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9월. 가을 아침에 함께 걷는 길
초가을의 아침,
공기는 서늘하지만 햇살은 부드럽게 내려온다
돌담 사이로 난 좁은 이국의 길에
창문마다 무심히 피어있는 꽃들
너와 나는 말없이 천천히 발을 맞추며
아침의 고요 속을 나란히 걷고 있다.
아침의 냉기가 너와 나 사이를 스치지만
손을 맞잡은 온기는 그보다 따뜻하다.
너와 나의 발자국마다 새겨지는 이 순간들은
잠시나마 시간을 멈추게 한다.
발끝에서 들리는 흙길의 소리는
침묵 속에서 더 깊은 울림을 만들어주고 있다.
하지만 그 소리조차도 바닥에 흡수되는 듯
너와 나는 그저 지금 이 길 위에 있다.
나는 네 옆에서 가끔 너를 바라본다.
미처 말로 표현하지 못한 감정들이
아침 안개처럼 우리 사이에 천천히 퍼져나간다.
이 감정은 격렬하지 않다.
대신 천천히 스며드는 돌처럼 단단한 무언가가 있다.
멈추고 싶은 욕망은 없다.
그저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있는 힘껏 느끼고 있을 뿐이다.
이 길은 어디로 이어지든 상관없다.
우리는 그저 계속 걸을 것이다.
서로의 손을 놓지 않은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