結婚 悲歌 (Wedding Cry)
단편 104
헤스페로스여, 빛나는 새벽이
흩뿌렸던 모든 것 모아들이는 이여.
당신은 양 떼와 염소 떼 몰아오시고,
아이를 어머니께 돌려보내시나이다.
뭇별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이여.
※ Rayor, Diane J., trans. & ed. Sappho: A New Translation of the Complete Works, Cambridge University Press, 2nd ed. 2023. Introduction and notes by André Lardinois.
두 대의 마차 중 앞에 있는 것이 신랑신부가 탄 마차다. 집에서 신혼부부를 맞아들이는 여성은 아마도 신랑의 어머니일 것이다. 선두에 있는 여성과 마중나오는 이가 횃불을 들고 있어 이 행렬이 해가 진 저녁에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Terracotta lekythos (oil flask), Public domain, via THE MET)
<note>
결혼식 노래의 일부라고 한다. 사포의 결혼식 노래에는 신랑과 신부를 예찬하고 흥겨운 잔치 분위기를 돋우는 전형적인 축가들도 있지만 이 작품은 또 다르다. 이 노래는 아마 고대 희랍 결혼식 절차에 따라 신부의 집에서 만찬을 끝낸 후, 이제는 마차에 올라 신혼집이 될 신랑의 집으로 떠나는 저녁 행렬 시작 즈음에 신부 친구들이 합창으로 불렀을 것이다.
헤스페로스(Hesperos)는 저녁에 뜨는 저녁 별(Evening Star)을 의인화한 신이다.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저녁 별이 뜨면 하루가 다 끝났다는 신호다. 목동들은 낮 동안 들에서 방목하던 양과 염소 떼를 몰아 집으로 돌아온다. 온종일 밖에서 친구들과 함께 뛰어놀던 아이들도 이제 집에 계신 어머니 품으로 돌아간다. 오늘 결혼하는 새신부도 바로 어제까지는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밤 이후, 신부는 저녁 별이 떠도 더 이상 예전처럼 정든 어머니의 친정집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지금 이 저녁은 신랑 집안의 일원으로서 새로운 삶이 시작되는 첫날인 것이다. 문헌에 따르면 심지어 신랑의 집에 도착하고 나면 신랑신부가 타고 온 마차를 불살라 버리는 의식까지 있었다고 하니, 어제까지의 소녀로서의 삶과는 완전히 단절되는 것이다.
현전하는 단편의 사라진 뒷부분에서는 양떼와 염소떼, 아이들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야 할 신부의 이야기가 읊어졌을 것이다.
오늘날도 그럴진대 하물며 이 시절 신부에게 혼인의 설렘 못지 않은 비감이 어찌 없었겠는가? 이 노래는 오직 같은 정서를 이미 겪었거나 곧 겪게 될 여성들만이 신부에게 불러줄 수 있는, 신부의 마음 한 구석 아쉬움을 따스히 위로해 주는 노래였으리라. 이런 노래들을 따로 결혼 비가(悲歌)(Wedding Lament, Wedding Cry)라고 분류하기도 한다.
요즘 결혼식에선 부모님께 인사드리는 부분에서 가장 많이들 눈물을 터뜨리는데, 이 시대 결혼식에선 바로 이 노래를 듣는 시점이 신부의 눈물 포인트가 아니었을까 싶다.
(Anton Raphael Mengs, "Hesperus as Personification of the Evening", 1765, Public domain, via Wikimedia Comm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