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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태신 Apr 10. 2023

하늘 아래 골목길

하회마을 1

월요일

월요일이다. 산과 강 같은 자연 지역을 제외하고 건물이 있는 지역 명소, 기념관을 관람하길 원하는 여행객들에게 월요일은 난감한 요일이다. 대부분 휴무일로 지정해 놓기 마련이어서 마땅히 갈 만한 곳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한편 주말에 수많은 관람객들을 맞이해 일을 한 이런 곳의 직원들에게 월요일은 쉬는 날이다. 이들 중에도 여행을 좋아하는 이들이 많을 텐데 그들은 월요일에 어떤 여행 스케줄을 잡을지 자못 궁금하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다행히도 월요일에 관람할 수 있는 곳이 있었다. 안동엔 하회마을과 병산서원이 그렇다. 전화와 홈페이지로 확인을 하고 나서야 안심이 되었다. 안동에서 월요일 아침을 맞이한 나는 한적한 카페 안에서 이렇게 여행지를 선택하고 팸플릿을 접어 가방에 넣었다.      


트롤리

안동에서는 교보빌딩 주변이 시외로 나가는 버스들의 기착지이자 종착지이다. 근처에 구(舊) 안동역이 있어서 오래전부터 그랬을 것이다. 지금은 새로운 KTX 안동역이 바로 옆의 안동터미널과 함께 전국에서 몰려드는 관광객들의 도착지가 되었지만, 대중교통으로 안동을 여행하자면 어차피 이곳으로 와야 한다.      


뜻밖이다. 출발시각에 맞춰 도착한 것이 트롤리버스였기 때문이다. 관광 투어 버스가 아니라 ‘210번’을 달고 다니는 일반 버스다. 창문은 아치형이고 그 사이사이로 갖가지 모양의 하회탈이 얹혀 있다. 지붕 위 중앙을 중심으로 살짝 튀어나온 부분은 한옥의 용마루를, 용도는 모르겠지만 지붕 앞쪽 조그맣게 튀어나온 부분은 굴뚝을 연상케 한다.      


‘트롤리’는 열차에서 비롯한 단어다. 그래서 버스 앞부분이 기관차 모양을 하고 있다. 가운데가 살짝 튀어나온 세 개의 앞 유리창도 기관차 뉘앙스를 띤다. 버스 안에서는 한옥 나무색인 고동색의 천장과 공원 벤치를 닮은 좌석이 운치를 더하고 있다. 한옥이 가득한 하회마을 행 버스답다. 그런 신기한 기관차 버스를 타고 안동시 서쪽 경계선을 넘었다.       



돌담길  

한산했다. 이게 월요일의 장점이다. 관람객이 적은 것이다. 월요일이라 그런지 빗장을 걸어 닫은 고택들이 많았다. 그렇지만 이 한산함과 고적함이 나는 좋았다.    

  

하회마을엔 골목길이 많다. ‘하늘 아래 골목길’이다. 아파트와 빌딩, 또는 빌라 밀집 지역 사이에 있는 길이 아니라 고개를 들지 않아도 하늘이 훤히 보이는 동네 골목길. 그런 하늘 아래서 나는 담 너머 안뜰을 넘겨다보고 안뜰의 나무는 담 너머 밖을 넘겨다본다.     


하회마을의 골목길은 돌담길이기도 하다. 진흙으로만 쌓은 돌담도 있지만 각양각색의 크고 작은 돌들을 비대칭으로 배열시킨 돌담이 많다. 기와로 상단을 마감한 것은 마찬가지. 그 골목길을 천천히 발 가는 대로 걸었다. 마을 지도 보며 찾아가는 건 부질없어 보였다. 가다가 막히면 되돌아 나와 또 다른 골목길로 들어서면 되니까.


직선과 곡선 

나는 직선을 선호한다. 누군가를 안아줄 때의 포근한 곡선도 좋지만, 내 시선을 일직선으로 잡아당기는 직선이 더 매혹적이다. 안동도서관 근처 ‘배움길’의 직선도 좋았는데, 하회마을에서는 골목길에서 그 직선을 많이 접했다. 돌담을 쌓기엔 직선 형태가 유리했을 것이다. 덩달아 그림자도 직선이다. 시선에 몰입감이 든다.      




그런데 그 골목길이 90도로 꺾이는 곳엔 곡선의 자취가 들어 있었다. 직선에 약간의 곡선이 겸비된 곳이 하회마을의 골목길이다. 초가집의 골목은 그 섞임의 정취가 더하다. 직선으로 쭉 뻗다가 끝엔 어떤 모습을 감추고 있을까 궁금할 정도로만 곡선이 어울려 있다. 저기 어느 커플이 타고 왔을 자전거 두 대도 그런 골목에서 나타났다.          


그렇게 골목길을 걷다 마을 외곽 낙동강 물줄기와 결을 같이 하는 산책로로 들어섰다. 직선의 길이지만 지도로 보면 낙동강이 하회마을을, 가파르게 휜 곡선으로 에워싸고 있다. 간격이 일정한 이곳의 나무와 나무는 가지를 이용해 서로를 매만지고 있다. 꽃비를 흩날리기도 하고 산책로를 걷는 이들에게 곁눈질을 하기도 한다. 이런 곳에 있으니 시계를 보지 않게 됐다. 마음이 낭만을 가득히 머금을 때까지 걸었다.     


하회마을에서 경험한 것은 더 있다. 다음 글에서 그 진한 장면을 보여주겠다. 계속 저를 따라오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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