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먼 것은 가장 가까이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별이 아픕니다. 당신의 반대말이 당신이라니요. 이것은 당신을 보내는 의미론입니다.
한 단어의 의미는 몇 개의 의미 조각의 집합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때 한 단어의 의미를 이루고 있는 구성 요소를 의미성분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단어가 가지고 있는 의미성분을 발견하고 조작하여 궁극적으로 어휘의 의미를 규명하고자 하는 방법론을 성분분석이라고 합니다.
총각 : [+인간][+남성][+성숙][-결혼]
이때 [남성]이 [인간]을 함의하고 있으므로 [인간]은 잉여성분이 됩니다.
서로 반대되거나 대립되는 의미를 가진 단어 사이의 의미관계를 반의관계라고 하며, 반의관계에 있는 단어를 반의어라고 합니다. 반의관계의 성립 조건은 동일 의미영역, 동일 어휘 범주이면서 대조적 배타성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즉, 많은 공통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오직 하나의 차별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처녀 : [+인간][-남성][+성숙][-결혼]
부인 : [+인간][-남성][+성숙][+결혼]
총각의 반대말은 처녀가 될 수 있고, 처녀의 반대말은 총각과 부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총각과 부인은 두 개의 의미성분이 다르므로 반대말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렇듯, 헤어지고 나니 당신은 단 하나의 의미 성분만 달라진, 갑자기 당신의 반의어가 되어버렸습니다.
당신 : [+여자][+기억][+사랑][+습관]
[+기억]을 두르고 있는 괄호가 얄밉습니다. 고기를 먹으며 아이처럼 ‘아 맛있다’를 연발하는 호들갑과, 비눗방울을 불어대며 터트리는 환호성과, 코 밑에 자귀모를 붙이고 낄낄대는 유치함과, 제가 카메라를 들이대면 고개를 숙이는 수줍음과, 제 방에서 식사를 준비하던 뒷모습과, 불 꺼진 제 방에서 한 팔 거리에서 잠든 스테파네트 아가씨와, 이 공간을 다 채워도 모자랄 일들이 단 세 칸의 괄호로 묶여버리고 맙니다. 제가 죽지 않는 한 저와 함께할 제 뼈와 살처럼 잊히지 않을 텐데 말입니다. 당신과 공유되는 것은 저 자신이어서 당신은 제 몸무게만큼의 기억입니다.
[+사랑]은 또 어떻습니까. 누구에게나 사랑이라는 감정은 소중하겠지만, 제게는 사랑 자체가 희귀한 사건이었습니다. 저는 취향이 없어서 건조한 사람입니다. 좋아하는 음식, 놀이, 취미가 없습니다. 제가 조금이라도 좋아하는 것들은 대체로 싫어하는 것들을 빼고 남은 것들입니다. 친한 친구가 죽는다는 상상을 해도 저는 울 것 같지도 않습니다. 이전 여자 친구와 헤어진지도 5년이었습니다. 당신이 나타날 때까지 저는 흑백TV속 에서 모노드라마를 찍고 있었습니다.
헤어져도 이 모든 것은 변함없는데, 하나만 바뀌게 됩니다.
당신 : [+여자][+기억][+사랑][-습관]
그래서 당신은 당신의 반의어인 것입니다.
휴대전화를 바라보는 일이 힘들었습니다. 15만원 넘는 기록적인 통화 요금은 당신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전화벨이 울리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당신부터 떠올리는 습관, 자기 전에 1번을 길게 누르는 습관, 아침에 당신을 깨우기 위해 1번을 길게 누르는 습관, 수시로 카톡을 조몰락거리던 습관 등으로, 휴대전화 자체가 당신의 총체였습니다. 그리고 세상 모두를 당신과 연관 짓는 습관.
이 습관은 이미 무의식적인 것이어서 바꾸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물며 당신은 제가 최선을 다한 습관이었습니다. 수능을 준비할 때도, 글을 쓸 때도 저는 최선을 다 했다는 말을 쓰지 못합니다. 제가 인정할 수 있는 저의 최선은 제 서른 평생에 딱 두 번 있습니다. 중학생 때, 소풍날에도 교과서를 챙겼을 때와 바로 당신입니다. 그리고 당신이 끝나버린 것입니다.
언어는 오랜 시간을 두고 변하는데, 저와 이음동의어였던 당신은 한 순간에 반의어가 되어버렸습니다. 그 변칙의 시간이 압축되어 총알이 만들어지고, 당신의 얼굴을 한 총알이 심장을 관통하는 것을 이별이라 부르나봅니다. 제 선혈에서는 당신의 손에서 나는 니베아 핸드크림 냄새가 가시지 않습니다.
살아있는 것은 살아가는 [습관]의 연속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겨우 당신의 의미성분 하나가 바뀌었을 뿐인데, 세상의 모든 성분이 잉여성분으로 전락해버리는 현상을 납득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습관]으로 변한 것은 제 생(生)이 저의 반의어가 된 것이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당신은 제가 최선을 다한 제 몸무게만큼의 습관이었습니다. 로미오는 이 의미론에 순응한 청년이었습니다. 밤이면 제 손목에도 가상의 붉은 선이 몇 번씩 오갔습니다.
그런데 저는 살아남아서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저의 생존이 당신에 대한 제 ‘최선’을 부정하는 것 같아 당신에게 미안합니다. 그래서 변명을 덧붙이고자 합니다.
빨간색과 노란색은 다른 색이지요? 우리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빛의 스펙트럼을 통해서 보면 두 색은 연속된 색의 한 덩어리입니다. 우리는 임의로 경계를 잘라 ‘빨간색’과 ‘노란색’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 이름 덕분에 우리는 두 색을 구분해서 사용합니다. 그런데 과연 그 경계는 어디일까요? 주황색의 한 가운데 선을 그으면 될까요? 그렇다면 빨간색에 묻은 주황색과 노란색에 묻은 주황색은 또 뭘까요?
마찬가지로 시간의 연속성 위에서 저는 ‘하루오’라는 같은 이름의 한 인간이었습니다. 17kg짜리의 생물과, 독서실에서 『수학의 정석』을 보던 생물과 지금의 저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인데도 말입니다. 가시광선에 선을 그어 색깔을 만들고, 시간에 선을 그어 날짜를 만들듯, 제게 선을 그어 저의 동음이의어들을 만들어봅니다. 당신의 존재와 부재 사이에는 심혈을 기울여 선 하나를 긋습니다.
뒤통수에 묻은 주황색을 탈탈 털어내고 나니 저는 저의 남입니다. 저와 동음이의어로 분할된 어떤 ‘하루오’의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그는 가진 게 없어서 많이 줄 수 없었다고 합니다. 당신이 그와의 약속을 잊고 친척들과 캐러비안 베이에 간다고 자랑했을 때, 그는 기껏 삶은 계란과 사이다의 기차 여행이나 하려했던 계획이 초라해 더는 당신을 붙잡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신기하군요. 저 남의 이야기가 마치 제 이야기처럼 아프다니요. 아, 영화가 끝났군요. 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은데 엔딩 크레디트가 멈추지 않네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