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콩이가 생각하는 공감력의 의미
"이모는 내가 아프면 같이 아파해 줄 거야?"
어느 날 은콩이가 물었습니다.
저는 언제나 무방비한 상태에서
은콩이의 질문 공격을 받곤 합니다.
어른인데 어른스러운 대답을
준비할 시간을 주지 않아요.
아직 엄마만큼 눈치가 빠르지 않은 저는
아이가 '아프다'의 '아ㅍ-' 까지만 말해도
심장이 두근거려서 호들갑을 떨곤 합니다.
"왜 어디가 아픈데? 은콩이 열 나? 아니면 다리 아파?"
"아니. 아니."
"그럼? 왜?"
"그냥 궁금해서."
동그란 눈 안에 담긴 눈동자가 까만 이유는
마음의 깊이를
쉽게 가늠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함인가요?
이모는 오늘도 난감합니다.
"은콩아 이모는 말이야. 은콩이가 아프면 똑같이 아파.
아니, 어쩌면 더 많이 아플걸."
코로나에 이어 독감 유행이 한창일 때
작은 몸이 너무 뜨거워서
숨이 닿는 것조차 두려웠던 밤들
동생과 번갈아 가며
찬물수건으로 불덩이가 되어 녹아버릴 것 같은
아이의 몸을 조심스럽게, 하지만 열심히 닦아주었어요.
매시간 체온을 재며 영점 몇 도에 가슴 졸이고
안도했던 시간들이 어제일 같이 생생했습니다.
"이모는 은콩이가 아프면 이모가 아픈 거보다 더 아파.
그래서 은콩이가 아프지 않도록 뭐든지 다 할 거야. 다 줄 거야."
"뭐든지?"
"응, 뭐든지. 이모는 다 줄 수 있어."
대답이 꽤 만족스러웠는지
아이의 입꼬리가 씨익-하고 하늘로 치솟습니다.
제 목에 팔을 두르고 꼬옥, 따스하게 안아주네요.
"이모는 공감력이 좋구나."
저는 아이의 칭찬이 왠지 낯간지럽기도 하고
이 어린아이가 생각하는 공감력이란 게
뭔지 궁금해 시치미를 떼고 묻습니다.
"응? 공감력? 그게 뭔데?"
"에이 이모는 어른이 그것도 몰라?"
우쭐한 은콩이는 왜 이렇게 귀여운지요.
이어진 아이의 말에
저는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습니다.
"공감력은 상대의 마음을 읽고
같이 아파해 주는 마음이래."
같이 아파해주는 마음이라니.
처음엔 칭찬에 기분이 우쭐해졌지만
그날 밤 은콩이의 말이 머리에 계속 맴돌았어요.
공감력이 좋다는 건 어떤 걸까요?
나는 정말 공감력이 좋은 어른일까?
아이가 아프면 같이 아파하는 것
아이가 슬프면 먼저 가슴으로 꼭 안아주는 마음
아이의 마음엔 귀를 기울이지만
사실, 직장생활을 할 땐 내 마음 하나 숨기느라 급급했던 날도 있었거든요.
누군가의 고민을 피곤하다는 이유로 건성건성 넘겨 들은 적도 있었어요.
어떤 날은 그런 아픔 별 거 아니야,라고 가볍게 치부한 적도 있었고요.
누군가를 이해하기 전에 내가 내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 때는 또 얼마나 많았게요.
그런 제가 공감력이 좋은 어른일까요?
아마도 저는 공감력이 좋은 어른은 아니었을 거예요.
하지만 은콩이 덕분에 오늘도 한걸음 더 좋은 어른이 되어 가고 있어요.
공감력이란 상대방의 마음에
내 마음을 억지로 끼워 맞춰 가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느끼는
그대로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마음이라는 거
상대의 아픔을 읽고 함께 아파해주는 마음을 넘어서
어쩌면 상대가 아프지 않도록
작은 기척에도 먼저 다가가는 마음이 아닐까요.
몸만 어른이 돼버린 이모는
매일 은콩이의 우주에서
인생의 한 수를 수정하고 배워갑니다.
무슨 그림이냐고 물었더니
지금 공감력이 필요한 두 사람을
그림으로 그렸다고 해요.
과연 누구일까?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