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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기 Jul 21. 2024

아내는 마늘을 다지고 나는 바닥을 다진다.

마늘에서 인생을 배운다.

 본격적인 여름 장마가 시작되기 전, 겨우내 흙속에서 두문불출하던 마늘의 머리끄덩이를 잡아 바깥세상으로 끄집어내는 계절이 돌아왔다. 동네 토요장터와 마트 야채코너수확한 마늘이 주홍마늘알차게들 담긴 채로 알싸한 향을 풍기고 있다. 깐 마늘로든 다진 마늘로 손수 마늘 작업을 해줄 성실한 재래식 소비자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통마늘이 마늘 독립 만세를 외치며 마늘망 속에서 해방되 순간 마늘과의 본격적인 혈투의 막이 오른다. 일단 단단히 여민 마늘 껍질을 일일이 바수어  다음 속살이 드러난 알마늘을 그대로 냉장고에 보관하거나 혹은 마늘 절구에 깐 마늘을 한주먹쯤 넣어 절구공이로 짓이겨가며 다진 마늘로 만들기도 한다. 손목 통증과 포로교환하듯 얻어진 다진 마늘은 고스란히 소분용기에 담겨 냉장고 한 구석에서 기약 없는 셋방살이를 시작한다. 앞으로 다양한 조리 연출에 동원되어 음식의 맛을 맛깔나게 더해줄 핵심 조연으로 활약할 것이다.


 내가 직장에 나간 사이 아내는 몇 날 며칠 마늘과 사투를 벌였나 보다. 마늘 껍질을 벗기고 다시 깐 마늘을 절구에 넣어 정성스레 다지고 있는, 더운 땀송이 맺힌 아내의 모습이 안 봐도 빤히 그려진다. 요즘 들어 손목이 아프다고 하는 걸 보니 아내의 손목에 상해를 입힌 가해자는 분명 마늘 녀석들이리라. 아내는 매년마다 통마늘 몇 망을 사서 고된, 마늘 다지기 작업을 자처하고 있다. 차라리 마트에서 다진 마늘을 사는 게 낫겠다며 해마다 극구 만류를 해도 아내로부터 돌아오는 답변은 한결같았다. 올해까지만 손수 까서 다지고 내년부터는 꼭 다져진 마늘을 사겠다는 아내의 대답. 혹시 아내는 기억상실증에라도 걸린 게 아닐까? 하지만 나도 가끔 깜빡하월급날은 잘만 기억하던데...

마누라는 마늘을 손으로 직접 깐다.

 주식 용어 중에 '바닥 다지기'라는 말이 있다. 매수세가 크게 감소하면 주가는 당연지사 하락한다. 그런데 주가가 하락하던 중 특정 가격대에서 다시 매수세가 조금씩 유입되어 해당 가격대를 큰 변동 없이 유지하는 구간이 있다. 이는 이후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고 하여 주식 시장에서는 '바닥을 다진다'라고 표현한다.


 난 지금 내 인생의 바닥을 다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끝없이 하락하여 횡보하고 있는 주식 그래프의 한 지점처럼 내 인생도 추락하다가 특정 지점에서 멈춰 선 기분이다. 더 이상 떨어질 곳도 없는 지점, 삶의 마지막 보루 같은 지점, 이젠 반등할 여지만 남아 있는 지점, 절망과 희망이 공존하고 있는 지점에서 난 인생의 바닥을 꾹꾹 다지고 있다.


 회오리바람은 아침 내내 불지 아니하고 소나기는 하루 종일 내리지 않듯 언젠가 내 삶에도 창창한 하늘수줍게 고개를 내밀 그날을 기다리며 버티는 중이다. 다진 마늘이 음식의 맛을 더욱 풍부하게 더하듯 나 역시 지금의 내 삶을 다지면서 내 인생의 맛을 풍성하게 더할 타이밍을 준비하고 있다. 다지고 다져진 마늘에서 감칠맛이 우러나오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도 마치 그러하지 않을까.


'체코 소설의 슬픈 왕'으로 불리는 보후밀 흐라발의 장편소설 <<너무 시끄러운 고독>>에 나온 글귀가 인생의 역경에 뭉개진 내 가슴을 한없이 두드리며 다지고 있다. 더욱 단단해지라고, 더욱 깊은 맛을 내라고 말이다.


"우리는 올리브 열매와 흡사해서, 짓눌리고 쥐어짜인 뒤에야 최상의 자신을 내놓는다."


호미와 낫이 뚝딱 만들어지는 것 같니? 연단의 망치로 두들겨 대는 과정이 없으면 그 어떤 연장도 만들어 낼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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