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노보시비르스크 : 노어노문학과 자퇴하러 가보는 러시아
언젠가 노보시비르스크로 교환학생을 다녀온 친구가 ‘거기는 정말 할 게 아무것도 없고, 모든 게 노잼’이라며 치를 떨었던 적이 있다. 심지어 맥도날드도 별 맛이 없는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을 정도로. 울란우데로 향하는 횡단열차에서 만난 엘레나 아주머니께선 노보시비르스크에서만 지낸 토박이셨는데도 내 일정에 그 도시가 있다는 자체가 신기하다고 하셨고, 굳이 가겠다면 말리지는 않겠지만 볼 건 없을 텐데라는 눈빛으로 내 가이드북을 찬찬히 보시다가 내려놓으셨다. 외국 애들은 이런 걸 신기해하는구나, 하는 표정은 덤으로.
그럼에도 노보시비르스크를 일정에 넣은 것은 대체 볼 게 없으면 얼마나 없는지도 궁금했던 것도 한몫했고, 관광도시가 아닌 곳이라면 일상적인 러시아를 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에서 비롯한 결정이기도 했다. 사실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잇는 제3의 도시이니, 규모 면에서는 전혀 밀리지 않는 대도시이기도 하다. 여행 관점에서는 한국어를 전공하는 외국인이 전국일주를 한답시고 ‘노잼도시’ 대전에 들르는 것과 비슷한 상황인데, 공교롭게도 대전과 노보시비르스크는 실제로도 공통점이 많다. 국토의 중심부에 위치에 교통의 요지일뿐더러, 기술/과학 분야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 심지어 KAIST가 속한 대덕연구단지도 노보시비르스크 인근의 대규모 연구도시인 아카뎀고로독이 롤모델이라고 하니 대략 어떤 느낌의 도시인지 감이 올 것이다.
만약 내가 이르쿠츠크 정도에서 한 번쯤 정차하는 일반적인 시베리아 횡단열차 여행자였다면 노보시비르스크를 지나쳤을 것이다. 대부분의 내일로 여행객들이 대전을 떠올리지도 않듯 말이다. 하지만 ‘노잼도시’니까 오지 말라는 말속에는 ‘그래도 내가 살아온 곳인데, 와서 즐겨주면 좋을 텐데’라는 본심이 묻어있기 마련이다. 도시에는 사람이 모이고, 사람이 모인 곳엔 삶이 묻어나니까. ‘러시아어가 아닌 러시아를’ 전공하는 외지인으로서 러시아의 노잼도시들에도 누군가의 삶이 흘러가고 있다는 걸 몸으로 느끼고 싶었다.
* 정확히는 노어노문학과로서 문학사를 받으니, 문학 전공자가 가장 맞는 설명인 것 같습니다. 아마도요.
노보시비르스크에 도착한 것은 새벽 5시였다. 동해에서만 살아와서인지 한 여름 5시면 해가 뜰 법도 하다고 생각했는데 창 밖은 한밤중처럼 깜깜했다. 다행히 미리 맞춰둔 알람에 맞춰 잘 일어났는데, 이런 새벽 시간에 하차를 해야 하면 차장님이 와서 깨워주곤 했으니 나름 또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같은 칸의 블라디슬라프, 스베틀라나, 니콜라이를 깨울까 봐 조용히 짐을 정리했지만 결국 세 명 다 나를 배웅해 주었다. 어두컴컴한 노보시비르스크 역은 시베리아의 중심이라는 것을 으스대기라도 하듯 서늘했다. 실제로도 꽤나 추워서 하얗고 푸른 등이 내려앉은 플랫폼을 바라보며 바람막이를 꺼내 입었다. 나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서둘러 어딘가로 향하는 대도시의 사람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윽고 플랫폼이 조용해졌을 때가 되어서야 배낭을 짊어 멨다.
당일치기로 둘러본 노보시비르스크는 다른 도시들과는 확실히 많이 달랐다. 일단 관광객이 전무했고, 심지어 평일 출근시간에 도착해 퇴근시간에 떠나는 일정이라 러시아인들의 일상을 느낄 수 있었던 점이 만족스러웠다. 날씨가 엄청 흐렸던 점도(비가 오기도 했다) 좋았다. 왠지 러시아, 혹은 먼 소련의 대도시에 당도한 느낌? 여행 일정 중 처음으로 지하철이 있을 만큼 규모가 컸는데, 시원하게 뻗은 도로와 큼직큼직한 건물들이 무거운 회색으로 덮인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곳은 성 니콜라이 예배당이었다. 종교건물이지만 ‘사원’이나 ‘성당’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 점이 특이했는데, 아마도 좁고 높은 소박한 규모로 예배의 목적만을 수행하고 있는 점이 그 이유인 듯했다. 사실 더 특이했던 건 위치였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가장 큰 대로 정중앙에 예전 광화문 광장처럼 섬을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 그래서 관광객의 입장에서는 찾기가 참 편했는데, 이는 현지인들에게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점심시간이 마무리될 때쯤 방문하자 양복차림의 직장인들이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서류가방이 없는 걸 봐선 아마도 짬을 내서 방문한 듯 서둘러 돌아가곤 했지만, 무교로 살아온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일상 속의 종교’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날씨도 칙칙했던 노보시비르스크를 즐기게 된 건 역 앞에 있던 블린 가게 덕이다. 아침으로 서브웨이를 해치웠지만(대륙의 배포답게 야채가 다 커서 신기했던 기억이 있다.) 왠지 출출해서 테이블 두어 개가 있는 블린 가게에 들어갔는데, 아주 정석적인 요리사 복장을 하고 계신 할머니께서 정말 열심히 창문을 닦고 계셨다. 러시아워가 끝나고 한적해진 가게를 청소하시다가 외국인 손님을 맞이한 할머니께선 좋은 아침이라며, 내가 본 러시아 할머니 중에서 가장 밝은 표정으로 내 주문을 받으셨다. 아주 정성스럽게 만들어 주신 딸기 블린도, 커피도 맛있었다. 아마도 작은 가게를 차리는 게 노후의 꿈이었던 분이 아니었을까? 구름 낀 대도시의 칙칙한 아침에도 맑고 깨끗했던 그 가게 덕에 내 하루도 밝았던 것 같다.
아무도 추천하지 않았던 노보시비르스크는 거대하고 화려한 무언가는 없었어도, 간혹 곱씹게 되는 일들이 많았던 도시였다. 길고 어려워서 왠지 정감가지 않았던 이름의 그 도시에서 내게 먼저 손을 내민 사람만 해도 한 두 명이 아니었으니까. 시베리아 횡단열차 건설을 명했던 알렉산드르 3세 동상이 있는 오비강변에서 최초의 철로 교각을 보고 있자니 내 여행의 근본을 찾은 것 같기도 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