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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우 Oct 18. 2023

20대 후반 남성. 고등학생들과 시비 붙어 -2

메챠쿠챠 와타시노 일상


이사를 마치자마자 헬스장부터 등록했다. 연신내 후미진 골목에 위치한 허름한 헬스장이었다. 첫 방문 때 관장님이 내게 뱉은 한마디를 나는 잊을 수 없다.


“어디 트레이너세요?”


설사 그 말이 영업이었다 한들 기분이 좋았다.



시간은 흘러 어느새 11월. 아직 첫눈은 내리지 않았다. 운동을 끝내고 헬스장 앞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런데 주머니에 있어야 할 라이터가 없었다. 가방을 길 위에 아무렇게나 두고 그 옆에 쪼그려 앉아 가방 속 장비 사이를 헤집어 봤지만 이미 밤은 어둡고 라이터는 보이지 않았다. 주변을 둘러보니 사람들 사이, 머리를 노랗게 물들이고 콧수염을 기른 남자 한 명이 보였다. 그의 손 언저리에 담뱃불이 타고 있음을 확인하고 사람들을 비집고 그에게 다가가 말했다.


“저기요, 불 좀 빌립시다.”


말을 뱉고 나서 그가 태우는 담배가 그의 손가락이 아닌 그가 들고 있는 나무젓가락 사이에 끼워져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내가 비집은 사람들이 모두 그의 일행이자, 날티나게 수선한 교복을 입은 고등학생들임을 인지했을 때에는 이미 늦었다. 아뿔싸! 이거 내가 담배에 눈이 멀어 호랑이에게 불을 빌리려 들었구나! 고등학교 이학년, 일진 영감님들께 둘러싸여 구타당하던 그때가 떠올랐다. 상기된 트라우마는 헬스장에서 달아오른 몸을 차게 식혔다.


그런데도 왜일까. ‘나는 불만 빌리려고 했는데… 나는 늬들이 담배를 피우든 뭘 하든 상관없는데… 그냥 보내주면 안 될까? 요?’라고는 말하고 싶지 않았다. 익숙한 긴장감이 돌았다. 콧수염과 나. 누구도 먼저 눈을 피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역시 그건가. 그것밖에는 없는 건가. 아무래도 선빵을 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 건가? 고민하던 찰나, 노란 머리 콧수염이 시선을 내리깔았다. 옆으로는 그의 일행 중 한 사람의 손이  보였다. 들여다본 손은  아기들이 이제 막 주세요를 배울 때처럼 너무나 공손하게, 또 너무나 정석적이게 고이 모여있었다. 그 위에는 보라색 불티나 라이터가 놓여있었다.  라이터를 건네는 그가 더듬으며 말했다.


“가… 가지세요.”


라이터를 집어 담배에 불을 붙이고 다시 건네며 말했다.


“제 것도 아닌데 그러면 안돼죠.”


그는 멋쩍게 웃으며 라이터를 받아 챙겼다. 나는 집으로 향했다.


그날 밤 그동안 내가 인지하고 있던 나와 위축된 그들 앞에 서 있던 내가 부조화되어 사색에 잠겼다. 그들의 태도로 미루어 보건대 그들에게 나는 위협이었을 테다. 그리고 그들 역시 내게 위협이었다. 웃자고 선빵을 치네 마네 적었다만 사실 내게는 그럴 배짱이 없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겁을 먹었다. 다만 그들이 겁먹었다는 사실을 내게 먼저 들켰을 뿐.


싸움 얘기, 진짜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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