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돌아보지 마
빛톨의 시부모는 보스턴에 살았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비행기로 여섯 시간 거리. 이동은 잦았다. 사소한 가족행사, 병환, 휴가, 기념일... 그녀의 남편은 그런 모든 시간에 그녀가 함께 있기를 바랐다.
“처음엔 괜찮았어. 진짜.” 그 말은 마치 습관이 된 기도처럼 그녀의 입가에서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나도 가족이란 걸… 다시 가져보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그 방문은 시도 때도 없이 반복되었다. 그것이 남편이 제시한 결혼 조건이었다고 말해주었다. 결혼 전 남편은 가족이 가장 중요하니까 모든 가족 행사에는 항상 보스턴으로 가야 한다고. 어떤 계절이든, 무슨 사유든, 그녀의 남편은 시댁을 ‘먼 거리의 집’이 아니라 ‘반드시 가야 할 집’처럼 여겼다.
명절, 가족 생일, 누군가의 수술, 그리고 시부모가 어디로 여행을 떠나도 항상 동반해야 하는 여행까지. 시부모가 어디론가 간다고 하면, 그녀는 언제나 액세서리처럼 남편과 동행해야 했다.
“나는… 그냥, 늘 준비돼 있어야 했어.”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마치 자신의 존재가 ‘언제든 대기 가능한 사람’으로 요약되는 듯했다. 그 대기는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집안의 분위기 속에서 점점 자신을 덜어냈다.
보스턴에 시부모집에서 그녀는 집안일을 도맡아야 했다. 집안에서는 가사도우미들이 여럿 있었지만, 남편이 그녀가 직접 집안일을 해야 한다는 말 때문에, 가사도우미보다 힘든 일을 해야만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녀는 일 년에 몇 개월을 보스턴에서 보내야 했다.
그녀는 직업이 필요했다. 남편의 집안은 부유했지만, 시부모와 남편은 그녀를 신뢰하지 않고 어린아이 취급을 했다. 시부모는 남편의 형제자매들에게는 집을 사는데 도움을 주었지만, 집안의 막내였던 그녀의 남편에게는 그 어떤 도움을 따로 도움을 주지 않았다. 그녀의 남편은 부모님 집이 결국은 자신의 집이 될 거라며 별다른 미래를 준비하지 않았고, LA 비싼 개인주택에서 월세로 살며 급여의 대부분을 지출하고 있었다.
그런 경제 사정 때문에 그녀는 직장이 필요했으나 패션 관련한 직장은 더 이상 다닐 수 없었다. 잦은 보스턴행이 어떤 직장도 가지게 하지 못했으니까. 일 년에 몇 개월간 회사에 출근하기 힘든 그녀를 직원으로 채용하는 회사는 아무 곳도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패션 관련한 일을 그만두고 캘리포니아주 부동산 자격증을 취득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잦은 보스턴행으로 간간히 일하던 부동산 회사도 다니지 못하는 상황이 되며, 그녀의 이력서는 책상 안에 구겨진 채 넣어져 그 이후로 더 이상 빛을 보지 못했다.
“그 사람은 마마보이였고, 내가 뭘 하려고 하면 그 사람은 늘 엄마 얘기부터 해. 그리고 나는 아무것도 못하게 해. 내가 미국을 잘 모른다면서...”
"그리고 내 엑스는 나를 우리 아버지가 돌아가신 때 그때부터 모든 생각이 멈추었다고 나에게 잔소리를 하며 무시했어" 그녀는 한밤의 통화에서 그렇게 말했다. 그건 불만이라기보다 체념처럼 들렸다. 남편은 처음에 자상하다고 했다. 무례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다만, 그녀가 ‘자신’으로서 존재할 틈을 허락해주지 않았다. 그래서였을까, 그녀와 한 달 동안 서울에서 보낼 때 그녀는 모든 것이 서투르고 순진해 보였다. 무엇을 하려고 해도 '왜 저걸 모를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는 철저하게 사회와 격리되다가 풀려난 사람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저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그녀의 목소리를 듣다 보면 대화조차 없었던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은 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마치 영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처럼 매일 밤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의 이야기는 어느새 새벽 2~3시가 훌쩍 넘기기 일쑤였고, 그녀의 이야기를 듣다가 그대로 잠에 빠진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마음속 깊은 어딘가에서부터 이미 붕괴되고 있는 그녀를 느꼈다.
어느 날, 그녀가 내게 말했다. “나 사실... 자살 시도를 두 번 했어” 나는 순간적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자살이라는 단어라는 게 아름답고 뭐 하나 부러울 것이 없어 보이는 그녀의 입으로 들으니 참 잔인하다고 느껴졌다. 어떤 말은 끝없이 돌려 말해도 그 의도가 흐려지지 않지만, 그 말은 단 한 줄, 마치 숨을 잠깐 멈추는 것처럼 던져졌다.
그녀는 천천히 이어 말했다.
“첫 번째는 집에서 수면제를 먹은 거였고, 남편이 그날 안 들어오는 줄 알았는데 집에 오자마자 나를 발견하고 바로 병원으로 실려갔지. 두 번째는 실패하지 않으려고 해변가에 차를 세워두고 며칠을 거기서 있었어.”
“내가 자기한테 보내주었던 사진, 실은 그때 차 안에서 찍은 사진이었어. 그냥, 아무도 없는 데 가서 정리하고 싶었어. 그때 내 사진에서 얼굴 많이 부었었지?” 내가 언젠가 받았던 그 사진 한 장. 차 안에서 찍은, 조용한 바다의 풍경이 있는 그 사진이었다. 그녀는 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웃음과 함께 말을 이어갔다.
나는 그 사진을 두고두고 바라봤던 기억이 났다. 퉁퉁 부은 슬퍼 보이는 사진 속에서 쓸쓸함이 잔뜩 얼굴에 배어 있었던 이유를 그제야 알았다. “그때는... 그냥, 여기서 다 끝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그녀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모텔에서 약을 먹었는데. 두 번째도 운이 없었지 뭐야. 깨어나니까 병원이었어.”
“깨어나자 형광등 불빛이 먼저 느껴졌는데, 내가 자살을 시도했다는 생각이 안 들더라고, 그냥 깨어나서 이곳에 왜 내가 누워 있는지 당황했어. 그리고 병원인줄 알았고, 나중에야 내가 자살을 실패했다는 생각이 들었지. 준비 많이 한 자살이었는데 그것이 실패했다는 생각에 너무 억울하더라고. 죽을 수 있었는데... 병원에 있는 동안은 모든 것들이 너무 밝아서 차라리 어둠 속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어.
나는 어렴풋이 그녀에 대해 무언가를 느끼고 있었다. 자살이라는 말을 할 때 느껴졌던 그녀의 담담함은 감정이 아니라 너무 오래 묵힌 그녀의 고통이라는 것을, 그리고 지금도 죽음의 그림자가 아직 그녀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나는 그제야 조금씩 눈치채기 시작했다. 그녀가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기 며칠 전부터 왜 종종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았는지, 집에 있을 때는 잠만 자려했었는지를, 왜 통화 중에 뜬금없이 “나 이대로 사라지면, 아무도 몰라보겠지?”라고 묻던 날이 있었는지, 왜 가족과 멀어지게 된 것인지를...
“살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니야. 그냥… 이게 사는 거 같지 않았거든.” 그녀는 항상 단정히 정리된 사람이었다. 적어도 겉보기엔. 정갈한 말투, 늘 침착한 문장, 그리고 남을 배려하는 습관들. 하지만 그 속에는 견고한 고립이 있었다.
“두 번째 자살을 실패하고 시어머니가 케타민 치료를 권했어. 자기도 미국에 오면 그거 한번 꼭 해봐야 해. 그거 받으면 내 영혼이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아. 그래서 우울증이 많이 나아졌어. 자기야. 나하고 약속 하나만 해 줄래? 나하고 같이 케타민 치료받자고. 그걸 받으면 내가 우주에서 어떤 존재인지를 알게 돼. 내 전남편은 그걸 약속했었는데 결국 약속을 안 지켰어. 자기는 꼭 나하고 같이 받을 거지? 자기도 힘든 일이 많았으니까 꼭 같이 케타민 치료가 도움이 될 거야. 나는 그 치료 이후에 우울증도 나아지고 자신감도 가지게 되었지. 자기도 꼭 나하고 같이 받아보자.”
나는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그녀가 원한다면 무엇이든지 들어주고 싶었으니까. 그녀의 미국 생활은 분명 누가 보기에 부족함 없어 보였다. 좋은 시부모, 안정된 환경, 그리고 남편이라는 이름 아래 놓인 ‘배려의 구조물’. 그러나 그 구조물은 언제나 그녀를 감싸기보다 그녀의 존재를 하나씩 지워갔다.
어느 날부터인가 통화를 하면서도 그녀는 어지럽다고 자주 눕기 시작했다. 시간이 무의미해졌고, 햇빛이 눈이 부셔 커튼을 닫았다고.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조차 구별이 안 되는 말도 자주 했다. 나는 그녀가 자기를 지키던 가장자리들이 천천히 허물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런 그녀가 나에게 그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말을 열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건 어떤 의미에서 고백이 아니라, ‘살아 있으니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나는 최대한 조용히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이야기를 중단시키지 않기 위해, 그리고 그 안에서 그녀가 조금이라도 ‘자신’을 다시 발견해 낼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매일 밤 통화를 했다. 내 퇴근길 즈음, 그녀는 자정을 넘긴 시간에 전화를 받았고, 그 시간대가 피곤하지 않냐고 물으면, “지금이 좋아. 이때가 가장 내 시간 같아.”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더 이상 시댁의 시간표에 맞춰 살지 않았다. 그것은 그녀의 선택이 아니라, 더 이상 무너질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녀와 통화를 하며 그녀의 마음이 완전히 내려앉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오랜 시간 자신의 침묵과 마주하고 있었을까를 생각하면, 밤이 모두 지나가도 나는 그녀와의 전화 통화를 끊을 수가 없었다. 나는 매일 그녀의 시간을 들었다. 무언가를 말하려다 마는 침묵까지, 그 말과 말 사이의 여백조차 그녀의 존재로 느껴졌다.
그녀는 내가 페이스북에 쓰는 글을 읽었다. 내가 이별에 대해 쓰고, 정치에서 받은 상처를 털어놓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내 생각들을 썼을 때, 그녀는 그것을 “마치 나에게 쓰는 편지 같아.”라고 말했다.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는 내 안에서 길게 울렸다. 그녀는 내가 어떤 단어를 선택하는지를 기억했고, 내 문장 속 쉼표의 리듬까지 읽어냈다.
“자기가 쓰는 글 어떤 글은 너무 내 이야기 같아서 놀랄 때가 있어. 이거 나한테 쓰는 편지 아니야?”
그녀는 항상 그렇게 말했다. 아마 내 생애 처음이었을 것이다. 내가 쓰는 글이 누군가에게 이렇게 닿을 수 있다는 것을.
그녀가 나에게 말했다.
“당신은 진짜 작가가 되어야 해. 나는 당신 글이 많은 사람을 구할 수 있다고 믿어” 빛톨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처음으로 정치가 아닌 내 이름으로 글을 쓰는 삶을 떠올렸다. 결국 그녀의 말이 나를 바꾸었다. 아무도 쓰지 못하게 했던 글들을 꺼냈고, 누구의 동의도 없이 내 삶을 말하기 시작했다. 그건 두려운 일이었지만, 그녀는 끝까지 내 편이었다.
어느 날, 그녀는 “자기, 미국에 오면 우리 어디에서 살까?”라고 물었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어디든 내가 작가가 되면, 자기하고 한적하고 조용한 숲 속 같은 곳에서 살면 되지. 나도 사람들하고 어울리는 거 싫어. 영어도 다 까먹어서 이제 잘 못하고. 그래도 글은 쓸 수 있으니까. 미국에 가면 글쟁이로 자기 옆에 하루 종일 있으면서 글 쓰지 뭐...”
그녀는 내 말 끝을 받아주었다,
“그 말처럼… 우리 그렇게 살면 좋겠다.”라고 속삭였다. 그날 밤 그녀의 그 말이 내 안에서 천천히 잦아들지 않는 메아리처럼 남았다. 전화기 속 목소리는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나는 그 웃음 속에서 그녀의 떨림을 느꼈다.
“당신의 글을 만나고 나서 내 안에 내가 조금씩 살아나는 느낌이 들었어. 그래서 내가 자기에게 말을 건 거야”
그 말은 사랑이 아니라 생존의 언어로 들렸다. 그녀의 그 고백은 사랑이 아니라 ‘존재’의 선언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구한 것이 아니라, 그저, 서로를 꺼내준 것이었다. 사라져 가던 기억 속에서 무너진 삶의 가장자리에서 어둠 속에서 서로의 빛이 되어준 것이었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만 듣고 있었는데, 나는 내 안의 모든 고통이 지워져 가는 것을 느꼈다. 나는 더 이상 이별의 글을 쓰지 않았다. 처음으로 사랑을 썼고, 그 사랑은 바로 그녀였다.
그녀의 목소리는 나에게는 어둠을 밀어내는 숨결이었고, 나는 그 숨결에 빛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녀가 내 곁에서 사라지지 않기를, 내 목소리가 바다 건너 그녀에도 닿기를, 그녀의 존재가 단지 누군가의 소유물이 아닌, 오직 하나의 이름으로 기억되기를.
그리고 나는, 어둠 속에서도 결코 사라지지 않는 빛의 한 조각으로 그녀를 기억하고 싶어 ‘빛톨’이라 불렀다. 그리고 내 첫 번째 책의 제목을 '빛이 보이지 않을 땐, 잠시 눈을 감고 기다리면 돼'라고 지었다.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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