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이르쿠츠크 2편 : 노어노문학과 자퇴하러 가보는 러시아
이상하다면 이상하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였다. 생전 연고도, 관심도 없었던 러시아어를 전공으로 택하고 나니 수많은 사람들이 러시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이 글을 처음 쓴 2018년 기준으로) 최근에는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심심찮게 볼 수 있고, 가장 가까운 유럽 정도로 소개되기 시작한 블라디보스토크는 이제는 오버투어리즘 문제가 대두될 지경이다. 팁을 요구한다거나, 외국인용 메뉴판이 따로 있다거나 하는 여느 관광지에선 볼 수 있는 일들이 블라디보스토크에도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무튼 이런 변화에 한 편으로는 책임감을 느끼기도, 그보다 이런 관심들에 감사하기도 했다.
특히 횡단열차 관련 유튜브 영상들이 큰 인기를 끌기도 하며, 은근히 주변에서 다녀온 사람을 찾기는 힘들던 와중에 내가 지나가면 이런저런 질문을 해주시는 분들이 많았다. 덥진 않냐, 춥진 않냐, 심심하진 않냐, 위험하지 않냐는 질문은 쉽게 답했지만, 11개 도시 중에서 어떤 도시가 가장 좋았냐는 질문에는 조금 고민이 들었다. 지금이야 의례적으로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 같은 굴지의 대도시를 말씀드리곤 하는데, 가장 기억에 남았던 도시, 돌아가고 싶은 하루를 꼽자면 이르쿠츠크의 마지막 날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 이 글을 리마스터링 하고 있는 2024년은 햇수로 2년이 넘도록 전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2018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비극적인 일이 오래도록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 깊은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다시 돌아와서, 벙커베드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햇빛에 눈을 떴다. 부지런한 여행자들은 모두 떠났을 시간. 도미토리는 비어 있었고, 체크아웃까지 얼마 남지 않아 복도에선 분주한 청소기 소리가 들려왔다. 짐을 챙기던 중에 청소 아주머니가 들어오셨다. 잠시 어색한 정적. ‘다른 방부터 청소할 테니까 느긋하게 준비해’라는 듯한 몸짓과 함께 옆방으로 가셨다. 새삼 생각해 보지만, 이르쿠츠크 롤링스톤즈 호스텔은 정말 부족한 점을 찾기가 힘든 숙소였다. 생각할 수 있는 그 무엇이든 넉넉하고 상태가 좋았다. 화장실에선 무려 음악도 나왔고, 샤워실엔 면봉과 화장솜도 있었으니까. 무엇보다도 호스트와 게스트 모두 모든 일에 No Problem이었다.
세탁기 줄이 긴데 쓸 수 있을까요? 노 프라블럼. 내가 안 자고 새벽에 돌릴게. 체크아웃했는데 기차 시간까지 로비에 있어도 될까요? 노 프라블럼. 맘껏 쉬어. 웬만한 일에 대해서는 다 노 프라블럼인 탓에 새벽에 시끄러웠다거나 하는 후기가 간혹 보이긴 했지만, 오히려 유연한 분위기가 주는 내 집 같은 편안함이 장점이기도 했다. 노 프라블럼이라는 말을 며칠 동안 듣다 보니 우린 지금까지 왜 그리 많은 것들을 프라블럼이라 했었나 싶기도 했고.
그럼에도 나에게 딱 하나 프라블럼인 것이 있었는데, 바이칼에서 첨벙거린 이후 시작된 두통이 점점 심해졌다는 점이다. 어쩌면 여행자로서 템포 조절에 실패한 것일 수도 있다. 언젠가 장거리 여행에서도 꼭 '일요일'을 가지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며칠 열심히 다녔으면, 하루 이틀은 꼭 쉬어줘야 한다는 뜻이었는데, 너무 신이 났던 나머지 딱 여행의 중반쯤에 와서 결국 한 번은 감정적으로, 신체적으로 지쳐버린 것 같았다.
게다가 마지막 날은 이르쿠츠크의 도보 여행 코스인 ‘그린 라인’을 완주하고 떠날 계획이었던지라 부담이 더 컸다. 딱 하루만 더 고생하자며 나섰지만 도통 방향을 잡을 수 없었다. 출발점인 알렉산드르 3세 동상 앞에 서서 조용하게 흘러가는 앙가라 강을 30분 가까이 멍하니 보고 있자니, 이번 여행은 물 흐르듯 다녀오겠다고 호언장담한 내가 생각났다. 부담 없이 발 닿는 곳으로 다니겠다던 나는 아픈 와중에도 한 도시의 모~든 관광지를 다 보고 말겠다는 무리한 계획을 안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도 다 젊어서 하는 사서 고생인 건지, 혹은 스물셋이 내 생각보다 훨씬 어린 나이인 건지 고민하던 와중에 강 너머 유노스찌 섬으로 향하는 다리가 보였다.
대체 어떤 섬이기에 이름이 ‘젊음(유노스찌)’인 걸까? 일단 들어가지 않아도 어떤 효험이 있는 곳임은 분명해 보였다. 입구에서부터 어르신들이 백 명은 모여서 격렬한 춤을 추고 계셨으니까. 짧은 여름의 하루라도 허투루 보낼 수 없다는 듯한 화려한 옷과 몸동작으로 오후의 빛을 만끽하고 계셨다. 언젠가 무려 핀란드 옆에 있는 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수업을 들으며, 이 날의 기억이 나서 이르쿠츠크에 살아보고 싶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교수님께선 아무리 그래도 거긴 너무 춥지 않냐며 놀라하셨는데, 시베리아는 러시아 사람들한테도 험한 곳이었던 것. 괜히 역사적인 유배지가 아니었다. 부산에서 온 나는 체감기온 영하 30도가 찍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도 적응이 안 되는데, 이르쿠츠크는 새삼 얼마나 험한 곳인 걸까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런 도시를 관통하는 앙가라강은 겨울에도 얼지 않을 정도로 유속이 빠르니, 춤을 추고 계시던 모든 분들도 그만큼이나 씩씩하고 강하게 살아왔던, 와야 했던 건 아닐까.
숲으로 둘러싸인 섬 안에서 페스티벌 급의 앰프 소리까지 들려오자 과감히 강을 건넜다. 앙가라강은 맑게 반짝이고 있었고, 날씨와 풍경은 비현실적인 채도로 빛나고 있었다. 조금씩 들어갈수록 화가 날 지경이었다. 이르쿠츠크 사람들은 본인들만 이런 곳을 알고 있었던 걸까? 주말치고 시내에 사람이 없다 싶었더니 모두 여기에 있었다. 그 자체로 설레는 관람차가 돌고 있었고, 작은 개울엔 오리배가 꿀렁꿀렁 나아가고 있었다. 보드, 인라인, 짚라인 등등의 액티비티를 즐기던 이르쿠츠크 인싸들은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낙타나 말까지 타고 있었다. 게다가 지역 축제까지 진행되고 있어 수많은 지역 맛집 부스에서 뭔가를 볶거나, 찌거나, 굽는 냄새가 섬 전체를 에워싸고 있었다.
이 모든 풍경은 젊다고 밖에 할 말이 없었다. 모두가 생기 있게 주말을 보내고 있었고, 그 자체로 즐거웠으며 완벽했다. 그래서 유노스찌였구나! 오늘 하루는 예상처럼 흘러간 게 하나도 없었지만 ‘노 프라블럼’이었다. 이르쿠츠크에 또 올 핑계가 생긴 것이기도 하고, 내 생각처럼 다 안 되는 게 젊다는 증거이기도 하니까. 어림에서 젊음으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었던 23살의 내가 젊음의 한 방식을 배웠던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