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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보류 0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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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초름 Jul 17. 2023

2. 아이스 바닐라라테(2)

4.

죽어.

    그가 길을 걷다 멈춰 선 이유는 얼핏 코를 스치고 간 '그' 냄새 때문이었다. 상봉은 고개를 숙이고 실눈을 뜬 채로 냄새를 찾아 걷기 시작했다. 그 향이 꽤 진해졌을 때 고개를 든 상봉 앞에는 낯선 카페가 있었다.

    '커피 오마카세'

    저항 없이 문을 연다. 카페 사장은 미묘한 눈을 하고는 뒤를 돈다. 상봉은 카운터로 다가가면서도 시선은 사장의 뒤통수만을 향해 있었다. 곧 뒤를 돈 사장이,

    "아이스 바닐라라테입니다."

    투명한 유리잔을 받은 상봉이 그 자리에 서서 조심스러운 한 모금을 들이켜니, 혓바닥 위에 안착한 커피 방울이 코와 식도를 넘나들며 그의 몸을 휘감는다. '그'건 민서의 체취였다. 그는 빨대를 덜어내고서 바닐라라테를 들이켜대었다. 오랫동안 목이 말라있었으니까.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민기가 어디선가 죽어가고 있을지도 모르잖아.

    상봉은 남은 커피를 한숨에 들이켜고는 카페를 나섰다.

살아.


5.

죽어.

    "따뜻한 바닐라라테입니다."

    퇴근 후 본능에 이끌려 카페를 찾은 상봉은 커피잔을 들고 자리에 앉았다. 아직 목이 말라있었지만 커피가 너무나 뜨거웠기에 멍하니 앉아있던 상봉의 건너편 자리에 사장이 앉는다. 사장이 말을 건넨다.

    "어제는 급한 일이 있으셨나 봐요."

    "네. 아들을 찾아야 해서요."

    "찾으셨나요?"

    "어제만이요."

    상봉은 커피에서 나는 연기를 바라봤다. 아직도 김이 폴폴 나는 걸 보니 한참은 더 식혀야 할 듯했다. 상봉이 자신조차 의식하지 못한 채로 갑작스레 물었다.

    "... 죽으면 어떡하죠?"

    민기가 지금 죽어가고 있으면 어떡하죠? 결국 민기도 지켜내지 못한다면? 세상에 자식이 하나도 남지 않게 된다면? 그러면 어떻게 되나요?

아, 그러면 제가 죽을 수 있겠군요. 그때는 내가 죽어도 되겠어요. 나는 숙주가 죽어서야만 죽을 수 있는 기생충이니까요.

아, 저는 아들이 죽기를 바라고 있는 걸까요? 제가 미쳤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살아.


6.

    "상봉씨. 저희 카페에 자주 오시는 대학생이 있는데요. 아드님 과외를 시켜보는 건 어떠세요?"

    "네?"

    상봉은 아이스 바닐라라테를 건네받으며 되물었다. 사장이 대꾸하기로는,

    "아드님이 올해로 고등학교 3학년이라고 하셨지요. 입시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성적 관리를 위해서 좋을 거예요. 후리씨라고, 선하고 똑똑한 친구예요. 서울대학교 나와서 휴학하고 있으니 딱이겠네요."

    "좋을 것 같기도 하네요. 그런데 갑자기 왜 그런 말씀을 해주시는 거죠?"

    "민서씨, 상봉씨의 따님이셨죠?"

    "...그걸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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