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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를린부부 Apr 16. 2020

자급자족의 생활

by 베를린 부부-Piggy


코로나로 인해 집콕의 나날이 점점 길어지고 있다. 베를린은 모든 가게가 문을 닫은 상태라서(슈퍼나 생활용품샵은 운영) 역시 미용실을 갈 수가 없다.

한 달에 한 번은 꼭 한인 미용실에서 머리를 다듬던 치킨이 버티고 버티다가 도저히 안 되겠는지 머리를 좀 다듬어 달라고 했다. 지인에게 이발기를 비롯한 미용세트를 빌려놓고 그 날 저녁, 급하게 유튜브로 몇 개를 봤다. 이발기이라고는 한국에 있는 반려견의 털을 밀 때 사용해봤는데 대강 밀어도 티가 안 난다는 곱슬머리도 아닌 말 그대로 찰머리의 소유자 치킨에게 첫 시도를 하자니 걱정이 밀려왔다. 

그래도 이미 판은 벌렸으니 조심조심 머리카락을 자르는데 참 말처럼 쉽지가 않았다. 동공 지진이 난 눈빛으로 애써 나에게 괜찮다고 앞으로도 계속 집에서 해보자는 치킨을 뒤로하고 사실 나는 너무 웃겨서 웃음을 참기가 어려웠다. 누가 봐도 집에서 밀었을 법한 머리를 하고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치우고 있는 그의 뒷모습이 참 쓸쓸해 보였다. 

그리고 다음 날 아기의 돌이라 가족사진을 찍었다. 치킨의 머리는 영원히 사진에 남게 되었다.


코로나 이전의 시대로 돌아가는 건 어렵다고들 한다. 새로운 일상을 만들어가야 된다고도 한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치료제와 백신이 나오기 전까지는 예전처럼 친구들과 우르르 모여서 왁자지껄 파티를 하는 것도, 목이 터져라 응원하는 경기장도 쉽지 않을 것이다. 

생활 방역이 이루어져야 하고 사람 사이의 만남은 온라인으로 대체되는 것도 많아질 것이다.

곰곰이 그런 생각을 해봤다. 시대가 다시 거꾸로 흘러 자급자족의 삶이 익숙해지는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좋은 서비스와 우수한 배달시스템이 있는 한국과 다르게 베를린은 직접 해야 되는 일들이 많았는데(물론 고가의 비용을 지불하면 되는 일들이 많다) 이젠 불필요한 접촉을 피하기 위해 자급자족해야 되는 일들이 많아질 듯하다. 


몇 번 더 연습을 하다 보면 언젠가 치킨의 머리를 멋지게 다듬어줄 날이 올 수도 있겠지만 어서 치료제와 백신이 나와서 예전처럼 미용실에 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건축사무실에서 일하는 신랑과 그림 그리는 아내와 아기가 살아가는 베를린 이야기는 매주 목요일 연재합니다."


인스타그램 @eun_grafi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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