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이르쿠츠크 1편 : 노어노문학과 자퇴하러 가보는 러시아
바이칼을 떠나는 날 아침. 흐린 날씨만큼이나 컨디션도 좋지 않았다. 사실 카약을 끝내고 한 번은 해봐야겠다며 잠시 호수에서 첨벙거렸는데, 수영도 못하는 데다가 삐쩍 마른 몸으로 웃통까지 벗었은 탓에 밤새 고열에, 두통에 꽤나 시달렸기 때문이다. 혹시 쓸 일이 있을까 하며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사둔 테라플루(러시아어로는 쩨라쁠류다)를 홀짝이며 그래도 맛은 있다고 생각하는 게 철저한 건지, 긍정적인 건지, 철이 없는 건지 싶었지만. 끙끙 앓다가 잠을 깨어 폰을 보니 다행히 이르쿠츠크로 향하는 버스 시간은 넉넉히 남아 있었다. 그럼에도 가방에 짐을 욱여넣으며 체크아웃을 준비했는데, 아픈 건 아픈 거고 마지막 날에만 할 수 있는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난 떠나온 곳에 대한 미련이 많은 편이다. 좋게는 그리움이고 나쁘게는 후회겠지만, 졸업이든 전역이든 꽤 오래 여운이 남았던 것은 사실이다. 점차 나이가 들면서 그러한 감정을 잘 흘려내는 법을 익혀가고 있고, 지금은 매 순간 최선을 다하되 마지막을 나눌 시간을 충분히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리고 이 부분은 무려 11개 도시를 횡단하는 여행을 계획하며 가장 중점에 두었던 부분이기도 하다. 항상 마지막 날은 일정과 교통편에 여유를 뒀다. 덕분에 마지막으로 바이칼과 유정 모두에게 충분히 인사를 나누고 헤어질 수 있었다. ‘Bye’로 헤어진 이 모든 무언가들과 다시 ‘Hello'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스물셋의 바이칼을 그렇게 뒤로 했다.
편도 6시간이라는 대장정답게 꼬박 해가 질 때가 되어서야 이르쿠츠크에 도착했고, 오전 버스로 미리 도착한 비비안과 저녁을 먹기로 했다. 사실 다음날 점심도 같이 먹었는데, 중국인과 한국인이 러시아에서 만나서 먹은 두 끼가 초밥과 쌀국수라서 서로 ‘Something weird'하다며 웃었다. 아쉽게도 비비안과는 식사 이후로 같이 다니지 못했는데, 컨디션이 쭉 좋지 않아서 혹시 내가 비비안의 여행을 망칠까 걱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중앙시장을 적당히 둘러보고서 이르쿠츠크에서 가장 기대했던 데카브리스트 박물관으로 향했다. 데카브리스트는 러시아 최초로 근대적인 혁명을 시도했던 19세기의 귀족장교 청년들인데, 실제로 꽤 본격적인 반란도 일으켰지만 빠르게 제압되어 이르쿠츠크를 비롯한 시베리아 곳곳으로 유배를 당했다. 그렇게 와해되는 것으로 결론이 맺어질 것 같지만, 이들이 정착한 후 당시 유럽의 트렌디한 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한다. 덕분에 이르쿠츠크는 ‘시베리아의 파리’로 불릴 정도로 문화적으로 번성할 수 있었는데, 나 역시도 같은 시베리아에 해당하는 직전의 울란우데나 직후의 노보시비르스크보다 훨씬 이국적이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박물관으로 운영 중인 트루베츠코이와 발콘스키의 저택을 방문했는데, 저 멀리서도 잘 찾아왔음을 아주 쉽게 알 수 있었다. 산뜻한 연보라색과 연남색의 포인트 컬러가 눈에 확 들어왔기 때문이다. 어마어마한 규모는 아니었지만, 내부의 가구나 소품에서 유배 중에도 한 가문이 어느 정도 여유롭게 지낼 재력은 있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발콘스키의 저택에선 정원과 별채에서 실내공간으로 이어지는 공간적인 흐름에서 세련됨을 느낄 수 있었고, 트루베츠코이의 저택에선 입구에서 출구까지 ‘데카브리스트의 반란’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단계별로 이해할 수 있도록 제시했던 점이 인상적이었다.
사실 이곳이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이유는 직원분들에게 정말 감사한 칭찬을 들었기 때문이다. 러시아에 있는 박물관에는 으레 방마다 무료한 표정의 직원 분(99%로 할머니)이 계시는데, 그날따라 궁금한 게 생겨서 이것저것 물어봤다. 안 되는 러시아어로, 제대로 번역이 되는 건지는 모르겠는 번역기로, 이것저것 어설픈 손동작으로 물어보는 게 또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게다가 트루베츠코이의 저택에선 구성 자체가 재미있어서, 어쩌다 세 바퀴 정도를 돌았는데 알고 보니 입장은 마감된 상황이라 모든 직원이 나만 기다리고 있었다. 머쓱한 표정으로 한국에서 러시아를 공부하고 있다고 하니 ‘하로쉬 스투졘트(좋은 학생)’라며 할머니 세 분이 함께 웃으셨다. 지나가는 말일수도 있지만, 나의 방식으로 나름대로 최선을 다 했던 순간에 예상치 못하게 인정을 받은 기분이었다. 그 순간을 계기로 조금은 더 적극적인 여행자로 성장한 것 같기도 하고.
내친김에 더 가보기로 했다. 날씨가 좋기도 했고, 박물관의 할머니들 덕에 자신감도 많이 생겼기 때문. 트램을 타고도 꽤 오랜 시간을 걷다가, 왠지 황량하다고 느껴질 때쯤 카잔 성당에 도착했다. 말 그대로 우뚝 솟아있어서 이 역시 찾기 정말 쉬웠는데, 잘못 합성한 사진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알록달록했기 때문이다. 조심스레 들어가니 미사가 한참 진행 중이었다. 실내는 내 예상보다 훨!씬! 화려했다! 알고 보니 정교회 신자들에게 기적을 준다는 성모 마리아 이콘(종교화)이 있어 19세기부터 꾸준한 관심을 받아왔다고 한다. 무교로 살아왔지만 러시아 정교회 신자들의 진심 어린 정성을 볼 때면 왠지 모를 벅차고 성스러운 기분이 들곤 했는데, 특히 평일 오후임에도 가족 단위의 러시아인들을 많이 볼 수 있어 마음도 편해지는 곳이었다.
아쉽게도 더 걸을 컨디션은 아니라서 트램을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처음 트램을 타봐서 티켓을 사는 것부터 엄청 난처했지만 주변에 계신 아주머니께서 또 아주! 친절하게! 도와주셨다. 서로 ‘따봉’하며 헤어지고선 한식당에서 저녁을 해결했다. 아프니까 익숙한 걸 먹고 싶다는 마음에 들렀는데, 김치찌개와 제육을 러시아 한 복판에서 보니 오히려 기분이 이상해졌다. 기대만큼 맛있었고 소화도 잘 되었지만, 그 기대 이상의 허무함이 있었다. ‘결국 한식에 무릎 꿇은 여행자’가 된 듯한 패배감(?)도 있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