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소리 겁이 나기는, 재밌지 뭐.
왜 독일이야?
워홀이라고 생각하면 호주나 캐나다가 먼저 떠오른다. 영여권 국가도 아닌 그 낯선 국가를 들으땐 소시지와 맥주가 장난스레 튀어 오르니까.
나 역시 독일을 선택하게 될지는 몰랐다. 소시지와 맥주는 떠올리지도 못했고 독일어는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워홀을 한다면 유럽 중 하나, 쓸 수 있는 언어라고는 10년 동안 배운 애매한 영어였으니 영국이나 아일랜드에 가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연극과에서 만난 남자친구였던 수 역시 유학에 대한 얘기를 많이 꺼냈는데, 하루는 독일배우들이 독일어로 하는 연극을 보고 와서는 언어가 매력적이라고 했다. “Ich tfk! g rfk btkftk!! ” 소리가 강하고 바람이 많이 섞인 발음들을 흉내 냈다. 그러고는 독일에 움직임 씨어터를 배우러 가고 싶다고 했다. 움직임 씨어터는 일반적인 연극과는 조금 다르게 배우의 신체와 움직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연극이다. 독일어가 멋있다고 독일에 가겠다고 하는 건 당시에 난 큰 충격이었지만, 수는 그런 친구였다. 하고 싶은 건 하고, 좋아하는 건 좋아하겠다는 진취적이고 멋있는 사람이었다. 수는 나에게 함께 독일에 가자고 제안했고 난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수가 가고자 하는 학교가 어디에 있는지, 그 마을은 어떤 것인지도 몰랐다. 남자친구를 따라서 가는 독일이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으나 지금 생각해 보면 어디로 가는지도 몰랐던 걸로 보아 따라간 것이 맞았던 것 같다. 그때 난 가진 것도, 잃을 것도 없던 0의 상태였고 마음의 자존감은 마이너스였다. 연극연기과를 졸업하고 서울의 2평 남짓한 원룸에서 2년간 자취를 하며 나의 꿈은 점점 흐릿해져 갔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이유로 오디션에서 불합격을 받은 후엔 내 존재마저 흐릿해졌다. 이 바다를 넘어 홀가분하게 떠나고 싶었다. 답답한 마음이 바다 너머로 향했고 꿈에 대한 집착과 질투도 내려놓고 마음껏 헤엄치고 싶었다. 내가 태어난 제주도도, 한국도 다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저 지평선 바다 너머를 동경했던 모아나처럼 한국 밖에는 뭐가 있을지,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지 경험해보고 싶었다.
지금, 떠날 때가 된 것 같아.
우리의 항공은 FINNAIR라는 핀란드 항공사였다. 밤 11시 05분에 출발해서 헬싱키에 아침 6시 5분 도착. 1시간 30분 정도 머물렀다가 아침 09시 15분에 독일 서부에 있는 뒤셀도르프에 도착한다. 총 18시간 10분을 여행해서 우린 독일 땅을 밟게 된다. 함께 하는 이가 있으니 부담감이 줄어들었다. 게다가 수는 여행에 익숙하며 산티아고 순례길도 2번이나 다녀온 해외 숙련자였다. 해외여행은 물론이고 국내여행도 스스로 해본 적이 거의 없는 나는 상당 부분을 수에게 맡겼다.
문제가 터졌다. 여유 있게 공항에 도착해 수의 가족들과 함께 밥을 먹으려 했다. 근데 웬걸 나의 예약 이름이 내 여권 이름과 달랐다. 내 티켓을 함께 예매해 준 수가 내 이름 Minkyong에 u를 하나 더 넣어 Minkyoung으로 한 것이다. 당황하긴 했지만 큰 문제가 아니라고 여겼다. 직원분은 지금 헬싱키 핀에어 항공사에 전화해서 이름을 바꾸라고 했다. 마치 집에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어 이름을 물어보라는 정도의 난이도로 취급했다. 우리에겐 아직 2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늦은 저녁 시간 때문에 우리나라 핀에어 항공사 쪽은 이미 문이 닫힌 상태였고 헬싱키에 직접 전화해 이름을 수정해야 했다. 전화 거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도 넣어보고 빼보고 00700도 눌러보고, 해외전화 어플도 깔아봤다. 다행히 우리와 비슷한 상황에 놓인 분들에게 도움을 얻어 +빼고 002, 나머지 번호를 넣었고 전화가 닿았다. 10여 분간 통화하면서 안 되는 영어 다 쥐어짜면서 진행하고 있는 와중 수수료를 지불하는 단계쯤에 왔을 때 지지직 거리면서 신호가 끊겼다. 조바심이 치솓았다. 가까스로 붙잡고 있던 희망이 다시 물거품이 되었다. 그때 즈음 모든 사람들의 수속이 끝나가고 있었는데 직원분은 물에 쫄딱 젖어 허우적대는 생쥐꼴을 한 우리를 불러 아주 능숙한 태도로 5분 만에 해결해 주었다. 해소되지 못한 화와 조바심은 애꿎은 직원분을 향해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하지만 별 수 있나. 상대를 향한 화살은 ‘그러게 확인을 했어야지’라는 자기반성 도장과 수수료 5만 원으로 돌아왔고 우리는 다행히 입국수속을 마쳤다. 가족들과는 밥 한 끼 하지 못하고 헤어졌다. 우리는 5만 원으로 액땜을 제대로 했다며 목소리를 높여 서로를 다독였다. 약 7시간의 비행 후 핀란드 공항에 도착했다. 넓고 높은 공항을 가로지르는 키도 크고 나와는 다르게 생긴 사람들이 저마다의 목적으로 활기차게 걸어 다니고 있었다. 서울에서 온 제주 시골쥐는 모든 것이 신기했다. 내 눈의 스크린 속 새로운 세계는 그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이었다. 모든 외국인들이 영화배우 같았다. 수는 아주 익숙한 풍경이었으며 내가 신기해하는 걸 신기해했다.
워킹홀리데이라는 건 특히 독일이라는 나라는 내가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어디든 똑같겠지만. 기차를 타는 것도, 은행계좌를 만드는 것도, 통신사를 계통하는 것도 고비었다. 처음 하는 모든 순간들을 넘을 때마다 큰 숨을 몰아 쉬었고 자그마한 만족감 없이는 나아갈 수 없었다. 1주일 만에 두려움이 스멀스멀 몰려와 내 뇌와 마음을 가득 채웠고 모든 것이 삐딱하게 보였다. 집 밖으로 나가고 싶지가 않을 때도 있었다. 모두가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았다. 한국에 오기 전 아시아 여성들은 유럽에서 가장 대우를 받지 못할 것이라는 아는 사람의 말이 내 뇌리 속에서 짙게 인식됐다. 의지할 수 있는 건 수 뿐이었는데 수는 나보다 더 중요한 일을 해야 했다. 언어도 빨리 배우고 학교를 준비해야 했다. 외부와의 접촉을 두려워하며 부정적인 생각만 내뿜는 나를 수는 버거워했다. 그때 느꼈다. 난 지금 혼자라는 걸. 돌아가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어떻게 살아남을지 그것만 생각해야 했다.
장난 삼아, 아니 사실은 의지하고 싶고 누군가는 내 앞일을 말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사주 어플을 찾아 내 생년월일을 입력했다.
“학식이 많다고 해서 반드시 더 지혜로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지혜란 자신의 경험과 생각에 의해 쌓이기 마련인데, 당신은 그 지혜를 기초로 미례를 설계하는 일생일대의 중요한 시기가 올해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늘 진실하게 묻고, 공감하고, 긍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지혜로운 귀인을 찾아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숨김없이 말하고, 그에 대한 답변을 어떠한 자존심이나 편견 없이 받아들이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를 통해 당신은 자신의 경험에 빗대어 반추함으로써 지혜로운 결정을 할 수 있을 겁니다.”
마음의 집을 찾기 위해 집을 떠난 내가 집 너머의 세계를 향해 엉거주춤 서 있다. 어디 한번 헤엄쳐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