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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보류 0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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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초름 Jul 15. 2023

2. 아이스 바닐라라테(1)

죽어, 죽어, 죽어, 죽어, 죽어, 하고

살아, 살아, 살아, 살아, 살아, 했다.


1.

죽어.

    "최부장님!"

    “...”

    "점심 안 드세요?"

    "아, 어. 먼저들 먹어."

    -꾸룩...

    상봉의 뱃속에서는 그가 선보인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은 듯 제 목소리로써 진동을 울려 퍼트린다. 껄끄럽군. 배고픔은 껄끄럽다. 살고 싶어 안달 난 것만 같잖아. 입구녕으로 들어간 쌀알은 혓바닥을 만나 가시가 되어 목구멍부터 위장까지를 속속히 할퀴어댄다. 하늘에서 밥 먹을 자격이 없다며 내리는 벌. 마땅한 벌이다. 아니, 부족하다. 그렇게 좋아하던 팥죽도 먹이지 못하고 보냈다. 그 추운 날에. 전화를 받지 않는 딸에게 연락 한 번 더 할 생각 못하고 돼지갈비에 소주를 퍼먹고 있었다. 그 순간, 어느 순간인지도 모르면서, 어느 순간인지도 모르는, 그 순간, 민서는 떠났다.

    부모는 끝까지 자식을 지켜야 한다. 그게 부모가 존재하는 이유이지. 자식을 지키지 못한 부모는 숙주 잃은 기생충일 뿐. 생존할 수 없다.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민기가 살아있잖아.

    '나는 아직 아빠야.'

살아.


2.

죽어.

    "여보세요?"

    "최민기 학생 아버님 맞으시죠? 민기가 오늘 학교에 오지 않아서요. 혹시 무슨 일이 있으신가 해서..."

    민기가 사라졌다고? 상봉은 주저 없이 왼 손에는 차 키, 오른손에는 핸드폰을 쥐고 회사를 나선다. 민기를 찾아야 한다. 두 눈으로 살아있는 민기를 봐야 한다.

    한 시간 만에 도착한 우리의 집. 언젠가는 '우리' 넷 이 살았던 이곳. 혼자 서늘하게 서 있음에도 방바닥만은 따스하기에 저 밑 발바닥에서부터 이질감이 차오른다. 민기의 방 문을 열어서,

    "어?"

    책상 위 편의점 봉지, 서둘러 손을 뻗어 뒤적여보니, 젤리? 그보다, 그 옆에 펼쳐져있는 노트.

    -누나를 죽인 건 나다.

    -살아있어도 될까.

    민기를 찾아야 한다. 두 눈으로 살아있는 아들을 봐야 한다.

살아.


3.

죽어.

    "아빠?"

    민기가 상봉의 두 눈에 담기고, 민기의 두 눈이 상봉에 담기자, 상봉은 제 손을 들어 민기의 두 눈을 바닥으로 꼬꾸라트렸다. 어두운 공원 속에서 민기의 오른쪽 뺨이 벌게진 채로 화끈거렸다. 민기는 그대로 굳은 채로, 나즈막히,

    "제가 죽었어야 했던 거지요?"

    민기의 물음과 동시에 상봉의 손바닥이 달아오르더니, 금세 번져 온몸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바스러지고 있었다. 아버지의 살가죽 안이 활활 타들어가는지 알 도리가 없는 민기는 사방으로 무한한 물음을 쏟아대었다. 그 앞에 상봉이 있을 뿐이었다.

    "말씀해 보세요. 착하고 똑똑한 누나 대신 제가 죽었어야 했는데. 멍청하고 귀찮은 걸림돌이 사라졌어야 했는데. 그렇죠?"

    "아빠가 엄마랑 이혼할 때 누나랑 나 행복하게 해 준다고 했잖아요. 그런데요? 지금 우리를 봐요. 누나는 죽어버렸어요."

    "왜 약속 안 지켰어요? 처음부터 약속을 지킬 생각 따위는 없었던 거죠? 아빠가 다 버린 거예요. 엄마도, 누나도요."

    "이제 내 차례인가요? 나도 버릴 건가요?"

    "난 혼자예요. 내 옆에는 아무도 없어요."

    민기가 자신의 오른쪽 뺨을 한 번 감싸니 그 안에 화끈거리던 열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냉기로만 가득해졌다. 그는 저 멀리로 달아나버렸다. 아무도 없는 골목에서 한참을 타들어가던 상봉은 민기가 뛰어간 저 멀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가 향할 수 있는 유일한 곳으로써.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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