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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 미 선 Nov 22. 2023

아줌마 탐구하기(2)

마누라

마누라.

남편들이 주로 아내를 친근하게 부르는 호칭이다.

"여보, 마누라 이리 와봐."

"여보, 마누라 나 왔어."

 술에 취해 휘청대면서 귀가를 알릴 때도 마누라를 부른다.

어렵지 않은 지인들에게 아내를 소개할 때도 "이 사람이 우리 마누라야."


마누라.

몽골식 호칭으로 마누라는 왕비를 일컫는다.

이 말은 구겨졌던 마누라의 얼굴을 환하게 펼 수 있다.

어머나! 마누라가 왕비라고요?

볼품없음에서 갑자기 신분이 수직 상승한다.


한 남자의 아내가 되어 마누라라는 이름 아닌 호칭을 얻어찬 여자.

그 여자는 결혼한 날부터 남자의 그림자가 된다.

새벽에 일어나 옹골차게 밥상을 차려서 남편의 하루를 챙긴다. 

문밖을 나서기 전 남편의 양말까지도 복장과의 조화를 생각하는 여자가 마누라의 본질이다.

툰드라 같은 세상으로 남편을 내보내면서 마음 한편이 오그라든다.


결혼을 하면서  여자는 남자의 엄마가 된다.

시어머니에게서 곳간 열쇠를 받아 쥔 것이다.

시어머니가 물려준 유산?을 덥석 받아 들고 이리저리 키워갈 준비를 해야 한다.

시어머니는 "이제 난 모른다."

"네 신랑이니 네가 알아서 해라."

"죽이든지 살리든지."

"신랑을 성장하게 하는 것도 네 몫이고 쪼그라들게 하는 것도 네 수완이다."

인수인계를 마친 시어머니는 열두 폭 치맛자락을 휘감고 휙 돌아섰다.


이제는 엄마대신  내가 이 남자의 엄마 역할을 해야 한다.

이거 야단 났다.

아기도 아니고 황소만 한 남자를  수발해야 하는 운명에 처해졌다.

남자들은 태생적으로 꼼꼼하지 못하다.

꼼꼼하면 관대하지 못하고 어쩐지 좁쌀영감 분위기다.

그러다 보니 매번 덤벙대고 나사 빠진 물건이 된다.

헐겁고  빙빙 돌고  단단하게  굳혀진 고정감이 없다.


그 고정감을 부여해 주는 사람이 아내이고 마누라다.

마누라의  전형은 한 축제장에서도 나타났다.

그들은 늦은 밤까지 야외에서 공연을 볼 작정이었다.

저녁이 되자 날씨는 쌀쌀해졌고  너도 나도 가져온 패딩이나  점퍼로 무장했다.


사람이 많다 보니  할머니는 뒷자리에 할아버지는 앞자리에 앉게 되었다.

뒤에 앉았던 할머니가 앞자리에 앉았던 할아버지 등을 톡톡 노크했다.

할아버지가 뒤를 돌아보자  할머니는 "잠깐 일어나 봐." 명령을 하달했다.

할아버지는 벌떡 일어나서 "왜?" 했지만 할머니는 아무 말없이 할아버지를 빙빙 돌리기 시작했다.

옷가게에서 빙글빙글 도는 옷걸이를 돌리듯이.


그러다가  "위에 옷 목까지 잠가."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할아버지는 점퍼 지퍼를 목 중간까지 올렸다.

"더 올려 끝까지. 그렇게 하면 바람 들어가잖아."

" 더 올리라고?"

할머니가 올리라고 하늘을 향해 또 손짓을 했다.

할아버지는 말없이 지퍼를 목 끝까지 끌어올렸다.

가만히 쳐다보던 할머니는 그제야 얼른 앉으라고 할아버지의

바지를 잡아끌었다.


엄마가 네 살배기 아들을 대하듯 할아버지의 목으로 파고들 찬 바람이 걱정되었던 할머니.

목 끝까지 지퍼를 올리고서야 심사에 합격하여  앉을 수 있었던 할아버지.

이것은 노부부가 보여준 애정이요, 역학이다.

근엄했던 젊은 날의 할아버지는 온데간데없다.


마누라의 말에 온순하게 순종한 할아버지의 태도가 노년의 보편적 모습이다. 

노년이 될수록 마누라의 위치는 확고하게 고정되고 확장된다.

그 반면에 할아버지는 입지가 점점 좁아진다.

드세던 젊은 날의 氣(기)는 쇠잔해지고  그 자리를 마누라가 

꿰차고 앉아있다.


이겼다. 

할아버지는 백기.

할머니는 청기.

백기의 손이 바지랑대처럼 높게 솟는다. 항복이다.

둥둥둥 승전고를 울리는 사람은 마누라다. 


입지가 좁아지는 정도나 범위를 보면 젊은 날 지지리 속을 썩이던

남자일수록 설자리를  잃는다.

늙기만 해 봐라  내가 젊은 날 겪은 고초를 다 복수해 줄 거다.

마누라는 이를 갈면서 남편이 늙은 호박이 되기를 기다린다.  

푹 삶아 줄 거라고.


결혼한 여자들이 흔히 겪는 병이 있다.

夫原病.(부원병)

부글부글 끓든지 지글지글 오그라 들든지 그것은 순전히 남편으로 인해 생긴 병이다.

근원이 남편으로 인한 병이라 부원병이다.


결혼 전에는 귓속말로  "세상 다 네 것으로 만들어 줄게."

에라이, 가당치도 않은 약속을 다반사로 떠벌리던 그 남자는 결혼을 하면서

노란색을 빨간색으로 바꾸었다.

웨딩마치를 울리기 전과 울리고 난 후의 태도는 노란색과 빨간색이었던 것이다.


아! 사기꾼 같으니라고.

"뭐, 세상 다 내 것으로 만들어 준다고?"

애시당초 믿지도 않았지만 그 생각을 하면 여자는 더 부아가 치민다.

허구한 날 부어라 마셔라 연락도 없이 귀갓길은 멀기만 하다.

이런  인간을 남편으로 둔 자신의 머리를 콩콩 찍어댈 뿐 다른 방도가 없다. 


마누라는 속이 쓰릴대로 쓰리다.

소화가 잘 되지 않고  뱃속에 기포가 생기기 시작다.

아무 때나 배가 아프다.

그녀의 뱃속엔 메탄가스가 한 자루나 들어있다.

과민성 대장증후군에 걸린 것이다.


그녀가 그 병에 걸린 것은 단순하게 늦게 들어온다는 이유가 아니다.

늦은 것까진 놀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

늦는다는 이유만으로 가스를 한 자루씩 뱃속에 보관하진 않는다.

문제는 엉뚱한데 있다.


언제 들어왔는지 모르게 기어 들어와 벗어놓은 와이셔츠.

이튿날 그것을 세탁하려고 집어든 마누라 손이 떨리기 시작한다.

며칠 전 쪼그리고 앉아 다려 낸 하얀 와이셔츠.

거기엔 모란꽃 보다 붉은 립스틱 자국이 새겨져 있다.

`립스틱 짙게 바르고 사랑이란 길지가 않더라.  영원하지도 않더라.`

노래를 목청껏 불러대던 노래방 도우미의 상술이 거기 그렇게 명화로 나타났다.


술에서 깨어나지도 못하고  사경?을 헤매는 남편을 흔들어 깨워

"이게 뭐야 이 무슨 지저분한 짓거리를 하고 다니는 거야."

 게슴츠레 눈을 뜬 사내는 "남자가 그럴 수도 있지. 친구들과 노래방에서

술 한 잔 하다 보니 그렇게 됐어."


남자가 그럴 수도 있단다.

남자는 아무렇게나 아무 여자하고 붙들고 부르스를 쳐도 괜찮은 걸까.

딱 자기 가슴팍 위치에 모란꽃이 피어있는 걸 본 여자라면 누구나

부처님 반 토막만 한 해량으로  그럴 수도 있겠다고 너털웃음을 웃을 수 있는지. 

그런 바다 같은 포용력은 보통 여자들에겐 없다.

아니 보통 여자 아니라도 없다.


이런 치욕을 견뎌내고 여자는 다시금 와이셔츠를 비빈다.

비비는 힘은 악력이 아니다.

순전히 두 줄로 그어진 미간의 힘이다.

미간으로 누런 파운데이션과  빨간 크림슨의 그라데이션을 지우는 것이다.


금세 아무 일 없었던 듯  와이셔츠가 뽀얗게 피어난다. 

그녀는 원상 복귀된 셔츠를 또 쪼그리고 앉아 다림질을 한다.

화딱지 그대로 한다면 쓰레기통에 확 처박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백화점에서 D마크가 찍힌 비싸게 산 옷이기 때문이다.

두 번 입고 버리긴 그녀에겐 너무 과분한  금액이다. 


여자는 열심히 다림질을 하고 나서 또 그를 위해 콩나물 국을 끓이고 시금치를 무친다.

혼자 먹는다면 하지 않아도 될 일이다.

혼자 먹을 때는 냉장고에서 보이는 것 아무거나 하나 꺼내서 물 말아먹으면 그만이다. 

다른 집안일은 열심히 하면서 자신에게 붓는 정성은 미미하다 못해 초라하기 그지없다.

 

점심이 되어 혼자 밥을 먹으면서 물 반, 눈물 반의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간다. 

그것은 쓰디쓴 약제처럼 그녀의 미각을 들볶는다. 

순간 돌아가신 엄마도 아빠도  언니도 그리움으로 몰려든다. 

부원병이 부모와 언니에게 옮겨가 위로를 구걸한다.


구걸한 위로는 땡그랑 빈 그릇에 던져지는 동전 마냥 왜소하다.

그 여자는 혼자 생각한다.

다시 태어나면 절대로 결혼 같은 건 하지 않으리라.

다음 생에는 누구를 위한 삶이 아닌 자신만의 생을 꾸려가련다.


불교의 윤회설이 그녀를 토닥토닥 어루만져 준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환상이고 현실과 동떨어진 상상이라 할지라도 

잠시 위로가 되고 희망이 된다. 

다음 생에 거는 기대는 그녀가 살아갈 동력으로 그녀를 이끌어준다.

허공이지만 허공을 향해 손을 내젓는 손짓으로 나마 

현실을 무마하고 싶은 것이다. 


그녀가 바로 마누라라는 사람이다. 

남자가 흘린 변기의 노란 자국을 말없이 닦아대면서 혼자 모노드라마를 엮어가는 여자.

그 여자가 바로 마누라이다.

세상 남편의 성공은 마누라의 인내심  80%가 맺어준 결과다.

그녀의 인내가 있어 남자는 안심하고 성공 단추를 누를 수 있었다.


시댁에서의 부당한 대우도 참아내고, 억울해도 견디고 어이가 없어도 임계점의 한계를 지켜왔다.

무두질한 속을 감내하면서 그림자처럼 뒤치다꺼리를 한 마누라의 공로,

그것은 참으로 위대한 다큐멘터리다.

남편들을 성공시킨 레시피는 절반이 마누라 눈물이다.


남편이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면 마누라가 쫓아간다.

그곳에서 매사 퉁퉁증을 내는 마누라를 보면 그건 백 프로 젊은 날 속을 썩였다는 증거다.

아픈 사람이 안쓰럽고 쓰리다가도  예전에 남편이 한 행동을 곱씹으면 

분하기 짝이 없고 밉기가 한량없다.

잊지 못하고 딸려오는 분노가  곱지 않은 시선으로 꽂힌다.


이래서 우선 마누라에게 인정받는 게 중요하다.

제 아무리 밖에서 지위가 높고 잘 나가는 사람일지라도 마누라에게

인정받지 못하면 그건 잘못 산 인생이다.

보험?

그것보다 마누라 보험이 훨씬 더  효력이 크다.


젊은 날부터 남편 아닌 내편이 되어준다면,

마누라는 그것의 50배 100배로 남편을 위해 헌신한다. 

쪼그리고 새우잠을 자는 남편을 보면 왠지 불쌍하고,

높은 곳보다 낮은 곳에 위치한 남편이 안쓰러워서 머리끝까지 담요를 뒤집어 씌워준다.

토닥토닥 지친 영혼을 잠재우면서.

그것이 마누라다. 

 

마누라들은  남편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웃고 남편의 냉혹한 말로 인해 운다. 

마누라는 남편들보다 훨씬 감수성이 예민하고 시야가 좁다.

세상을 짚어보는 더듬이가 짧아 여리디 여리다.

그 사람이 마누라다. 


이 세상 누구보다 건강을 위해 검은콩 반쪽이라도 

남편의 밥그릇 위에 얹는 것이 철칙인 여자.

언제나 생선의 중간 부분은 남편 몫으로 생각하는 여자.

황소만 한 남편의 등뒤에 작은 점처럼 고요하게 서있는 여자.

그런 여자가 마누라인 것이다. 


여자의 말을 짓뭉개고 문을 쾅 박차고 나가는 남자. 

그 남자의 뒷모습을 따라 걷는 노랫말이 있다.

내~가 힘들~고 외로워질 때 

내 얘길 조금만 들어준~다면

어느 날  갑자기 세월의 한 복판에 

덩~그러니 혼자 있진 않~겠죠.

"....."


저~ 높은 곳에 함께 가야 할~ 사람

그대 뿐~~ 입~~ 니~~ 다~~.

리타르단도(점점 느리게)를 찍는 여자. 

이 푼수 같고 바보 같은 여자가 세상에 둘도 없는 마누라이다.

마누라가 바라는 건 별도 달도 아니다.

오로지 그녀의 요구는 正道(정도)다.




유화로 그린 에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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