우연히 마주치면 트림은 제발 말아주길. 일주일간 뭐 먹었는지 모조리 다 맞춘 후 절교하자고 할 테니.


지영이의 설명에 따르면, 여자들이 임신하면 딱 이렇단다. 그동안 지영이가 임신하고 냄새에 민감하게 반응할 때 빈말로라도 진심 어린 걱정을 안 해줬던 것 같아 미안해졌다. 이런 기분이구나. 세상의 모든 남자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개코로 좀 살아보니, 이거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임신한 와이프가 먹고 싶다는 거 다 사주고, 매일 구석구석 빡세게 샤워해서 인간 페브리즈가 되길. 그리고 지하철을 탈 때 본인이 냄새가 난다 싶으면 감히 임산부석 근처에 서성이지 말길.


두 번째, 개코의 연장선상에 있는 증상이겠지만 입맛이 없다. 그것도 더럽게 없다. 건강식 위주로 먹다 보니 살이 5kg 정도 빠지길래 일단 방사선 치료를 받는 동안엔 체력과 몸무게를 유지하자며, 먹고 싶은 음식들을 무조건 많이 먹고 보는 걸로 기조를 바꾸었다. 그래도 개코와 식어버린 혀를 아래위로 장착한 상태에선 먹고 싶은 메뉴도 떠오르지 않았다. 억지로 먹고 싶은 음식들을 추려 보았더니,


딤섬, 고춧가루 팍팍 뿌린 자장면, 베이징 덕, 밀탑 팥빙수, 벽제갈비 양곰탕, 훠궈, 마라탕, 복숭아, 체리, 수박, 맥도널드 더블 쿼터파운드 치즈 세트, 연양갱, 하와이 훌리훌리 치킨, 버터 듬뿍 바른 프렌치토스트, 계란 입힌 김밥, 쌀국수, 잔치국수, 홈런볼, 꿀과배기, 콜라, 고딩 때 뺏아먹던 친구들 반찬 정도였다. 양심이 있어서, 라면, 검게 탄 바비큐 고기랑 쥐포, 바닐라 라떼, 양념 반 후라이드 반, 와인 등은 언급하지 않았다.


세 번째, 현기증과 두통이다. 갑자기 몸을 움직이거나 뇌압이 높아지는 상황이 생기면 이 둘이 사이좋게 따라온다. 이건 몸의 움직임을 최대한 자제하는 걸로 1차 예방을 하지만, 조금 지속될 경우 진통제로 해결한다. 그동안 시계의 초침처럼 남들보다 빠릿빠릿하게 움직였다면, 요즘은 분침처럼 지금 움직이고 있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천천히 움직인다. 원래 난 생각은 안단테로, 행동은 비바체로 하는 것이 익숙하지만, 이젠 안단테로 통일하고 있다.  


네 번째, 방사선의 베스트 프렌드인 탈모다. 난 탈모가 서서히 진행되는 건지 알았다. 3주 차 정도부터 빠지기 시작할 거라는 이야기만 들었는데, 3주 차가 되니 하루아침에 머리가 몽창몽창 빠지기 시작했다. 머리야 내가 두상 깡패라 크게 신경을 안 썼지만 손에 한 뭉큼씩 빠지는 머리카락을 보면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게다가 내 머리카락들은 심한 곱슬이라, 내가 봐도 참 꼴 보기 싫게 생겼다. 그리하여 지금은 힙하고 트렌디하고 용기 있는 젊은이들이 꿈꾼다는 골룸 헤어스타일이 완성되었다.


방사선 치료는 후반부로 가면서 이런저런 부작용들이 더 추가되면서 컨디션이 계속 우하향한다고 하는데, 6주라는 긴 시간이 주는 압박감이 가장 큰 것 같다. 이제 겨우 절반 정도를 했는데, 남은 3주는 어떤 괴물들이 숨어 있을지. 그래서 오늘 산책을 하면서 이미 받은 절반의 치료를 지워버렸다. 남들은 6주간 치료받는데, 난 별 거 아니라 앞으로 3주만 받으면 되는 걸로 치기로. 6주는 길지만 3주는 버틸만하잖아. 그래서 주말에 컨디션과 기분을 최대한 회복해서, 다음 주부터 3주간 깔끔하게 치료받자. 콜라 한 캔 원샷하고 쌍쌍바 하나 시원하게 먹고 나면 컨디션 딱 좋아질 것 같지만, 고딩 때 집에 혼자 있다고 문 걸어 잠그고 청불 영화를 보는 것처럼 그런 양아치짓은 하지 말자. 10월이 되면 몸은 정상 괘도로 올라오겠지. 새싹 같은 검은 머리들도 다시 나기 시작할 테고. 바라옵건대 이번엔 제발 반곱슬 정도로 나타나주길.




나의 하루 일과는 이렇다.


아침에 7~8시쯤 눈을 뜬다. 물론 새벽에 세네 번은 깨서 뒤척이지만, 그래도 수면시간 중 꿀잠 비중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아침을 먹고 아이들 등교와 등원을 돕는다. 지우는 이제 손이 거의 가지 않지만 지아는 미적거리기 선수라, 등원 준비를 돕는데 상당한 시간과 인내력이 필요하다. 밥 먹이고 씻기고 옷 입고 유치원까지 데리고 가서 어색한 배꼽인사로 헤어지는 데까지 두 시간은 걸린다. 모든 상황이 종료되고 집으로 돌아오면 거의 10시쯤 된다.


그 때부터 한 시간 정도 책을 본다. 독서 컨디션은 지금이 라이프 베스트다. 독서력이 정점을 찍었던 고 1~2 때보다 더 집중이 잘되는 것 같다. 바쁜 일상 속에서 책을 볼 땐 속독을 주로 했다면, 요즘은 한 자 한 자 정독을 한다. 정독을 해보니 그동안의 속독은 숙제처럼 책을 읽었다는 티를 내기 위한 요식행위였던 것 같아 반성도 되었다.


그리고 11시쯤엔 집을 나선다. 매일 오후 1시 45분에 방사선 치료가 잡혀 있다. 남양주에서 세브란스까지는 정말 멀다. 처음에는 장모님께서 라이드를 해주셨는데, 이번 주부터는 혼자 다닌다. 강변역까지 카카오 택시를 타고 가서 2호선을 탄다. 그리고 12시쯤 신촌이나 을지로 쪽에서 지영이를 만난다. 아침저녁은 건강식으로 먹지만 점심만큼은 둘이서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니기로 했다.


지난 열흘 간 지영이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베이징 덕 두 번, 자장면, 햄버거, 연양갱, 딤섬, 쌀국수와 고수, 메밀국수, 물냉면, 비빔냉면, 계절밥상, 계란 입힌 김밥, 프렌치토스트를 먹고 간식으로 복숭아, 체리, 수박을 먹었다.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을 먹을 땐 고맙게도 개코의 활동은 잠시 멈추었다.


점심을 먹고 둘이서 산책을 하며, 이제는 내 집 같은 세브란스에 1시 30분쯤 도착하면 병원복으로 갈아 입고 잠시 대기 후 방사선 치료를 받는다. 치키치키치키~하는 기분 나쁜 기계 소리와 플라스틱이 타는 듯한 오존 냄새가 다시 개코를 괴롭히지만, 토모테라피 기계 안에 들어가면 끝날 때까지 차분히 기도를 한다. 아멘.


치료가 끝나면 과일이나 잠바쥬스 스무디로 간식을 먹은 후 셔틀을 타고 신촌역으로 가서, 지영이는 다시 사무실로 들어가고 난 집으로 향한다. 집에 도착하기 전, 유치원에 들러서 지아를 픽업해서 같이 들어온다. 집에 도착하면 이게 뭐라고 나름 녹초가 된다. 그러면 난 진통제를 하나 먹고 낮잠에 빠진다. 낮잠 시간을 제외하면 오후 시간은 계속 책을 읽는다.


그리고 지영이가 퇴근해서 오면 저녁을 먹는다. 여전히 식사시간이 가장 힘들지만 꾸역꾸역 한 그릇은 먹는다. 식사 후 온 가족이 30분 정도 산책을 한다. 우리 동네에 참 길고양이들과 까치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도 산책로에서 '뱀 출몰지역'이란 푯말을 보면, 나름 수도권에 살고 있다는 자부심이 무너진다. 우리 가족 산책 시 뱀이 나오면, 골룸이 처치하리라.


집에 돌아와서 각자 뒹굴거리는 시간을 가진 후 9시에 온 가족이 거실에 둘러앉는다. 지영이가 하루에 10여분씩 성경을 읽어준다. 다 읽고 나면 한 명씩 돌아가며 이야기를 나눈다. 지아도 이런 류의 리스닝과 대화에 이제 곧잘 따라온다. 그 후에 마지막으로 네 명이 손을 잡고 돌아가며 기도를 하며 하루의 공식일정을 마친다. 10시쯤이면 온 가족이 잠자리에 든다.


이런 하루하루의 무한 반복이다.




난 사람을 볼 때 바닥의 깊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좋을 때 에너지가 넘치고 주변 사람들에게 나이스 한 건 누구든 할 수 있다. 물론 그 영역도 개인차가 심하여, 어떻게 저런 에너지가 나올까, 어쩜 저렇게 즐겁게 살까 싶은 사람들도 분명 있다. 그런 사람들은 리스펙트한다. SNS나 일터에서 보이는 개개인의 모습들은 맥주 거품기로 만든 맛있는 크림 거품과 같다. 나 또한 거품이 예쁜 편이다. 맥주 거품이 걷히면 맥주 본연의 맛이 나오듯이, 난 사람이 바닥까지 내려갔을 때에야 그 사람의 제대로 된 인격이 드러난다 생각한다. 사람마다 바닥의 모습은 평소 아는 모습과 전혀 다르다. 바닥의 모습을 보는 건 쉽지 않다. 사람마다 괴물 같은 바닥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이 두려워 기꺼이 바닥까지 내려가보려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 다닐 때도 그런 친구들이 꼭 있었다. "어제 일찍 자고 새벽에 공부하려 했는데 알람시계가 고장 났다." "시험 범위를 잘못 알고 있었다" 심지어 "답을 하나씩 밀어서 썼다" 온갖 핑계들이 다 나온다. 그냥 최선을 다할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고, 시험을 잘 볼 때도 있고, 못 볼 때도 있고, 그 평균이 자신의 모습인데 지나치게 자신의 실력과 바닥의 모습이 드러나는 것을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있다.


적어도 난 바닥까지 내려가는 것을 두려워하진 않았던 것 같다.


몇 번의 바닥이 기억난다.


난 고등학교 때 전교 1등도 해봤고, 반에서 10등도 해봤다. 반에서 10등은 심지어 고3 때였다. 그래도 난 핑계는 대지 않았다. 그 중요하다는 고2 겨울방학 때 류지훈, 정현철, 변성준, 박상훈, 조현호(이상 실명) 등과 어울려서 남포동 자이언트 노래방과 해운대에 놀러 다니느라 공부를 정말 1도 안 했고, 고3이나 된 녀석들이 시험 전 날 구덕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바위틈에서 포커를 쳤다. 전교 2등으로 고3에 올라가서, 첫 시험에서 전교도 아닌 반에서 9등, 두 번째 시험에서 반에서 10등을 하니 여기저기서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손창우, 독서실에 가방만 던져 놓고 놀러 다니는 것 같더니 완전 망한 것 같다고. 이때가 나의 첫 번째 바닥이 드러나던 때였다.


하지만 난 그 때도 장기 레이스엔 자신이 있었다. 이제 4월이니 수능까지 반년 남았고, 본고사까진 1년 가까이 남았으니 이 정도면 충분하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써야 했다. 상대적으로 시간이 적게 남은 수능은 내가 가려는 대학 합격생들의 평균 점수 혹은 최악의 경우라도 10% 이상은 떨어지지 않게 맞춰놓고 본고사에 올인하자. 특히 수학을 잘하니, 본고사 수학에 올인을 하자. 난 친구들에게 양해를 구한 후 독서실도 그만두고, 학교에서 밤 12시까지 공부했다. 주말에도 도서관에 가서 하루 종일 공부했다. 학교에선 쉬는 시간에도 공부했다. 내 공부의 70%는 본고사 수학에 맞췄다. 이 장기 레이스는 성공했다. 본고사 수학은 답안지를 자신 있게 빼곡히 써내려 갔고, 수능 수학 점수 만점도 보너스로 따라와서 수능 점수도 합격생들 평균 점수가 만들어졌다.


고3 시작과 동시에 반에서 9등 10등을 했을 때, 내 인생 처음으로 바닥을 맛보았다. 동시에 내 바닥의 모습이 크게 흉하지 않고, 오히려 바닥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힘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소중한 시간이었다.  이 때의 경험으로 난 장기 레이스는 뭐든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


회사를 다니면서도 몇 번의 바닥을 경험했다. 그중 투자업계로 들어온 이후 3번의 검찰 조사, 1번의 해외 소송 건이 클라이맥스였다. 투자해놓은 포트폴리오 회사를 횡령 배임으로 소송을 하게 되었고, 그 회사에선 담당자인 나를 맞고소했다. 횡령, 배임, 공문서 위조, 명예훼손, 절도였다. 너무나 명확한 건이라 우리 회사에선 로컬 변호사 한 분만을 붙여 주시고 큰 신경을 안 써줬는데, 상대 회사에선 호화 변호인단을 꾸렸다. 그 변호사들과 나와의 싸움이었다. 검찰 조사 3번의 신분도 매번 변했다. 참고인, 고소인, 피의자.


아무리 잘못한 것이 없더라도 검찰 조사를 받는 것은 차원이 다른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심지어 나 혼자와 상대 회사 측 4명이 참석하는 1대 4 대질신문이었다. 조사관과 검사 앞에서 1대 4 다구리를 당하면 사람이 바닥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내가 대답 하나라도 잘못하면 모든 게 꼬여 버리니, 혼자 상법을 몇 차례 정독하고 준비를 하고 들어갔지만 그 질문 하나하나에 대한 긴장감은 안 해본 사람들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이다.


그런데 난 이 바닥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았다. 날 죽여야 살아날 수 있는 사람들의 하이톤 공격 속에서도 난 차분하게 대답했다. 오히려 머리가 더 맑아졌다. 날 물어뜯는 그분들에게 쉬는 시간에 음료수도 하나씩 건네고, 끝날 땐 같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왔는데 수고하셨다며 목례도 건넸다. 물론 소송은 완승이었다. 내가 잘했다기 보단 그럴 수 밖에 없는 건들이었다. 바닥 중의 바닥을 경험하고 싶으면, 피의자 신분으로 12시간짜리 대질심문을 권해드린다.


이 소송이 끝난 후, 난 싱가포르 소송건에 투입이 되었다. 우리가 고소인이었고 상대는 후덜덜한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이었다. 네이티브도 아닌 내가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을 상대로 1년간 소송을 진행하는 것도 상당한 스트레스였다. 1박 3일짜리 소송 대응 출장만 10회 이상 다녔다. 물론 그 덕분에 난 다이아몬드 회원이 되었지만, 난 아직 싱가포르를 좋아하지 않는다.


이렇게 다양하게 나의 바닥을 확인하면서 그 때의 내 모습을 관찰해왔다. 다행히 나의 바닥에서의 모습은 흉측하진 않았다. 어떤 상황에서건 얼굴엔 항상 미소가 걸려 있었고, 스트레스를 줄이기 위해 농담을 했으며, 힘들수록 새로운 힘들이 조금씩 생겨나는 것을 확인했다.


그리고 오래간만에 다시 바닥을 경험하고 있다.
이번 수술, 그리고 방사선 치료.


건강상의 바닥은 또 다른 영역이었다. 나도 정말 궁금했다. 건강 문제로 바닥까지 간 나는 어떤 모습일지.


그 답은 아래 사진 한 장으로 설명을 할 수 있다.

수술실로 들어가기 직전의 사진이다.



난 쫄지 않았다!!!


정말 쫄지 않은 것과 쫄지 않게 보이려 한 것이 어느 정도 비율로 섞여 있을 수도 있지만, 정말 쫄지 않았다. 수술대 위에 누워있을 때는 오히려 더 마음이 편해졌다. 이런 큰 수술을 앞두고도 쫄지 않았으니, 앞으로 살면서 쫄 일은 없을 것 같다. 이번 수술이 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다. 난 쫄지 않았다.




월간 김창우는 또 지영이에게의 편지로 마무리한다.


지영아, 방사선 치료가 생각보다 길고 힘들게 진행되어 너한테 가장 미안하다.

마음과는 달리 힘든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네.

그래도 남편 바닥에서의 모습을 믿으면 돼. 여러 번 경험해봤는데, 바닥이 흉측한 사람은 아니더라.

매일 헤벌레 웃고 에너지 팍팍 넘치는 모습 보이고 이런저런 농담으로 웃겨주진 못해 미안하지만, 개코와 두통으로 인상을 쓰면서도 매 끼니 차려준 건 다 먹으려 애쓰고 있잖아. 지금 보는 남편의 얼굴이, 바닥까지 내려갔을 때의 모습이야. 이 정도면 나쁘지 않잖아.


앞으로 3~4주만 잘 버텨보자.

뒷통수는 골룸이지만, 정면샷은 준수하게 계속 유지할게.

이제 같이 올라갈 일만 남았다. 남편, 파이팅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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