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손창우 Jun 09. 2017

대안 학교 대안 아빠 #6

15분 책 읽기

* 학교명이 두레학교에서 새음학교로 변경되었습니다.


새음학교 입학이 결정 나고 난 집 앞 초등학교를 잠시 거닐었다. 지우를 보내려던 학교, 작별 인사가 필요했다. 9시가 넘어 주변이 깜깜했다. 하늘의 별들은 청명하고 따뜻했던 낮 시간을 추억하며 밝게 빛나고 있었다. 난 조용히 교실로 들어갔다. 조금 전까지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던 것처럼 교실 구석구석 온기가 가득했다. 그리고 책상에 앉아서 지긋이 눈을 감았다. 내가 가장 애정 하던 4 분단 제일 뒷자리 창가 자리였다. 잠시 후 교실문이 드르륵 열리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정장을 차려입으신 선생님이 칠판 앞으로 걸어오셨다. 주위를 둘러보니 아이들이 모두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아이들의 얼굴이 조금 슬퍼 보였다. 이건 뭐지? 하는 순간에, 선생님께서 엄숙하게 말씀하셨다. "여러분, 이것은 내가 여러분들에게 가르치는 마지막 수업입니다. 알자스와 로렌의 초등학교는 독일어만을 가르치라는 명령이 베를린에서 왔습니다. 오늘은 마지막 프랑스어 수업입니다. 열심히 들어주세요. 봉쥬르 그랑프리 데칼코마니 랑데뷰 바캉스 바게트 샹들리에 앙팡테리블~"


그 유명한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시간, 4 분단 제일 뒷자리에 내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잠이 깼다.


내 마음이 이 꿈과 같았다. 독일식 교육을 갈구하던 와이프와 장모님의 추천을 받고, 마지막 프랑스어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의 마음으로 면접에 참여했다가 덜컥 합격을 해버리고 나니, 기분이 이상했다. 부모의 결정으로 자식이 어쩔 수 없이 검정고시까지 쳐야 하는 특수한 환경에 놓이게 된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우리가 함부로 결정해도 되는 문제일까.


그렇다고 7살 아이에게 물어볼 수도 없다. 질문자가 답변을 쉽게 유도할 수 있다. 이를 테면, "새음 학교에서 즐겁게 학교 다닐래? 아니면 일반학교에서 학원 뺑뺑이 돌면서 다닐래?"라고 물을 수도 있고 "새음학교까지 매일 스쿨버스 타고 힘들게 다닐래? 아니면 코 앞에 있는 일반학교 편안하게 다닐래?"라고 답변을 유도할 수도 있다.


이럴 땐 아몰라. 내가 남들보다 잘 하는 것 하나는 아몰라 싶으면 "Don't think too much"하기. 어딘가 생각 안 해야 하는 대회가 있다면 예선은 통과할 자신이 있다. 이미 결정된 것, 일단 새음 학교 보내보고 판단하지 뭐.




새음학교는 부모 교실이 한 달에 한 번씩 열린다. 아이들만큼 부모도 함께 배워야 한다는 것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입학식 전까지 거의 2주에 한 번씩 부모 교실이 5차례나 잡혀 있었다. 난 또 "안해 안해 안해"를 외칠 뻔했지만, 부모 중 한 명만 참석해도 되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해졌다. 결국 난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다. 학교에 대한 거부감이나 수줍음이 있었던 것은 아닌데, 당시 2월에 일이 좀 몰려서 어쩔 수 없이 참석하지 못한 게 3번, 안 가다 보니 계속 안 가게 된 게 2번이었다.


5번의 부모 교실을 모두 참석한 와이프는 다녀올 때마다 대만족이었다. 당시 어떤 주제들을 다뤘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와이프는 이 교육들을 통해서 Parenting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웠다고 했다. 그래, 사람은 사랑이건 행복이건 건강이건 육아건, 뭐든 제대로 하려면 배워야 해.


그러다 6번째 부모 교실 주간에 와이프 출장이 잡혔다. 아뿔싸. 그때까지 철저히 신비주의 아빠였는데, 이번엔 무조건 참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숙제도 있었다. '하루 15분 책 읽어주기의 힘'이란 책을 읽고 오라고 했다. 원래 난 숙제를 안 하는 것을 부끄럽지 않게 생각하던 학생이었다. 초등학교 다닐 땐 탐구생활을 벼락치기로 풀면서 재미없는 부분은 건너뛰었고, 곤충 채집이나 수수깡 만들기 같이 개학하고 학교까지 가지고 갈 때 모양 빠지는 숙제들은 가볍게 건너뛰었다. 숙제를 하나하나 체크하며 쪼지 않으시던 어머니의 영향도 있었다. "숙제 안 하면 지가 학교 가서 혼나야지 뭐" 이런 스타일이셨다. 이런 버릇은 대학원까지 이어져 당시 내 좌우명은 'no homework'였다. 그렇다고 마냥 한량은 아니었다. 내가 하고 싶은 공부나 발표 준비는 나름 '자기 주도적'으로 열심히 했다.


그렇더라도 선생님들과 예비 학부모님들을 처음 만나는 자리인데, 숙제는 해가는 게 사람의 도리지. 책을 사서 동공을 최대한 확장시켜 초점을 넓힌 다음, 한 번에 다섯 줄씩 아주 빠른 속도로 읽어나갔다. 페인트 칠하 듯 슥슥슥~ 눈알 굴림 세 번에 한 페이지씩 읽어 나갔다. 그렇게 30분 만에 한 권을 끝냈다. 다시 말해서, 제대로 안 읽었다. 아이들에게 하루에 15분씩 책 읽어주는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가는 꼭 책 한 권을 다 읽어야 알 수 있는 건 아니지 않겠는가.


상식적으로 뭐든 하루 15분씩 꾸준히 했으면 내 인생이 엄청나게 바뀌어 있었을 것 같다. 학창 시절부터 매일 15분씩이라도 영어 공부를 꾸준히 해왔다면, 지금쯤 오성식 형님에 이어 굿이브닝 팝스를 진행하고 있을 수도 있고, 매일 15분씩 스트레칭을 했다면, '세상의 이런 일이'에 몸이 제멋대로 접혀지는 남양주 손식초 선생으로 출연했을 수도. 이런 잡생각들을 하며 학교로 향했다.


이미 많은 학부모님들이 교실에 빼곡히 앉아 계셔서 난 알퐁스 도데 꿈에서처럼 제일 뒤 구석자리에 조용히 앉았다. 주위 분들이 가벼운 목례를 해주셨는데, 마치 막 먹기 시작했는데 옆에서 기도를 시작했을 때처럼 어색했다. 선생님 한 분이 '책 읽어주기의 중요성'에 대한 강의를 해주셨다. 내가 면접에 들어갔을 때 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환하게 웃어주시던 그 선생님이셨다. 아이에게 매일 15분씩 책을 읽어주는 것이 책으로 읽을 때보다 선생님의 설명을 들으니 훨씬 더 중요하게 느껴졌다. 내가 책을 제대로 안 읽은 것은 확실했다. 내용들이 참 새로웠는데, 책에 다 있던 내용들이라고 하셨다. 그렇게 나는 그날 새음 학교의 가장 큰 경쟁력, '매일 15분 책 읽기' 문화를 만나게 되었다.


새음 학교는 모든 아이들에게 책 읽기를 가장 강조한다. 학교에서도 책 읽는 시간이 따로 있어서 매일 아이들은 가방에 그 날 읽을 책 한 권씩을 넣어간다. 선생님이 재미있게 책을 읽어주시기도 하고, 친구들끼리 책을 돌려 읽기도 한다.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일 알림장에 숙제를 적어 오는데, 몇 개 없는 숙제 리스트에서 항상 빠지지 않고 Ctrl C + Ctrl V 등장하는 것이 '15분 책 읽기'숙제였다.


이번 부모 교육의 목적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스스로 책 읽는 습관을 키우게 하는 것은 학교가 어느 정도 해줄 수 있지만, 진정 Parenting의 정점에 있는 행위는 '부모가 아이들에게 매일 15분씩 책 읽어주기'라는 것이었다. 특히 어머니보다는 아버지의 굵은 저음으로 읽어 주는 것이 아이의 두뇌 발달뿐만 아니라 정서 발달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가르쳐주셨다. 난 마음속으론 '전 목소리가 얇고 고음인데요...어쩔...'하며 드립을 치고 있었지만, 이제부터 매일 15분 책 읽어주기를 하는 데까진 해보자는 다짐을 할 수 있었다.




난 아빠로서 부족한 부분도 많지만, 스스로에게 가장 많은 점수를 줄 수 있는 부분이 '책 사주기'다. 회사 근처에 영풍문고가 있어서, 난 하루에 한 번은 서점에 간다. 거기서 아이들 책을 자주 산다. 한 명만 사줄 수 없어서 매번 두 권을 산다. 일주일에 최소 2~3회는 책을 사들고 들어간 지 몇 년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퇴근하면 아이들이 안기면서 가장 먼저 하는 말이 "아빠 오늘은 책 사 왔어?"가 되어버렸다. 책 사주는걸 고마워하는 게 아니라 당연시 여겨 교육적으로 안 좋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요즘은 횟수를 좀 줄였다. 대신 한 번에 두 권씩 사준다.


몇십 권짜리 전집을 한 번에 사지 않고, 일주일에 2~3권씩 책을 사주는 것은 나름 효과가 괜찮은 것 같다. 신상을 좋아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 아니겠는가. 책을 한꺼번에 사놓으면 책장에 꽂혀있는 모습만으로도 이미 읽은 것 같은 올드한 기분을 주지만, 그 자리에서 비닐을 벗겨서 읽어보는 새 책의 맛은 언제나 아이들을 기분 좋게 만들어 준다. why 시리즈 책 같은 경우는, 한 권씩 사주다 보니 어느새 전집이 꽂혀있다.


한 권씩 책 사주기의 또 다른 장점은, 아이가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 다 읽어버리는 책이 있는 반면에, 몇 페이지 읽지 않고 버려지는 책들도 있다. 우리 아이가 어떤 책에 반응하는지 살펴보고, 그런 시리즈 혹은 유사한 스토리의 책을 고르면 아이가 재미있게 읽을 Hit ratio가 눈에 띄게 높아진다. 지우가 요즘 아빠가 사주는 책은 다 재미있다고 하는데, 내가 그런 책을 고르기 위해 수십 권의 책들을 지우의 눈높이로 사전 검토를 한다는 사실은 모른다.


자주 책을 사주는 것에 뿌듯함을 느끼고 있었는데, 진정한 Parenting 고수는 책을 읽어주는 사람이란 것을 교육을 통해 알게 되었다. 책 읽어주기의 효과는 관련 책을 사서 동공을 넓혀서 슥슥슥~ 한 번 읽어보시길 추천드린다.


그렇게 나의 첫 번째 부모 교육을 끝내고 나올 때, 지난 다섯 번을 참석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이런 자리였구나. 그리고 부모 교육의 효과는 확실했다. 그 날부터 난 15분 책 읽기를 가급적 지키려고 노렸했다. 그래서 책을 고를 때, 내가 읽어주기 편한 삽화가 많은 책을 고를 때도 많았다. 물론 작심삼일은 과학이었다. 이번 경우엔 작심오십일 정도는 되었다. 그 후로 조금씩 횟수는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3~4번은 15분씩 읽어 주었던 것 같다. 의식적으로 더 굵은 목소리로.


요즘은 지우가 어느덧 3학년이 되다 보니 이젠 혼자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한다. 점점 읽는 책들의 텍스트가 많아져 읽어주기도 힘들어졌다. 그래도 15분 책 읽기는 둘째 지아를 통해 여전히 지속하고 있다. 이렇게 새음 학교 부모 교육은 글로 배우거나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들을 실천하게 만드는 힘을 가지고 다.


책 읽는 아이들을 양성하는 새음 학교.

학교에서 책 읽는 시간도 따로 주고, 선생님들이 동화책도 읽어주고, 매일 15분 책 읽기를 숙제로 내는 학교.

이것만 쌓여도, 새음 학교를 보내는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https://brunch.co.kr/@boxerstyle/88

https://brunch.co.kr/@boxerstyle/83

https://brunch.co.kr/@boxerstyle/86

https://brunch.co.kr/@boxerstyle/85

https://brunch.co.kr/@boxerstyle/84


매거진의 이전글 대안 학교 대안 아빠 #5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