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겨울의 둘레길

낙엽 카펫과 함께하는 16코스

by 젊은 느티나무

드디어. 겨울의 둘레길이다.


지난 15코스 이후로 2주간 가을 맞이 휴가를 다녀왔다.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고, 심한 감기에 걸려 일주일을 앓아누웠다. 진짜 시간이 없었는지, 상급자 코스가 무서웠는지, 아님 드디어 만난 가을을 즐기느라 바빴는지 모르겠으나 11월 내내 둘레길을 한 발짝도 걷지 못했다. 사실 상급자 코스가 무서웠던 것도 같다.


미루고 미루다, 이미 올해 안에 걷겠다는 생각은 물 건너갔고 어차피 늦은 봄에 시작했으니 계절이 돌아오기 전에만 끝내자는 마음으로 드디어 다시 길을 나섰다.


상급자 코스라 너무너무너무 걷기 싫어서, 상급자 코스 빼고 나머지 초중급자 코스만 걸을까? 생각도 잠시 했지만 너무 멋이 없는 것 같아서 큰맘 먹고 걷기로 했다. 딱 반을 돌면서 안 좋은 점은 둘레길 코스 출발점부터가 집 정반대 편의 장소라 이미 도착했을 때부터 지친다. 대중교통 타고 약 한 시간을 건너 출발지에 도착한다. 10월의 마지막 도착지였던 증산역으로 간다.


오랜만이라 조금 숨이 차긴 했지만 역시 겨울의 둘레길은 좋다. 나는 겨울의 풍경이 참 좋다. 봄, 여름의 푸르름과 생동감, 가을의 고즈넉함도 좋지만 겨울의 황량함이 오히려 내게는 더 '여행'의 풍경이다. 단풍잎들이 떨어져 단풍 카펫을 만들고 있었는데 그 풍경이 참 산과 잘 어울렸다.


이번 코스는 16코스로 봉산과 앵봉산을 걷는 '능선 따라 고즈넉함을 느끼는 산길'이다. 이름부터 산길이고 지난번에 본 것처럼 이미 산을 오르내린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체념하고 걸었다.


오랜만에 걸어서 그런지, 아님 겨울의 풍경이 좋아선지 굉장히 천천히 산책하듯 걷게 되었는데 그 템포가 좋았다. 천천히 바스락 거리는 낙엽을 밟으며 산길을 걸었다. 오랜만에 산길, 맞아 나 매주 이런 길들을 걸었었지.


겨울의 둘레길, 또 다른 장점이다. 걷다 보면 금방 더워져 외투들을 모조리 벗게 되는데 몸은 따뜻하고 공기는 차갑다. 이 청명한 공기가 좋다. 나 도대체 여름에 어떻게 걸었던 거지. 이 겨울의 산길이 유독 기분이 좋았다.

아직 단풍잎들이 매달려 있는 나무들도 있어서 딱 늦가을의 풍경을 놓치기 전에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봉산을 무아지경으로 걸었다. 역시 산 오르기는 힘들다. 지도에서 언뜻 봤을 땐 봉산이 좀 크고 앵봉산은 작아서 봉산이 메인 코스 같았는데, 은근히 다니기 괜찮아서 내가 체력이 늘은 건지, 풍경이 좋은 건지 인내심이 는 건지 싶었다. 상급자 코스도 은근히 할만한데?


앵봉산으로 넘어갔는데, 아 괜히 상급자 코스가 아니구나. 미쳤다. 너무 가파르고 계단이 미친 듯이 이어진다. 계단을 걷고 걷고 또 걸어도 끝나지 않는다. 이미 봉산을 걸으며 지칠 대로 지친 내게, 너무나 가혹한 계단. 미친 계단. 인간은 왜 계단을 걸어야 되는 거지? 계단이라는 건 경사면을 안전하게 오르기 위해 만들어졌을 텐데 너무나 인간을 안전하게 괴롭힌다. 끝나지 않는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내 인내심은 여전히 거기 그대로 있구나 생각했고, 그나마 여름이 아니길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해도 해도 너무한다. 힘든 건 고사하고 이 지루한 계단을 왜 내가 오르내리고 있어야 하는 거지? 인간은 왜 이 고행에 제 발로 찾아오는 거지?


겨우 지옥의 계단 코스를 끝내고, 오늘은 늦은 저녁에 약속이 있어서 동네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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