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기억 III

흩어진 길 위에서

by 헬리오스

기억 III : 흩어진 길 위에서


텅 빈 껍질 같은 하루가

바람에 밀려 무너진다.

기대어 서 있던 벽조차

부서진 약속의 흔적을 안고 조용히 허물어지고,

그 균열 사이로 우리의 온기마저 스며 빠져나간다.


왜 사랑은 식어가는가.

처음의 불꽃은 어찌도 이리 빨리 재가되어 손바닥 위에서 흩어지는가?

나는 알았다.

빛바랜 약속들은 다시 빛날 수 없고,

흩어진 믿음의 조각은 결코 되찾을 수 없다는 것을.

손끝에 아련히 남았던 너의 온기마저도

시간이 만든 환영에 불과했음을.


사랑이라 불렸던 그것,

우리를 가득 채웠던 말들이

어느새 텅 비어버렸고,

그 속에서 우리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떠나가고 있다.


나는 떠난다.

모래 위에 쌓은 성처럼

첫 파도에 사라져 버린 너와 나의 시간들로부터.

그것이 안타까운 지조차

더 이상 묻지 않는다.


돌아보지 않는다.

너는 여전히 거기 있을 테지만,

그리고 나는

우리의 불꽃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을

이제야 받아들이니까.


keyword
이전 13화기억 I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