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모스크바 1편 : 노어노문학과 자퇴하러 가보는 러시아
모스크바행 티켓을 꼭 쥐고 열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Москва’라는 글자가 왠지 어색해 모스크바, 모스크바, 모스크바 하고 소리 내어 읽어보았다. 이제 고작 2시간 거리에 그 도시가 있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기분이었다. 설렘보단 걱정이었던 것 같다. 그토록 기대했던 모스크반데 하나라도 잘못될까 봐. 그렇게 조금이라도 실망하게 될까 봐. 실망할 테면 해보라지, 오히려 그걸 기대하고 가는 거라고 호언장담했던 여행이었는데도.
날씨도, 사람도 다 걱정이었다. 4일 내내 비라도 쏟아지는 건 아닐까? 도시 사람들이라 지금까지 보다 훨씬 싹수없으면 어떡하지? 떠올릴수록 생각할 게 많아졌다. 결국 사람은 만나보면 알 것이고, 이 정도 거리면 모스크바도 화창할 것이라고 얼렁뚱땅 결론을 내렸다. 정작 부산이 맑다고 대구에도 해가 쨍쨍할 것이라 생각해 본 적은 없으면서 이렇게나마 걱정 하나를 덜어내 보았다.
그렇게 도착한 모스크바는 예상보다도 훨씬 포근했고, 택시 기사님도 무뚝뚝할지언정 싹수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시작이 괜찮았다. ‘이제 나만 잘하면 되겠다’ 생각하며 바라본 창밖엔 모스크바강이 흐르고 있었고, 모스크바는 그 큰 강에도 다 담기지 않는 대도시였다. 늘 상상만 했던 그 도시. 여느 러시아어 교재마다 마치 ‘서울 사는 민수’처럼 이반이나 알렉산드르가 산다고 적혀있던 그 도시에 도착한 게 영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난 모스크바의 중심으로 나아가는 듯했지만, 실상은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명동과 비슷한 느낌의 아르바트 거리의 끝자락, 창문에 스탈린의 일곱 자매* 중 위치 상 관광객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외무성이 비치는 호스텔에 배낭을 던져두고 곧장 붉은 광장으로 향했다. 계획이 빼곡히 적힌 엑셀의 오늘자 칸엔 ‘붉은 광장 일대’라는 여섯 글자 밖에 없었으니까. 오늘의 전부이자, 내 여행의 진짜 클라이맥스가 될 그곳이 이젠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마음이 급했다. 저 멀리에 스파스카야 망루와 크레믈의 붉은 벽돌이 보이자 ‘헉’하며 잠시 멈춰 섰고, 그제야 숨이 찰 정도로 빠르게 걷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 스탈린의 일곱 자매 : 1940-50년대 스탈린의 지시 하에 건설된 크고, 높고, 뾰족한 7개의 건물들. 러시아뿐만 아니라 폴란드 바르샤바에도 있다. 특유의 건축 양식 덕에 멀리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아직도 성 바실리 대성당을 당당하게 마주한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내가 이걸 보려고,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인스타, 페북에 재탕 삼탕하려고 달려온 시간만 한 달이었다. 기분이 이상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사실 처음은 아니었다. 여행 직전 대외활동으로 모스크바에 왔었기 때문. 그래서 괜히 오버하는 것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겠고, 나 조차도 살짝은 양심에 찔리는 부분이 있었지만, 그때도 ‘나중에 내 발로 와서 제대로 볼 거다!’라며 꿋꿋하게 실눈으로 실루엣만 담았었다. 이렇게 기획 의도와 테마가 뚜렷한 여행인데, 붉은 광장과 성 바실리 대성당만큼은 꼭 내 힘으로 마주하고 싶었다.
그렇게 다시 이곳에 섰다. 이제야 얼마나 예쁘고 멋진지 구석구석 볼 수 있는 자격이라도 생긴 기분이었다. 어떻게 할까 하다가 그냥 앞에 앉아버렸다. 이미 많은 사람이 앉아 있기도 했으니까. 붉은 광장은 생각보다 딱딱하고 차가웠지만 개의치 않았다. 사실 이쯤에서 무슨 생각을 해야 할지 엄청 고민했었다. 먼 훗날 이 여행을 글로 남기게 되면 분명 엄청 공들인 한 페이지가 될 거니까. 그래서 이것저것 준비도 했던 것 같았는데 아무 기억도 나지 않았다. 멍하니 보고 있다가 ‘왜 이리 멀리 있었을까’하며 살짝 울었고, 그러다 웃기도 했다. 그 와중에 소매치기는 무서워서 힙색을 꼭 안고 있었던 걸 생각하면, 그날의 나는 참 궁상이었다.
이 정도면 열심히 본 것 같아 붉은 광장을 뒤로하고 모스크바강변을 걸었다. 꽤 오래 앉아 있었던 탓인지 벌써 해가 지고 있었다. 맑고 깨끗한 노을이었다. 언젠가 교수님께서 말씀해 주셨던 것처럼 꽉 막혀있던 모스크바의 차도에서도, 유람선이 쉴 새 없이 지나다니던 모스크바강에서도 모두가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노을을 품은 강바람이 꽤 다정했기 때문일까, 다리 위의 사람들도 그 순간만큼은 말없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성 바실리 성당 앞에서 나는 지나간 한 달을 되새겨보았다. 힘들고 지쳤던 순간들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왜 그리 겁은 많은지 동해항에선 출항 직전까지도 괜히 설친 것 같다며 축 처져 있었고, 할까 말까 하다가 하면 후회하고, 안 해도 후회하는 시간을 보냈다. 바이칼에선 수영도 못하는데 카약은 무리일 것 같다고 쓴 문자를 지웠다 쓰기를 반복했었다. 분명한 건 이런 순간들이 반복되며 내가 내린 결정을 내가 지지하고, 즐기는 순간들도 늘어났다는 것이다. 첫 배낭여행, 뭐가 그렇게 무서웠던 걸까. 결국은 다 잘 해내고 여기까지 왔으면서.
알게 모르게 서러운 일이 많았던 건지, 다 그 순간의 최선이었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해 보아도 꺼내지 못했던 말들이 계속 맴돌았다. 그런데, 그렇다고 남은 여행, 가장 큰 두 도시를 허투루 흘려보낼 순 없었다. 아직은 기회가 남았고, 우선 오늘부터 잘 여미고 보자며 붉은 광장을 떠난 건 어렴풋이 해가 다 진 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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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박 34일,
11개의 도시와 바이칼호수까지!
10,000Km를 넘게 달렸던
2018년 스물셋 여름날의 기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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