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 그리고 칭찬

by 김준식

우울, 그리고 칭찬


11월 20일 아침, 월요일이라 그런지 기분이 우울해지는 아침이다. 겨울이면 가끔 이런 기분에 빠지곤 한다.

사실 이즈음 세상 분위기라면 우울해질 수밖에 없지 아니한가?


거기다가 미량의 개인적 회한이 밀려오는 이 겨울날 아침……


살아갈 날들이 살아온 날들보다 적어지는 나이가 되면서, 미래는 화려한 희망과 빛나는 목적지가 아니라 지나온 날들보다 약해지고 초라해지는 일만 남는다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한다. 그런 자질구레한 생각을 자양분으로 하여 곰팡이처럼 퀴퀴한 냄새를 피우며 눈 깜짝할 사이에 번지는 것이 지금의 우울이다. 이 상황을 막아낼 특별한 방법이나 대책도 별로 없지만 사람들은 딱히 그것을 적극적으로 막아낼 수도 없는데 그 이유는 너무 빠르게, 어떤 예고도 없이 어느새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최소한 우리에게(나에게) 있어 지나온 날들이 화려하지 못했다면 앞으로도 당연히 화려하지 않을 것임은 지극히 당연한 사실인데, 우리는 별 가능성이 없는 희망을 그래도 미래에 부여하고 살아간다.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라는 절대적 명제를 철석같이 믿으며, 오늘과 비슷하거나 혹은 조금 못한 내일을 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희미하고 작은 희망이 마음에 있으므로 또 다른 에너지를 스스로의 몸속에서 마음속에서 이끌어 내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스피노자’는 ‘에티카’에서 우울과 관련하여 이렇게 말했다.


PROPOSITIO XLII : Hilaritas excessum habere nequit sed semper bona est et contra melancholia semper mala.(라틴어)

정리 42. 쾌활함은 과도할 수 없으니 언제나 선이며, 대조적으로 우울함은 언제나 악이다.

(Part IV. Of Human Bondage, or the Strength of the Emotions. 제4 부 - 인간의 예속 또는 정서의 힘에 대하여)


‘스피노자’ 선생께서는 숫제 우울을 악으로 규정해 버린다. 그것도 ‘언제나(semper=always)’라는 수식을 앞에 놓아 우울을 배격한다. 라틴어 mala는 evil이다. 나쁘다가 아니라 악인 것이다. 그 악이 내 마음에서 이 아침에 똬리를 틀고 앉아 있는 것이다.


우울하게 출근을 하여 아침 교문에서 아이들을 맞이하니 그래도 미량微量의 새로운 에너지를 얻는다. 그렇게 춥지 않은 날씨라 다행이다. 시간이 되어 교무실에 들어오니 공기가 훈훈하다. 여러 선생님들께서 추운데 고생하셨다고 칭찬을 한다. 그 말을 들으니 문득 환해진다. 우울이 거의 반쯤 녹아버렸다. 역시 칭찬이란!


칭찬에 대해 ‘스피노자’ 선생께서는 간접적으로 언급한다. ‘정의’나 ‘정리’ 그리고 ‘공준’에 서술하지는 않았지만 ‘정리’를 보충하는(정확히는 보충이 아니라 ‘결과’- ‘COROLLARIUM-추론’이라고 명시) 글에서 칭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PROP. LIII. When the mind regards itself and its own power of activity, it feels pleasure: and that pleasure is greater in proportion to the distinctness wherewith it conceives itself and its own power of activity.

정리 53. 정신은 자기 자신과 함께 자신의 활동 능력을 고찰할 때 기쁨을 느낀다. 그리고 자기 자신과 함께 자신의 활동 능력을 더 명확하게 표상하면 할수록 더 큰 기쁨을 느낀다.

(Part III. On the Origin and Nature of the Emotions. 제3 부 - 정서의 기원과 본성에 대하여)


인간은 자기 신체의 변용과 그것에 대한 관념을 통해서만 자기 자신을 인식한다. 그러므로 정신이 자기 자신을 고찰할 수 있는 일이 생기면, 정신은 그로 인하여 더 큰 완전성으로 이행한다는 것이다. 즉 움직임 없는 신체와 고정된 관념은 자신의 정체성 인식을 방해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뿐만 아니라 정신의 변용, 즉 사태의 분석과 그것의 방향에 대한 고민이 있어야만 더 큰 정신의 세계로 나아간다는 의미가 된다.


보충(라틴어로는 ‘COROLLARIUM’인데 영어로 번역하면 ‘COROLLARY’, 즉 ‘필연적인 결과’, ‘당연한 귀결’ ‘추론’으로 번역되는데 대부분의 한국어 번역본은 ‘보충’으로 되어 있다.): 이 기쁨(자기 자신과 함께 자신의 활동 능력을 더 명확하게 표상하여 얻은 기쁨)은 인간이 타인에게 더 많이 칭찬받는 것을 표상함에 따라 더욱더 커진다. 왜냐하면 그가 타인에게 더 많이 칭찬받는 것을 표상함에 따라 그는 타인이 그로부터 그만큼 큰 기쁨에 의하여, 더욱이 그 자신의 관념을 동반하는 기쁨에 의하여 자극되는 것을 표상하기 때문이다.


칭찬받은 나의 기분과 그것이 어떻게 하여 우울을 사라지게 하는지에 대한 까닭을 '스피노자' 선생의 책으로부터 얻으며, 내 기쁨과 우울의 소멸에 대한 정당성을 확보하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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