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진 길 위에서
텅 빈 껍질 같은 하루가
바람에 밀려 무너진다.
기대어 서 있던 벽조차
부서진 약속의 흔적을 안고 조용히 허물어지고,
그 균열 사이로 우리의 온기마저 스며 빠져나간다.
왜 사랑은 식어가는가.
처음의 불꽃은 어찌도 이리 빨리 재가되어 손바닥 위에서 흩어지는가?
나는 알았다.
빛바랜 약속들은 다시 빛날 수 없고,
흩어진 믿음의 조각은 결코 되찾을 수 없다는 것을.
손끝에 아련히 남았던 너의 온기마저도
시간이 만든 환영에 불과했음을.
사랑이라 불렸던 그것,
우리를 가득 채웠던 말들이
어느새 텅 비어버렸고,
그 속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떠나가고 있다.
나는 떠난다.
모래 위에 쌓은 성처럼
첫 파도에 사라져 버린 너와 나의 시간들로부터.
그것이 안타까운 지조차
더 이상 묻지 않는다.
돌아보지 않는다.
너는 여전히 거기 있을 테지만,
그리고 나는
우리의 불꽃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이제야 받아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