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먹인
입덧이라는 복병
임신 7주. 임신 초기부터 아내에게 입덧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가벼운 메스꺼움 정도였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심각해졌다. 물만 마셔도 토했다. 밥 냄새는 물론이고 비누 냄새, 그리고 남편인 나의 체취까지도 메스꺼움을 유발했다.
사실 좀 슬펐다. 임신이 확인되고 나서 나름 상상했던 모습이 있었다. 함께 태교 음식을 만들어 먹고, 산책하며 배에 말을 걸어주고, 행복한 임신 라이프를 꿈꿨는데 현실은 달랐다. 아내는 하루 종일 침대에서 신음하고, 나는 그저 물수건을 갖다 주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입덧, 의학적으로는 ‘임신성 오심과 구토(NVP, Nausea and Vomiting of Pregnancy)’라고 불린다. 일반적으로 임신 여성의 약 70~80%가 겪는 자연스러운 생리 현상이다. 원인은 완전히 밝혀지진 않았지만, 급격히 증가하는 hCG(사람 융모성 성선 자극 호르몬)와 에스트로겐 같은 호르몬이 주된 원인으로 지목된다. 특히 태반이 형성되는 초기 몇 주간 이 수치가 급격히 상승하기 때문에, 임신 6~8주경에 입덧이 시작되고, 12~16주 사이에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아내의 말로는 숙취의 어지러움이 계속되는 느낌이라고 했다. 그 뒤로 나도 과음해서 숙취가 있을 때마다 ‘이게 아내가 겪은 고통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결국 병원을 찾아 디클렉틴(Diclectin)이라는 약을 처방받았다. 디클렉틴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궁금해서 찾아봤다. 이 약은 두 가지 성분이 들어있는데, 하나는 항히스타민제로 메스꺼움을 억제하고, 다른 하나는 비타민 B6로 임신 중 부족해지기 쉬운 영양소를 보충해준다고 했다. 입덧에 효과가 있다는 약이었지만, 토하는 것은 줄여줘도 메스꺼움은 그대로여서 오히려 더 괴롭다고 했다.
“차라리 시원하게 토하면 잠깐이라도 좀 나은데, 이건 고통만 있고 풀리지가 않아…”
무력감이 밀려왔다. 아내의 고통을 대신해줄 수도 없고,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는 내가 한심했다. 그래도 뭔가 해야겠다는 마음에 인터넷을 뒤져가며 입덧에 좋다는 음식들을 찾아 헤맸다. 생강차, 레몬수, 크래커... 마트를 돌아다니며 '이거라도 먹어줬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장바구니를 채웠다.
하지만 아내는 대부분의 음식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자기 전에 사탕을 물고 자면 덜하다고 해서 치아에 안 좋은 걸 알면서도 매일 밤 사탕을 물고 잠에 들곤 했다.
식욕도 없어했지만, 종종 먹고 싶은 게 있으면 바로바로 사러 나갔다. 밤 11시에 갑자기 아귀찜이 먹고 싶다고 하면 차를 몰고 나가서 포장해왔고, 칼국수가 먹고 싶다고 하면 24시간 식당을 찾아다녔다. 그런데 정작 가져다주면 한두 숟가락 먹고는 전부 게워냈다.
어느 날 저녁, 초인종이 울렸다. 아래층 아주머니였다.
"위에서 자꾸 이상한 소리가 나서... 혹시 누가 아프신가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어보시는 아주머니께 임신 소식을 알려드렸다. 그제서야 안도의 표정을 지으시며 "아이고, 입덧이구나. 나도 예전에 그랬는데..."하시며 다음 날 죽을 끓여서 주셨다. 이웃까지 걱정하게 만들 정도로 아내의 입덧은 심각했지만, 아주머니의 따뜻한 마음에 위로가 됐다.
12주, 13주, 14주... 시간은 더디게 흘러갔다. 아내는 여전히 하루에 토했고, 체중은 임신 전보다 오히려 5킬로그램이나 줄었다. 정기 검진 때마다 아기가 괜찮을지 불안했지만, 다행히 아기는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었다.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
“입덧이 심하다고 해서 아기가 문제 있는 건 아니에요. 엄마가 못 먹더라도 아기는 필요한 영양분을 먼저 가져가요. 엄마가 고생하는 동안 아기는 튼튼하게 자라고 있는 거예요.”
그 말이 참 위안이 됐다. 아내는 고생하고 있지만, 뱃속의 콩이는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했다.
14주가 되자 조금씩 변화가 나타났다. 하루에 토하는 횟수가 줄어들고 물을 조금씩 마실 수 있게 되었다. 16주가 되자 기적처럼 입덧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아내는 다시 밥을 먹을 수 있게 되었고, 냄새에도 예민하지 않게 되었다. 의학 서적에서 읽었던 ‘16주쯤 입덧이 끝난다’는 말이 딱 맞아떨어졌다.
아내의 얼굴에 다시 생기가 돌기 시작했고, 우리는 함께 산책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동안 얼마나 기본적인 것들을 당연하게 여겼는지 깨달았다. 함께 밥 먹는 것, 산책하는 것... 이 모든 게 얼마나 소중한지 몰랐었다.
엄마, 아빠 나 여기 있어!
어느 날, 뜻밖의 선물이 찾아왔다. 아내가 평소 즐겨 듣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당첨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강릉 호텔 숙박권이었다. 힘든 입덧을 이겨내고 나니 이런 뜻밖의 선물까지 찾아왔다. 하늘이 우리를 위로해주는 것 같았다.
임신 20주째, 우리는 강릉으로 향했다. 몇 달 만의 제대로 된 여행이었다. 아내도 설레는 표정이었다. 입덧 때문에 집 밖으로 나가는 것도 힘들어했는데, 이제는 긴 여행길도 괜찮다고 했다.
도착하자 푸른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와 마음까지 상쾌해졌다. 몇 달 만에 보는 아내의 밝은 모습이었다. 이제 배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한 아내가 바다를 바라보며 콩이도 좋아할 것 같다고 말했다.
"콩이가 파도 소리 들으면 좋아할까?"
"당연하지. 우리 콩이 음악적 감각이 뛰어날 거야."
우리는 해변을 따라 천천히 산책했다. 파도 소리를 들으며, 바닷바람을 맞으며 걸었다. 파도가 치며 발을 적셨다. 정말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입덧으로 고생하던 지난 몇 달이 꿈만 같았다. 엄마가 행복하면 아기도 행복하다는 말처럼, 태교에도 좋을 것 같았다.
우리는 모레 위에 콩이에게 인사를 적었다. "콩아 안녕?" 파도가 밀려와, 글자들을 쓸어갔다. 콩이가 대답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 때였다. 아내가 갑자기 배를 만지며 말했다.
"어? 뭔가 이상해. 배에서 콩이가 발로 찬 거 같아."
태동인가 싶었다. 그러나 미약해서 아내도 반신반의 했다. 장이 움직인 것일 수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이미 두근거리고 있었다.
그날 밤 호텔에서 조심스럽게 아내의 배에 손을 얹었다. 정말 안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런데 몇 분 후, 또 한 번 똑똑히 느껴졌다. 뱃속에서 뭔가 움직이는 게 손바닥에 전해졌다.
"여보, 이거 맞지? 콩이가 움직이는 거 맞지?"
아내도 신기한 듯 배를 계속 만졌다. 콩이가 뱃속에서 "엄마, 아빠 안녕? 나 여기 있어!"라고 인사를 건네는 거 같았다. 기쁜 마음에 탄성을 질렀다.
그 순간 모든 게 달라졌다. 지금까지는 임신이라는 게 다소 추상적인 개념이었다면, 이제는 정말 구체적인 현실이 되었다. 우리 안에 새로운 생명이 자라고 있고, 그 생명이 우리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태동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임신이 더욱 실감났다. 입덧 때문에 힘들었던 지난 몇 달이 이 순간을 위한 준비 과정이었던 것 같았다. 콩이는 그동안 조용히 자라면서 이제야 "나 여기 있어요"라고 말해주는 거였다.
강릉에서의 이틀, 우리는 매일 바닷가를 산책하며 콩이와 대화했다. 아내의 배에 손을 얹고 "콩아, 바다가 예쁘지?" "파도 소리 들려?" 하고 말을 걸었다. 그럴 때마다 콩이는 작은 발길질로 대답해주는 것 같았다.
돌아오는 길에 아내가 말했다.
"이제 정말 엄마가 되는구나."
나도 덩달아 뭉클해졌다. 그동안 입덧으로 힘들어하는 아내를 보며 무력감만 느꼈는데, 이제는 정말 아빠가 되는구나 싶었다. 콩이가 건강하게 태어날 때까지, 그리고 태어난 후에도 좋은 아빠가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집으로 돌아온 후에도 태동은 계속됐다. 매일 밤 잠자리에서 아내의 배에 손을 얹고 콩이와 인사를 나눴다. 때로는 콩이가 너무 활발하게 움직여서 아내가 잠을 못 이루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행복했다.
입덧이라는 첫 번째 고비를 넘기고, 태동이라는 첫 번째 선물을 받았다. 아직 부모가 되는 길은 멀지만, 그 첫걸음은 우리가 함께 내디뎠다는 걸 잊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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