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모든 후회들이 제때 저항하지 못하고 뒤늦게 걷어차는 이불킥 같았다. 그렇다고 자책만 하다가는 기나긴 우울의 늪에서 헤어 나올 수 없었기에, 영혼이 회복되는 기간이 필요했다.
방어 본능을 일깨웠던 내면의 경보음이 또다시 빨간 불을 깜박인다. 바스러지기 일보 직전인 자존감에 단단한 갑옷을 둘러야 한다고.
"많이 힘드시죠?"
"네?"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그냥... 그냥... 힘드실 거 같아요."
휴대폰 너머 예기치 못한 그녀의 공감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목구멍에 턱 걸려 먹먹하던 울음보가 요란하게 터질까 봐 애써 참았지만 아마도 눈치챘으리라. 내가 발 담고 있는 직장이 녹록지 않음을 직업상담사인 그녀의 두 눈으로 확인한 적도 있으니까.
인생에 설치해야 할 액티브-X가 너무 많을 때
책임감에 익사할 것 같을 때
집에 돌아온 순간 눈물이 날 때
"나도, 이제는 힘들다"라고 말하라.
누구도 당신을 대신 지켜줄 수 없고, 견디기 버거운 희생은 자기 학대일 뿐이다.
조금은 이기적이어도 괜찮고 조금은 무책임해도 된다.
책임감을 논하며 질식할 때까지 스스로를 방치하는 것만큼 자기 자신에게 무책임한 일은 없다.
+그런 의미로 졸라 힘들었습니다.
그때는 솔직하지 못했지만 지금은 말할 수 있다. 저 졸라 힘들었어요.
납득되지 않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설 연휴에 새해 인사를 가장한 업무 지시라든지, 추가 수당이 지급되지 않는 포괄임금제인데도 야근과 휴일 근무를 하지 않으면 눈치가 보이는 분위기라든지. 부당함이 만연한데도 '라떼는 이보다 더했어, 이거라도 챙겨주는 걸 감지덕지해야 한다'는 사내 문화가 쉽사리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고용주의 시각에서 보면 나는 아직 덜 배고프고 덜 간절한 근로자려나. 속으로만 삼키고 내뱉지 못한 말을 대신해 주는 김수현 작가님의 그림이 가스활명수와 신경안정제보다 더 특효약이었다.
업무 인계를 위해서 퇴사를 한 달여 앞두고 지난한 버티기를 하는 중에도 의아함은 멈추지 않았다. 후임으로 연이어 들어온 2명의 신입 사원은 그야말로 경력 이음이 절실한 엄마들이었다. 그녀들도 일을 시작하면 워킹맘이 될 텐데, 다시는 워킹맘을 안 쓴다던 그의 말과는 모순되는 거 아닌가.
첫 번째로 입사했던 아이 둘의 엄마인 그녀는 눈치가 빨랐다. 인계를 받던 중에 2주를 채우지 않고 잠수를 타버렸다. 막둥이를 출산한 지 6개월 되었다던 두 번째 그녀는 다행스럽게도 친정어머니께서 육아를 도와주신단다. 주말 출근과 야근까지 더한다 해도 썰물처럼 밀려드는 업무를 감당하기에는 무리일 텐데. 안쓰럽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지옥 탈출에 성공해야 하는 나로서는 불필요한 말을 애써 덧붙이지 않았다.
구직을 위해 채용 사이트에 수차례 들락날락하던 때 유독 자주 눈에 띄던 채용 공고가 바로 이곳의 내가 맡은 자리라는 것, 입사하고서 확인한 전임자들의 짧디 짧은 근속 기간, 모든 게 힌트이자 복선이었는데. 일하고 싶은 간절함이 눈앞을 가려 그걸 눈치채지 못했다. 회사가 바라는 인재풀이 부족한 제주에서 아무리 구인이 힘들다고 한들, 열심히 살 준비가 되어있는 막막한 경력 단절 여성들에게 상생이 아니라 희생을 바라는 회사가 악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일적으로 성장하고, 너도 꿈을 크게 가져야지. 아이랑 보내는 시간은 나중에 성공해서 돈으로 얼마든지 메꿔줄 수 있어."
호된 질책을 당한 다음 날, 위로라고 건넸던 말도 도무지 이해가 가질 않았다. 아이의 일생에서 매 순간이 다시 오지 않을 순간들인데, 뭘 어떻게 채워줄 수 있다는 걸까? 그의 성공 공식이 나에게는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존중해 주길 바란 건 욕심이었을까. 아무리 물질만능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맞벌이 부모라 해도 돈 몇 푼을 더 얹어준다 한들, 아이의 유년기 시절과는 맞바꿀 수 없다는 가치관이 부정당하는 게 싫었다.
밥그릇을 놓고 협박하고, 열심히 일하는 것 외에 비굴함까지 강요하는 상사가 아무리 졸렬하다 해도 겨우 그런 인간들 때문에 삶의 방향을 수정할 필요는 없다.
2개월 만에 사직서를 내던지고 홀가분하기는커녕, 가슴 한편에 찜찜함이 남아있던 건 왜였을까. 힘든 호텔 현장에서 더럽고 치사해도 끝끝내 버텨야 했나? 그의 말대로 견뎌내고 헌신했더라면 나의 커리어는 탄탄대로였을까? 혹여나 의지박약으로 중도 하차해 버린 루저는 아닐까? 끊임없는 자기 의심과 비하 본능이 힘겹게 내린 선택을 가볍고도 우습게 만들었다. 가랑비에 옷 젖듯이 스며든 그의 기준과 잣대가 나를 자격 미달인 사람으로 하향 평준화시키고 있단 사실이 씁쓸했다. 그만큼 내 자존감은 스스로 내린 결단마저 의심할 정도로 쇠약해져 있었다.
어떤 일이 유독 힘들다면
그건 내가 잘못된 사람이라서,
내가 엄살을 떠는 사람이라서,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나라는 사람에겐 그럴 수 있는 것이다.
기성화가 내 발에는 유독 아프게 느껴진다 해도, 그게 발의 잘못은 아닌 거다.
사람들에게 힘든 마음을 털어놓으면 내 고민의 형태가 듣는 이의 기분과 생각에 따라 변질되기도 하더라. 그러나 책은 달랐다. 해석과 답이 오로지 나에게 달려있다. 생채기 난 마음에 연고를 발라줬고, 짚고 일어설 수 있는 지팡이가 되기도 했다.
나 자신을 올곧게 지키고 싶었다.
'이해하려고 하지 마, 그냥 받아들여. 원래 저런 사람인 거야.'
의욕을 상실한 월급쟁이가 지니는 수동적인 자세와 관성적인 마인드로 버텨볼까도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 월급 루팡도 대범하지 않으면 차마 못할 노릇이다. 참기만 하면 다달이 따박따박 꽂힐 급여가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았다면 배부른 소리려나. 자아가 부서지는 대가로 돈을 받고, 그 돈이 심리 치료하는 데 쓰인다면 어떨까. 손상된 마음을 회복하는 데에 한정 없는 시간과 가족의 희생이 따라야 할 것 같은데. 가계를 함께 책임지는 자로서 어느 선택이 가족에게 이로울지 기회비용을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다가 문신처럼 새겨졌던 뼈아픈 교훈이 떠올랐다.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진 말자.
우울감으로 심리상담센터의 문을 두드린 적이 있었다. 타인의 기대와 시선을 충족시키려고 나를 배제하고 내렸던 선택, 그 선택에 책임질 수 없어서 괴로웠던 시간들. 반추해 보니 두 번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이다.
더군다나, 그때는 곁에 책임질 아이가 없었다. 엄마를 거울삼아 좋은 거, 나쁜 거 가리지 않고 모방하는 딸아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니 정신이 또렷해진다.
이런 때일수록
내가 날 챙겨야지.
누가 대신 챙겨줘.
시련과 실패를 마주하는 자세를 부모로서 가르쳐야 한다면, 방법은 그저 꿋꿋이 이겨내는 모습으로 증명하는 수밖에. 훌훌 털고 멋지게 일어서는 엄마를 보여주고 싶었다.
자존감의 본질은 자신에 대한 신뢰이자 행복을 누릴 만한 사람이라 여기는 자기 존중감이다.
자존감은 스스로가 믿고 존중할 내면세계를 세우고 그 신념을 바탕으로 삶을 선택하고, 행동하며, 책임을 지는 삶의 일련의 과정에서 얻어지는 내면의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