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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불댕 Jan 23. 2021

스물세 번째 촏: 틀

초 단편 소설 시리즈

  수연은 붓을 놓았다. 자신의 키보다 두 뼘 정도 더 큰 대형 캔버스에 그려진 자신의 역작을 바라보며 그녀는 마음속으로 “이제 됐다”라고 말했다. 그 짧은 한 마디가 자신도 모르게 입 밖으로 작게 새어 나와 괜히 부끄러워졌다. 누구 하나 보는 이 없는데도 말이다. 이제 남은 일은 이번 작품을 감쌀 프레임을 구하는 것이었다. 캔버스에 그린 그림에 프레임을 덧씌우는 작가가 흔하지 않았지만 수연은 그것으로 비로소 자신의 작품이 완성된다고 믿었다.


  “요즘 재료 수급이 어려워서….”

  수연의 작품에 액자를 공급하던 최 사장의 말에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수입자재를 들여오던 유럽 현지에서 운송업체가 파업에 들어가는 바람에 며칠 째 물량이 안 나온다는 것이었다. 더 큰 문제는 이 파업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대신 내가 좋은 분 소개해 줄게요.”

  최 사장은 책상 위의 메모지를 쭉 찢더니 인근 업체의 상호와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잘 좀 부탁한다고 내가 말해놓을게요.” 최 사장은 미안함에 한 마디 덧붙였지만 수연은 자신의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 같아 좋게 느껴지진 않았다. 괜히 그녀는 최 사장이 거들먹거린다고까지 느꼈다.


  “들어오세요. 최 사장한테 연락은 받았습니다. 프레임 짜신다고….” 연락을 하긴 했구나. 내부를 둘러보며 수연은 생각했다. 공장이라는 표현이 어울리던 최 사장의 업체와는 달리 그곳은 공방에 가까웠다.

  수연은 자신의 작품을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원하는 프레임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였다. 크기와 재질, 두께와 너비 등 자신의 작품에 걸맞은 액자를 주문하였다. 하지만 공방 주인의 생각은 달랐다.

  “…. 그것보단, 이건 어때요.” 주인이 보여준 자재는 프레임에 쓰일 재료라기보다는 그냥 나무토막에 가까웠다. 수연의 반응이 신통치 않자 설명을 곁들인다. 물론 이대로   아니지만 작품 사이즈에 맞게 길이를 맞추고 작품 정수를 해치지 않도록 어느 정도 거리 유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주인은 수연이 보기에 투박하기 짝이 없는  “나무토막 다른 것으로 바꿀 생각은 추호도 없다는 것이다. 수연이 원하는 프레임 디자인은 작품을 잡아먹을 것이라는  공방 주인의 의견이었다. 게다가 공방 주인은 자신의 제안을 따르지 않는다면 프레임을 만들어   없다며 고집을 부렸다.

  수연은 자신의 작품에 대한 주권을 강탈당하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젊은 나이의 작가였지만 일생의 역작으로 여긴 작품의 마지막 터치는 자신의 것이 아니었다.




about <촏>

글쓰기 앱 <씀: 일상적 글쓰기>에 매일 업로드되는 글감을 주제로, 글쓰기 훈련용으로 쓴 초 단편 소설 시리즈입니다. <씀>의 서비스가 거의 방치 상태이다 보니 작성 글 백업 겸 틈틈이 정리해 브런치에 공개합니다.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주세요.


※ 각각의 <촏> 에피소드는 별개의 내용이며 한 편으로 끝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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