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바이칼 카약 대장정 2편 : 노어노문학과 자퇴하러 가보는 러시아
“So, how goes for the man who bravely kayaked for the first time in Baikal?”
내가 타인의 호의를 덥석 받을 만큼 가치 있는 사람일까? 아니, 그런 자격은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 걸까? 정답이 없는 고민에 애써 정답을 찾아보려 한참을 누워 있었다. 정말 이상한 고민이다. 23살에 다녀온 여행을, 24살에 글로 옮기고, 29살에 탈고하여 업로드하고 있는 지금의 내가 보기에도 이상한 고민이 맞다. 아니, 지금의 내가 '보기에는' 이상한 고민이 맞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이상하다는 말이 꼭 바로 잡아야 하거나 잘못되었다는 뜻은 아니니까, 나의 20대의 한 때는 스스로도 이해하기 힘들 만큼 더 섬세하고, 더 조심스러웠던 시기가 있었다고 갈무리하고 싶다.
아무튼 한참을 누워있다 보니 문득, 어차피 언젠가 죽을 거라면 바이칼에서 죽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크다지만 고작 이틀 봤으면서, 바이칼은 '이 정도로 멋진 곳이라면 먼 훗날 내 이야기를 마쳐도 괜찮겠다'라는 표현이 떠오를 정도로 가치 있는 장소로 다가오고 있었다. '죽네 마네'하는 말들이 과장 섞인 유쾌한 표현이긴 하지만, 당시의 나에겐 삐뚤어진 용기와 잘못 해석된 자신감의 결과물이기도 했다.
그날 밤 내가 했던 생각들을 솔직하게 말해보자면, 남들은 이 여행을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했다. 자퇴할 것도 아니면서 거창한 제목 달아 놓고는, 노문과 학생이 러시아 가는 게 그깟 대수냐며 혀를 찼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최선을 다해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조심스레 기록하고 있는 이유는, 이 여행이 그 당시 나에게 정말이지 마지막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이십 대 초반의 어느 겨울날 쯤부터, 나는 유래 없이 힘든 시기를 겪었다. 아무도 나를 괴롭히지 않았고, 탓하지 않았고, 욕하지 않았지만 내가 내 존재를 부정했다. 잠시 앓고 지나가는 감기일 줄 알았지만 그렇지 않았고, 그럴 수도 없었다. 김사월의 노랫말처럼 ‘스스로를 미워하며 살아가는 것은 너무나도 달콤한 일’이었으니까. 추위가 그치고 봄이 오면 다 나을 줄 알았지만 바깥은 언제나 내 예상보다 훨씬 차가웠다. 그다음 노랫말처럼, ‘그걸 끊을 수 없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걸까’라는 생각으로 거의 1년을 허비했다. 이렇게 힘들게 평생을 살아간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문득 내 예상보다도 더 늦은 새벽의 한 순간임을 깨닫는 것이 일상이 되어갔다.
그래서 꼬박 1년을 준비한 이 여행은 언젠가부터 잃어버린 나를 찾아서 비로소 그 시기를 끊어낼 마지막 기회였다. 그 어떤 타이틀과 정체성도 모두 떼어 두고, 오롯이 나 자체로 10,000Km를 넘게 떠돌아다닐 한 달. 하지만 이것도 뻔한 합리화였던 건지, 가느다란 희망은 쉽게 흔들렸다.
언젠가 나보다 자신감도, 자존감도 높은 사람에게 ‘내게 이 여행은 큰 의미가 있고, 잘 기록해서 기회가 된다면 작은 책으로도 만들고 싶다’고 말해본 적이 있다. 딱히 응원을 바랐던 것은 아니다. ‘그렇구나’ 정도의 끄덕임이면 충분했을 것이다. 하지만 ‘네 친구들도 다 가는 여행이고, 남들은 크게 궁금해하지 않을 의미부여일 뿐이잖아. 현실도 잘 모르면서 뭘 어쩌겠다는 거야?’라는 대답을 들었다. 조언인지도 모르겠는 그 말에 ‘현실적인 조언 고맙다’며 황급히 자리를 뜨고는, 멍하니 하루를 버티다 잠들기 직전에서야 소리 없이 울었다. 꽤 오래 울었지만, 그래도 난 가야 했다. 그렇게 씩씩하진 않아도 한 걸음씩 온 것이 지금의 바이칼이었던 것이다.
이 글을 탈고하고 있는 29살의 시점에서 5-6년 전 이야기를 다시 마주하자니 어떤 말을 첨언하면 좋을까 고민이 들었다. 당시의 그 사람보다 나이도 더 많아진 나는 하루하루 아슬아슬하긴 하지만 그만큼의 성취감을 느끼곤 하는 사회인으로 잘 지내고 있다. 모두가 서투른 나이엔 관점이 달라 의도치 않은 오해가 생기곤 한다는 걸 이제야 어렴풋이 알게 되었으니까, 비교보다는 잘 지내고 있다는 말을 덧붙이기로 한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기우(杞憂)다. 이렇게 고요한 호수에서 카약이 뒤집어질리는 만무하다. 그렇다 한들 구명조끼 덕에 둥둥 떠서는 누군가가 건져줄 것이고, 유정의 말처럼 끝내주는 ‘Almost drown’한 썰로 남을 것이다. ‘어차피 이렇게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고민하던 시기도 있었다면 차라리 바이칼에 빠져버리는 게 낫고, 애초에 그런 생각할 자신감을 노 젓는 데에 써보는 것으로 결론짓고서 눈을 감았다.
결론적으로, 무려 세 시간 코스의 카약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앞뒤로 나를 챙기려는 누나들의 배려로 3인용 카약의 중간자리에 앉았고, 1인 카약을 타고 앞서 가던 교관님은 마시던 맥주(무려 피쳐;;)를 들어 올리며 ‘마실래?’하고 물어보는 것 외에는 아주 듬직했다. 언덕 위에서 바라보던 호수의 한가운데에 내가 있었고, 사람들은 우리를 보며 손을 흔들었다. 손을 조금만 뻗으면 햇빛이 흩뿌려진 호수가 부드럽게 갈라졌다. 이 기분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나는 마냥 웃었고, 호수 위에 둥둥 떠 있던 갈매기 몇 마리도 같이 웃었다.
그렇게 하루의 끝에 다시 바이칼 앞에 앉았다. 난 결국 꾸역꾸역 여기까지 살아서 왔구나. 쉽진 않았지만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은 아니었구나. 앞으로도 꾸역꾸역, 조금씩, 힘들 땐 쉬어가면서, 가끔은 건네는 손도 잡으면서 그렇게 살아가기로 다짐했다. 여느 때처럼 바이칼의 노을은 ‘그랬구나’하는 표정으로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