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대학원으로의 체질개선
'과학자들은 어떻게 워킹푸어가 되었나' 특집 보고서
1. 과학자는 어떻게 워킹푸어가 되었나 - 우리는 행복하게 연구할 수 있을까?
2. 과학자에게 돈이 없는 이유: 지원금이 적어서? - 문제는 돈이 아니라, 제도와 정책
3. 박사는 왜 이렇게 많을까 - 학위 받으면, 연봉은 잘 쳐 주고?
4. 연구가 하고싶어? 정착하거나, 떠돌이가 되거나 - 연구하는 삶을 꿈꿔도 될까요
5. 대학원: 일자리는 만들고, 학생은 줄이고 - 지속가능한 대학원으로의 체질 개선
6. 대학원과 기업: 장학금과 맞춤 연구자의 교환으로- 산업 경쟁력에서 미래 경쟁력으로의 선순환
7. '과학자들은 어떻게 워킹푸어가 되었나'를 마치며 - 젊은 세대가 한국 이공계, 한국 사회의 미래이기 때문에
그렇다면, 갈등이 생산되는 자연과학 대학원 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대학원 외부에서 정책 변화를 통해 계층 갈등을 해소하는 방향과, 실질적이고 체계적인 진로지도교육을 통해 학계 쏠림현상을 완화시킴으로써 계층 갈등을 해소하는 방향이 있을 것이다. 여기서는 전자의 예로 서구 생명과학계에 성공적으로 구축되어 있는 전문연구원 제도를, 후자의 예로는 생명공학 벤처 기업과의 석사과정 연계제도의 필요성에 대해 제언하고자 한다.
1. 전문연구원 제도
자연과학 분야의 고용안정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잘 훈련된 석사-박사급 전문 연구 인력을 위한 일자리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석사 인력은 잘 교육받은 기술자로 대학이나 연구소에서 연구, 행정에 참여할 수 있다. 이들에게 적절한 임금과 직업 안정성을 제공하여 각급 실험실에서 근간이 되는 노동인력을 구축해야 한다.
>> 석사 전문연구원 - 정규직 조교
현재 국내에서는, 학사-석사 급 인력이 담당할 수 있는 업무를 대학원생이 전담하고 있다. 이와 관련된 국내 사례로 KAIST, POSTECH, 서울대학교를 살펴보았다. KAIST 생명화학공학과 대학원에서는 정부 지원 장학금을 수혜 하는 대학원생이, 졸업하기 전까지 의무적으로 두 학기 동안 강의 조교를 맡을 것을 졸업 의무요건으로 지정하고 있다. [34] POSTECH 생명과학대학원은 대학원생이 교육, 연구, 행정 업무에 참여할 경우 ‘월급’의 형태로 학교로부터 대가성 인건비를 받으며, 2016년도 기준 등록금 보조금액과 생활비 보조금액을 합쳐 석사과정은 월 1,176,500원, 박사과정 학생은 1,453,000원의 조교 수당이 기준금액으로 책정되어 있다. [35]
서울대학교 인권센터에서 2015년 발간한 ‘서울대학교 인권실태 및 제도개선 조사보고서’를 살펴보면, 서울대학교 대학원생들은 물가에 비해 조교 월급 및 연구비가 턱없이 부족한 데다 제때 지급되지 않았다며 임금체불 문제를 호소하였다. 또한 BK21 plus 사업의 연구비와 TA(강의조교) 업무 임금은 별개인데, 하나만 임금을 제공하고 다른 업무는 임금을 전혀 지급하지 않았다는, 보다 심각한 임금체불 사례도 보고되었다. [36]
이러한 사례들은 학사-석사 인력에 돌아가야 할 일자리를 없앰으로써, 연구직을 희망하는 대학원 졸업생들이 선택할 수 있는 진로 옵션을 제한할 뿐 아니라 대학원생들이 학점 이수를 목적으로 대학원 행정, 실험, 교육 업무에 투입됨으로써 대학원생 중심으로 운영되는 연구실의 역량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도록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그러므로 직업 조교에 해당하는 미국의 ‘Biology lab assistant’를 생각해볼 수 있다. [37] 생물학 학사-석사 등, 연구실 환경을 경험한 인력을 채용하며, 실험 장비를 관리하거나 단순 실험을 돕고, 경우에 따라 학부 강의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서 작업들을 담당한다. 2015년 기준으로 41,000$의 연봉을 받는다. 서울대학교 인권센터에서 발간한 자료에서도 미국의 assistant job에 관련된 경험사례를 찾아볼 수 있다. [38] 자료에 따르면, 모든 조교들은 공식적으로 고용계약을 맺고 노동시간을 엄격하게 지키도록 규제하고 있으며, 교수가 추가적인 노동을 부과할 경우 노동 착취로 간주될 수 있다.
영국의 경우, Scientific laboratory technician이라는 이름의 직업 종사자가 해당 업무를 담당한다. [39] 반복적-보조적인 실험을 진행하며, 일반적으로 25,000 파운드의 연봉을 수령한다. 해당 국가들은 대학과 직접 고용계약을 맺도록 하여, 한 연구실이 문을 닫게 되더라도 다른 연구실로 이직을 하는 데 우선권을 주는 정도의 고용안정성을 보장하며, 배운 만큼의 적절한 임금을 제공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오랜 연구실 생활을 경험한 technician이 풍부한 경험으로 신진 연구자들의 연구실 set-up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시행착오를 줄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고, 대학원생 실험 교육에 있어서도 노하우를 제공할 수 있어 다양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
>> 박사 전문연구원 – 정규직 과학자
한편, 각급 연구실에서 박사 전문연구원을 적극적으로 채용하도록 장려하는 것도 좋은 해결방안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한국 사회의 인구 구조가 변화하여, 현재의 대학원 계층구조를 감당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대학원 시스템과 계층구조가 확립되었던 1,2단계 BK21 사업 시행 당시를 살펴보면, 청년인구가 매년 80-90만 명에 달해 대학원생 중심의 연구실 운영이 용이했다. 그러나 4단계 BK21 plus 사업이 완료되는 2020년 이후에는 청년 인구가 매년 40만 명 정도에 그칠 것으로 예측되어, 더 이상 저렴하고 우수한 노동력을 제공하는 대학원생을 중심으로 연구실을 운영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40] 그러므로 대학원 신입생의 질적 하락을 피하기 위해서 각급 연구실은 현재의 대학원 신입생 규모를 축소하고, 박사 전문연구원 중심의 연구실로 계층 구조를 바꿔 나가야 한다.
미국의 사례를 살펴보면, Staff scientist나 Research associate와 같이 정 직원으로 선발하는 박사 직업 연구원들을 다양한 경로로 채용하고 있다. [41] 영국의 경우에도 Research scientist가 있어 박사 연구 인력이 안정적인 연구 환경에서 혁신적인 연구에 도전할 수 있도록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다. [42] 연구실 내부의 계층이 다양해질 때, 잘 훈련된 박사 인력이 큰 연구실에 소속되어 안정적으로 연구 활동을 계속할 수 있고, 교수에게 편중되는 업무를 효과적으로 분담하여 대학원생에게도 더 효과적인 교육을 제공하는 등, 대학원-과학계 내부의 갈등이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 요약
이러한 사례들을 살펴볼 때, 석사-박사 연구원의 장점은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먼저, 인구절벽으로 인한 연구실 역량 약화를 대비하는 한편, 고급 연구 인력을 안정적으로 채용하여 인력 수급과 일자리의 불균형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대학원생-교수로 단순하게 구성된 연구실이 갖고 있었던 문제점인 계층 간 권력 격차를 대학원생-석사 직업 조교-박사 전문연구원-교수로 연구실 내 계층을 세분화하고 다층화 함으로써 각 연구실에서의 권한 집중으로 인한 문제점을 해소할 수 있다.
기존의 연구실에서 교수가 진로지도와 임금 지급, 연구 교육을 전담했던 것과 달리, 연구실 속 계층이 다양해짐으로써 업무 분담이 효과적으로 이뤄지면 교수는 PI(연구책임자)의 본분에 더욱 충실하고, 대학원생은 양질의 진로-연구 교육을 수혜 하며, 연구기관은 전문인력 유입으로 인한 연구역량 강화를 기대할 수 있어 생명과학 대학원 구조로 인한 여러 계층 간 갈등이 근본적으로 해소될 길이 열리게 될 것이다.
[34]. KAIST 생명화학공학과 대학원생 핸드북, 2015.07
[35]. 포항공대 신문, 2016-03-09, 대학원생 지원 현황
[36]. 서울대학교 인권센터 대학원생 제도개선 연구팀, 2015-07, 2014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생 인권실태 및 제도개선 조사보고서, 서울대학교 인권센터 통권 제1호
[37]. United States Bureau of labor Statistics
[38]. 서울대학교 인권센터 대학원생 제도개선 연구팀, 2015-07, 2014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생 인권실태 및 제도개선 조사보고서, 서울대학교 인권센터 통권 제1호
[39]. 영국 국립 능력계발센터(nationalcareersservice.direct.gov.uk)
[40]. 교육부, 2013.09, 고등교육 종합발전 방안
[41]. 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홈페이지의 자료를 바탕으로 하였음. https://oir.nih.gov/
[42]. https://www.prospects.ac.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