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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필 Oct 22. 2024

아내의 재훈이

   노래 교실을 가지 않는 오후면 재훈이가 나를 쓰라고 남겨 두고 간 컴퓨터로 유튜브 삼매경에 빠진다. 컴퓨터는 내가 임영웅을 좋아하는 줄 알고 임영웅 영상들을 끝없이 대어 준다. 컴퓨터가 진짜 요물인 것은 말하지 않아도 사람의 마음을 척척 알기 때문이다. 남편이 컴퓨터의 반의반만 닮았어도 좋으련만.

   일주일에 두 번, 노래교실을 가는 것 빼고 정기적인 외출은 없다. 동창회야 일 년에 서너 번 있을 뿐이고 아주 덥거나 추운 날만 거르는 운동이나 반찬거리를 사러 시장에 가는 일은 외출이라고 할 수 없다. 

   “당신은 얼마든지 나가서 다녀. 나야 무릎이 아파서 꼼짝도 못 하지만 당신은 다닐 수 있을 때 다녀. 나 신경 쓰지 말고.”

   남편의 말이 빈말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신경 쓰지 말고’가 되려면 남편의 노력이 더 필요한데 그럴 생각은 없어 보인다. 내가 생활비를 아끼고 아끼고 아무리 아껴도 더 이상 줄일 수 없는 마지노선이 있듯 어쩌면 지금의 남편 노력이 최대치인지도 모른다.

   노래 교실은 매주 화요일, 목요일 두 번 간다. 아침 일곱 시에 출근하는 재현이와 간단히 아침밥을 먹고 나면 집 청소를 하고 노래 교실에 갈 채비를 한다. 집 청소래야 걸레질 몇 번이면 끝난다. 이제는 너무 낡고 지저분해진 건물의 살림집이라 새 옷은 아껴 입어도 낡은 옷은 버린다는 생각으로 막 입듯이 어차피 글러 먹었다는 생각에 청소는 대충대충이다. 머리에 구루뿌를 말고 화장을 찍어 바른 후 구루뿌를 빼는 것도 손이 빠른 나는 초스피드로 완성한다. 다 늙은 할머니들도 노래 교실 올 때는 때깔들을 빼고 오기 때문에 나도 신경 쓰느라 쓰지만 그래 봤자 엄청 빨리 끝난다. 나는 여고 때 배구선수로서 속공에 능했듯 뭐든 빨리빨리다.


   내 준비가 끝나면 몇 시간 혼자 있을 남편 준비를 한다. 열 시에 먹는 오전 새참은 열두 시에 먹는 점심밥과의 텀이 짧기 때문에 과자나 떡처럼 간단해도 된다. 점심밥은 국만 뎁히고 냉장고에서 반찬만 꺼내면 되도록 준비해 둔다. 남편이 먹을 반찬은 냉장고 맨 위 칸의 맨 앞쪽에 가지런히 놓아두고 밥그릇, 국그릇, 수저, 물컵은 식탁에 미리 세팅해 둔다. 딱 한 번 국그릇을 실수로 빼먹은 적이 있었는데 그날 남편은 가스렌지 위에 국 냄비가 뻔히 보이는데도 국 없이 밥만 먹었다. 열 시부터 두 시간 동안 하는 노래 교실이 끝나고 점심만 먹고 돌아올 거면 남편의 오전 새참과 점심밥까지만 준비하면 되지만 카페에서 수다를 더 떨 거면 오후 새참까지 준비해 두어야 한다. 평소라면 오후 새참은 재현이가 저녁에 먹을 전이나 오징어 볶음 같은 메인 반찬을 미리 조금 부치거나 볶아 주곤 한다. 막걸리 한 잔을 곁들이기 때문에 오후 새참은 부치든 볶든 무치든 가급적 안주가 될 만한 요리를 제대로 해서 준다. 그러나 수다까지 떠느라 외출이 길어지는 날에는 그게 불가능하다. 전을 부치는 것은 당연히 남편이 못 하지만 냄비나 프라이팬에 볶기만 하면 되는 것도 남편이 못하는 건 좀 답답하다. 몇 번 시켜 봤는데 냄비 바닥을 얼마나 눌어붙게 만들어 놓는지 설거지를 하다가 팔이 빠지는 줄 알았다. 노래 교실에 처음 갔을 때는 오후까지 할머니들하고 놀곤 했으나 요즘은 대부분 점심 새참 전에 돌아온다. 그러나 칠십이 넘은 나이에 팔십이 넘은 남편의 새참이 애달파서 일찍 돌아오는 것은 물론 아니고 할머니들이 모여 하는 얘기라는 것이 너무 뻔해서 재미가 없는 탓도 있다.      

   

   할머니들이 모여 하는 얘기의 주제는 딱 세 가지다. 남편 흉, 자식이나 손주 자랑, 요즘 먹는 약. 남편 흉을 보는 것은 카페에 앉자마자 제일 먼저 터져 나오는 주제이기 때문인지 오래 참았던 오줌처럼 힘이 넘치다 못해 격렬하다. 젊어서야 남편 흉이 내 약점일 때라 있는 흉도 감추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다들 늙어서까지 자신의 삶까지 구속하고 있는 남편이 밉고 짜증 나 있는 흉 없는 흉 다 꺼내며 내 남편이 최고로 힘든 남편이라는 타이틀을 두고 맹렬히 경쟁한다. 늙은 자신이 더 늙은 남편을 건사하느라 얼마나 힘들게 살고 있는지 인정받고 싶어 안달이다. 세 번의 밥과 세 번의 새참을 매일 차리는 내가 분명 챔피언일 것 같고 9차, 10차 방어전을 넘어 누가 도전하든 영원히 타이틀을 지킬 수 있을 것 같지만 나는 입을 다문다. 

   그렇게 다들 불행의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자식이나 손주 자랑을 통해 행복의 나라로 간다. 자식 자랑은 백 퍼센트 돈 자랑이고 손주 자랑은 백 퍼센트 공부 자랑이다. 누군가의 새로 산 옷이나 가방, 신발을 섭섭하지 않도록 모두가 알아봐 주고 그 비용이 자식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면 모두가 부러움을 표현한다. 특히 어버이날이나 명절 연휴가 지난 뒤 곧바로 있는 노래 교실에는 평소에는 절대로 빠지지 않다가 빠지는 이들이 있는데 그건 무조건 자랑할 게 없어서다. 심지어 누구누구는 제 돈으로 산 것을 자식들이 사준 거라고 거짓 자랑한다는 소문이 돌기도 한다. 손주 자랑은 주로 공부가 일 등이라는 건데 반에서 일 등은 가끔 나와도 전교 일 등은 내 기억으로는 없었다. 여기가 내가 가장 억울한 대목이다. 민서는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 줄곧 전교 일 등만 했고 지금은 촌할머니들이 알지도 못하는 영재학교에 다닌다. 전교 일 등들만 모이는 그 학교에서도 민서는 일 등이라고 한다. 그래서 의대쯤은 장학금을 받느냐 마느냐가 문제지 입학은 따 논 당상이라고 한다. 그런데 재영이는 공식적으로 미혼이고 민서는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손녀딸이기 때문에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는 꼴들을 지켜보며 손주가 한 명도 없는 측은한 할머니의 부러운 웃음을 연기해야 한다. 

   요즘 먹는 약은 근심과 자랑질의 절묘한 혼합이다. 병원에서 타 먹는 약은 근심의 대상이고 자식들이 사준 각종 영양제는 자랑질의 대상이다. 노래 교실이 끝나고 점심을 먹고 나면 일제히 약들을 꺼내 삼키는데 밥이 애피타이저, 약이 메인 식사인 것 같기도 하다. 신기한 것이 젊었을 때는 아픈 게 흠인데 늙으면 아픈 게 훈장이 된다. 아프지 않으면 아무 관심을 못 받을 것처럼 어디 어디가 얼마나 심하게 아픈지 말하지 못해 다들 조급해진다. 노래 교실은 일주일에 세 번 있지만 나는 처음부터 두 번만 나갔다. 아주 재밌진 않아도 점심값 몇천 원이면 몇 시간 콧바람을 쐴 수 있다. 그러나 세 번 다 나가면 할 일이 없어 심심해 안달인 노인네로 보일 터이므로 두 번이 딱 적당하다.


    오늘은 점심을 먹고 카페에서 수다까지 떠는 날인데 자리가 파할 때쯤 카톡이 왔다. 일곱 개의 휴대폰들이 번갈아 카톡 카톡 얼마나 큰 소리로 외쳐대는지 열네 명이 모여서 대화를 하는 것 같은데도 모두들 자기 카톡을 귀신같이 알아챘다. 물론 나도 그랬다. 

    ‘엄마, 용돈 보냈어. 그리고 오늘 주문진에서 일이 끝나니까 내가 회 사서 갈게. 밥 하지 마.’

    밥 하지 말라는 것은 밥만 하고 힘들게 반찬은 하지 말라는 뜻이다. 내가 불 앞에 서서 지지고 볶으며 반찬을 만드는 일을 이제 얼마나 지긋지긋해하는지 아는 건 독립한 재훈이와 서울 사는 재영이뿐이다. 지난 수십 년 간 돈을 벌어 왔던 남편과 지금 돈을 벌어 오는 재현이는 내가 해주는 밥을 먹고살기 때문에 아무리 밥하고 설거지하는 일이 지긋지긋해도 대놓고 말할 수는 없다.  

    “막둥이가 오늘 회 사 온다고 엄마 밥하지 말라네. 아이고, 신난다, 신나.”

   나의 자랑이 도화선이 되어 밥 해 먹이는 일의 고단함과 울분이 다이어트하다 입 터진 뚱땡이 여자들의 식욕처럼 터져 나왔다. 남편들은 다들 정년퇴직을 해서 평생 하던 일에서 해방되었는데 아내들은 여전히 부엌에서 현역으로 뛰고 있었다. 아내들이 설령 부엌에서 퇴직을 한다고 해도 그건 이미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지경이라는 뜻이므로 남편들처럼 퇴직 후 느긋함을 누리지도 못할 것이다. 당연히 퇴직금도 없을 테고. 나이 든 아내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참을 수 없을 만큼 억울한 일은 늙어서까지 부엌에서 종종 대며 퇴직한 남편 밥 해주다가 남편보다 먼저 아프거나 죽는 일이다.

    일요일도 아닌데 회를 사서 재훈이가 온다니 남편은 오후 내내 싱글벙글이었다. 남편은 기분이 좋은지 나쁜지를 거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다 표현하는 사람이다. 기분 좋음을 마음껏 표현하는 일이야 지켜보는 데 별로 부담이 없으니까 상관없지만 기분 나쁨을 여과 없이 표현하는 것은 차원이 달랐다. 사람이 제 싫은 것을 어쩌면 저렇게 다 표현하고 사는지 부러워서 얄미웠다. 재훈이는 그런 면에서 남편을 똑 닮았다. 재영이야 워낙 오래 떨어져 살아서 이제 누구를 닮았는지 판가름할 수 없지만 재현이가 나를 닮고 재훈이가 남편을 닮은 것은 돈은 안 써야 통장에 모이고 밥은 안 먹어야 살이 빠지는 것처럼 명명백백한 사실이었다. 그래서 남편은 재훈이를 이뻐하고 나는 재훈이를 어려워한다.       

   

   재훈이가 아직 독립하기 전이었다. 뜬금없는 전화가 왔었다. 투다리집, 만둣집, 토스트집과 더불어 가끔 맥주잔을 기울이는 찐 동네 이웃인 치킨집이었다. 전화를 건 사람이 아니라 전화를 건 이유가 뜬금없어서 얼굴이 붉어질 지경이었다. 치킨집이 차라리 화를 냈으면 덜 미안했을 것이다.  

   “재현 엄마, 나 좀 도와줘.”

   “응? 뭐를?”

   “막내아들이 신고를 했어. 고객센터에.”

   “뭔 말이야? 누구네 막내? 뭔 신고?”

   치킨집의 목소리는 경찰서에 신고당한 사람 마냥 다급했다.

   “지난 일요일에 재현네 막내가 배달을 시켰는데 우리가 그때 바빠서 반 마리 메뉴는 배달이 안 된다고 취소했거든. 그랬더니 고객센터에 신고를 해서 본사에서 연락이 왔어.”

   그 막내가 우리 집 막내 재훈이었고 걸어서 길 건너서 조금만 걸으면 있는, 오 분 거리도 안 되는 치킨집에다 굳이 배달을 시켰으며 부당하게 주문이 취소되자 재훈이는 칼같이 법대로 한 거였다. 전화를 끊고 나는 얼굴이 다 화끈거렸다. 재훈이가 그 집이 그 집인 줄 모르고 그랬겠지 싶었는데 아니었다. 엄마 이웃사촌인지 알면서도 그런 거였다.

   “치킨만 반 마리지 이것저것 합쳐서 배달 금액 넘겼는데도 반 마리는 배달 안 된다고 취소하더라고. 평소에는 멀쩡히 해 주다가 좀 바쁘다고 그러면 안 되지. 가깝든 멀든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배달비 내고 시키는 건데. 그리고 배달이 안 되면 애초에 주문이 안 되게 해 놔야지. 시켜 놓고 이십 분인가 지나서 전화 와서는 반 마리는 배달이 안 된다잖아. 길 건너 치킨집인 거 알지. 아는 사이면 그 사장님부터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잘잘못을 다 따지고 사는지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됐다. 게다가 아는 사이면 좀 잘못했다손 치더라도 이해하고 넘어가 줘야 하는 것 아닌가 말이다. 치킨 반 마리 때문에 이 사달을 내야 하는가 말이다. 내가 사정사정해서 문제는 해결되었고 미안하다는 내게 오히려 치킨집은 고맙다고 치킨까지 한 마리 튀겨 주었다. 

   재훈이가 너무 깍쟁이 같다는 취지로 남편에게 사건의 전말을 이야기했더니 남편은 단번에 재훈이 편을 들었다. 

   “치킨집이 잘못했구먼. 장사하면서 그러면 안 되지. 손님하고 한 약속은 지켜야지. 장사 좀 잘 된다고 그러면 안 돼. 단골 떨어진다고. 그러면서 나중에 왜 장사가 안 되는지 모르겠다고 징징거린다니까.” 

   똑같은 말이어도 재훈이에게 들었을 때는 한 성깔 한다는 생각만 했었는데 남편에게 들으니 오만 정이 뚝 떨어졌다.   

   “어쩌다 한 번 그런 거 가지고 그렇게 신고까지 하는 게 너무한 거지. 한 번쯤은 이해하고 넘어가 줄 수도 있는 거지. 다들 그렇게 잘났나. 자기들은 잘못 안 하고 살아요?”

   “잘나고 못난 문제가 아니지. 게다가 실수도 아니고 일부러 그랬는데 그게 이해해 줄 문젠가. 이해해 주면 고마운 거고 이해해 주지 않아도 할 말은 없는 거지”

   말은 틀린 말이 아니지만 때로는 맞는 말이 더 복장을 긁는 법인데 남편이 주로 그랬다. 경우에 밝고 사리가 명확해서 잘못하는 일이 없고 준비성이 철저하고 걱정이 태산 같아서 실수하는 일도 없는 남편이다 보니 지적질에 도가 텄다. 같이 뉴스라도 볼라치면 아나운서보다 더 많은 멘트를 날렸다. 물론 남편이 내게는 이제 젊어서처럼 지적질을 못 한다. 그 정도 분수는 생겼다. 하지만 남편이 텔레비전 속 등장인물들이나 재현이, 그리고 아는 사람들에 대한 지적질을 쏟아놓을 때면 저 머릿속에 나에 대한 불만 리스트도 꾹꾹 눌러 담은 반찬처럼 가득 차 있겠구나 싶어 진저리가 났다. 사람이 살다 보면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거지, 그걸 하나하나 지적해서 꼭 말해야 하나 싶었다. 말하는 사람은 시원하겠지만 듣는 사람은 고역인데, 저라고 잘못이 없어서 남들이 입 다물고 있는 것이 아니건만 제 잘못은 모르는 한심한 똑똑이였다.     

   

   장가를 못 간 것 빼고는 흠잡을 데 없는 재훈이었다. 공부를 못해 똥통 학교를 나온 거야 지금 돈을 잘 버니 문제도 아니다. 게다가 재훈이는 소위 딸 같은 아들이었다. 제가 배달 음식을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버지와 형이 꼬박꼬박 나이 든 엄마에게 밥을 차리게 하는 것을 나보다 애달파하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설사 재영이가 같이 살았어도 재훈이처럼 살갑지는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럼에도 나는 재현이와 달리 재훈이에게는 마음 깊숙한 곳에서 분명한 부담감을 느낀다. 첫 번째 이유는 맏아들이 아니고 둘째 아들이기 때문인 것 같다.     재훈이가 아파트를 사서 독립하고 나자마자 나는 재훈이에게 사천만 원을 보냈다. 받아라, 안 받는다 해 봤자 결론이 뻔한 실랑이를 하기 싫어서 어느 날 오전 예고 없이 돈을 쏘았다. 당연히 재훈이는 깜짝 놀랐다. 처음에는 드디어 우리 엄마도 보이스피싱에 걸렸구나 싶어 머릿속이 하얘졌는데 아들에게 돈을 보내게 하는 보이스피싱이 있을 리 없다는 생각을 이내 했다고 한다. 

   “엄마, 돈 보냈어? 나한테?”

   “응, 엄마가 보냈어.”

   “왜? 무슨 돈이야?”

   “너가 여태 엄마한테 용돈으로 쓰라고 준 돈 엄마가 하나도 안 쓰고 모은 거야. 명절이나 생일에 준 건 엄마가 썼고 다달이 그냥 준 것만. 원래부터 모아서 돌려주려고 했었어. 재영이한테도 곧 보낼 거야.”

   “아니, 엄마도 참. 엄마 쓰라고 준 건데 모으긴 뭐 하러 모아. 다른 집 자식들도 다 그 정도는 해. 엄마가 자꾸 이러니까 누나가 뭐라 하는 거야.”

   재현이가 다달이 목돈을 집에 내놓는 것은 하나도 부담이 되지 않지만 재훈이나 재영이가 주는 돈은 명치에 걸린 음식처럼 속을 불편하게 했는데 토해내고 나니까 세상 편했다. 나의 이런 면을 재영이가 특히 못마땅해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재영이에게 돈을 보내는 것은 미루고 있지만 재영이에게도 때를 봐서 보내긴 할 거다. 민서가 대학에 입학할 때라든가 집을 옮길 때라든가 재영이에게 돈이 필요할 때가 언제일지 계속 가늠하고 있다. 그리고 돈 보낸 사람에게 내는 화는 진짜 화가 아니다. 세상 어느 누가 통장에 들어오는 돈에 화를 내겠는가. 그건 화가 아니라 미안함과 고마움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재훈이가 둘째 아들이기 때문에 부담감을 느끼는 것도 맞지만 내가 재훈이에게 결정적으로 거리감을 느끼게 된 일은 따로 있다. 그 일은 정말이지 지금 생각해도 너무 섭섭하고 억울해서 재훈이를 잡고 그때 왜 그렇게 말했느냐고,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어떻게 엄마 마음을 그렇게 몰라줄 수 있냐고 따지고 싶을 정도다.

   재훈이의 연애가 내 눈에 띈 것은 딱 한 번이었다. 내 눈에만 띈 것이 아니라, 남편 눈에도, 온 동네 사람 눈에도 뜨였다. 똥통 전문대를 다닐 때부터 사귀기 시작해서 아주 오래오래 만난 것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우리가 이 건물로 이사를 온 후부터 재훈이의 여자친구가 제 집에서 자는 것만큼 우리 집에서 잤기 때문이다. 

   애들 셋과 나는 모두 같은 초등학교를 나왔다. 촌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지애도 재훈이의 초등학교 동창이었고 지애네 부모도 내 몇 년 후배여서 총동창회나 체육대회 때 몇 번 본 적도 있었다. 몇 다리까지 건너지 않아도 사정을 훤히 아는 집의 큰딸이었다. 그게 문제였다. 이미 사정을 훤히 알고 있다는 것이. 

   지애네 부모는 좀 많이 허랑허랑했다. 바닷가에 살면서 남편은 남의 배 타고 아내는 좌판에서 생선 파는 형편이면 안 봐도 척인데도 되게 있어 보이고 싶어 했다. 총동문회나 체육대회 때 평민층이 내는 수준 이상의 성금을 턱턱 내놓아 내고도 욕을 먹는 쪽이었다. 지애네와 비슷한 처지이나 성금은 훨씬 적게 내는 평민층 동문들은 지애네 부모가 임원층 흉내를 낸다고 욕했고 지애네보다 훨씬 나은 처지이나 성금은 비슷하게 내는 임원층 동문들도 지애네 부모가 임원층 흉내를 낸다고 욕했다. 나로 말하면 돈이 많아도 돈을 펑펑 쓰는 것이 꼴 보기 싫은 사람인데 지애네 부모는 돈이 없는데도 돈을 펑펑 쓰는, 내 표현으로는 인간 말종과였다.

   천만다행으로 지애는 제 부모와 달랐다. 대학 때부터 항상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고 대부분의 아르바이트는 밤늦게 끝났다. 지애네 집은 버스가 일찍 끊기는 동네였다. 택시를 타고 집에 가면 한 시간 일한 만큼의 돈이 날아가는 동네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학원 강사로 일했는데 그 일도 밤늦게 끝나는 일이었고 지애는 여전히 택시비를 아껴야 했기 때문에 우리 집이 변두리긴 하지만 시내로 이사를 한 후에는 자주 우리 집에서 잤다. 결혼 이야기를 한 적은 없었지만 둘 다 서른에 다다르자 나와 남편은 이제는 결혼을 한다 해도 말리지는 못하겠다고 의견의 합치를 보았다. 반대를 하려면 애초에 집에서 재워 주지를 말았어야 했는데, 서른이 되기 전에 뭔가 희미하게라도 반대 의사를 표시했어야 했는데 타이밍을 놓친 게 후회됐지만 그렇게 마음을 먹었다. 서른이라는 나이는 뭔가 골인선이었다. 연애가 달려와서 결혼이라는 테이프를 끊는 선이었다.  

   그렇게 마음은 먹었지만 동네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더라도 재훈이가 지애랑 헤어지고 다른 아가씨를 만나 결혼했으면 하는 바람이 아주 컸었다. 남편이 내 엄마 때문에 고생하는 것을 오래 지켜보면서 결혼에서 서로의 부모가 당사자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나는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 딸에게 아무렇지도 손을 벌리는 부모라면 사위에게 어떻게 할지 불 보듯 뻔했다. 그나마 내 엄마는 관심을 가져 달라고 징징거렸지 돈을 달라고는 안 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재훈이와 지애가 십 년을 만나 서른이 되었다. 그중 몇 년은 노상 우리 집에서 같이 자고 먹고 했다. 골인을 하기 직전이었다. 그러니 그런 걱정이 되어도 내 엄마가 그랬듯 부모 부양은 언젠가 끝나니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라고 애써 위안했다.

    하지만 어떤 생각으로도 위안이 되지 않는 문제가 있었다. 바로 지애의 지체 장애 남동생이었다. 어릴 때부터 지애가 돌보면서 키운 남동생이라 바닷가에 엎뎌 생계를 잇는 부모보다 지애 말이라면 껌뻑 죽는다고 했다.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의 기복으로 밥을 내리 굶는다거나 항구를 떠나는 배처럼 큰소리를 지를 때면 지애를 보여주는 것 외에는 해결책이 없는 남동생이라고 했다. 우리 집에서 자던 지애가 새벽에 집으로 달려간 적도 여러 번 있었다. 매번 재훈이가 같이 택시를 타고 갔다가 혼자 돌아왔고 재훈이가 차를 산 후에는 그 차가 삐뽀삐뽀 지애 동생의 구급차 역할을 했다. 지체 장애가 있는 사람의 수명이 어떠한지는 내가 잘 모르나 그 남동생을 돌보는 일은 부모를 돌보는 일보다 훨씬 길게 이어질 터였다. 재훈이는 지애와 함께 그 일을 오래오래 해야 할 거고. 내가 칠십이 넘어서도 부엌 바닥에서 못 벗어나듯 재훈이도 늙어서까지 지애 남동생을 돌봐야 할지도 모른다.   

   “나중에 지애네 부모님 돌아가시면 동생은 어디 시설에 보내나? 지애가 데리고 사나?”

   슬쩍 한번 떠 본 적이 있었다. 둘 사이에 혹시 어떤 합의가 있었는지 궁금했다.

   “지애 동생? 글쎄. 난 잘 모르겠는데.”

   사귀긴 하지만 결혼은 할 생각이 없다는 뜻인 걸까.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그러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 중 어느 것이 더 큰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면 당연히 시설로 보낼 거니까 합의도 필요 없다는 뜻일까. 혹시 당연히 데리고 살 거니까 말할 필요도 없다는 뜻일까. 


   다 쓸데없는 고민이었다. 재훈이는 지애랑 헤어졌다. 그것도 대판 싸우고 단칼에 미련 없이 헤어졌다. 지애랑 헤어지고 술도 안 마시고 진짜 멀쩡하게 잘 지내는 재훈이었지만 그래도 긴가민가했다. 겉이 멀쩡하다고 속까지 멀쩡한 게 아니라는 건 누구보다 내가 잘 아니까. 한참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왜 지애랑 헤어졌냐고 물은 것도 그래서였다. 

   둘 사이에 오랜 연애가 가능했던 것은 몇 가지 원칙을 철저히 지켰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중 하나가 서로 돈거래를 하지 않는다는 원칙이었고 거의 십 년을 만나면서 둘은 그 원칙을 돌아가신 시어머니가 살아생전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듯 잘 지켰단다. 그런데 지애가 재훈이에게 돈을 좀 빌려 달라고 했고 그래서 헤어졌단다. 너무 간단한 요약이라서 오래 고민하고 물은 내가 바보 같았다.

   “얼마를 빌려달라고 했는데?”

   “삼천만 원.”

   “삼천만 원? 아이구 금액이 너무 크긴 크네. 지애는 어디에 그렇게 큰돈이 필요했대?”

   “몰라.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어차피 안 빌려줄 건데 뭐 하러 물어봐.” 

   “야, 그건 니가 너무한 거 아니냐. 너무 매정하게 했다. 그래도 어디에 쓸 거냐고 물어보고 못 빌려주면 못 빌려주는 이유를 얘기해 줘야지. 너한테 그런 말 하기가 진짜 어려웠을 텐데 니가 너무했다.”

   “어떤 사정이 있어도 서로 돈거래는 하지 말자고 약속했던 거야. 어떤 사정이 있어도. 심지어 그 약속은 지애가 먼저 정하자고 했어. 친구들 보니까 남자 친구들이 여자 친구한테 조금씩 조금씩 돈을 빌리고 갚지 않는 일이 그렇게 많더래. 달라고 하기에는 치사하고 그냥 두기에는 짜증 난다고 다들 그러더래. 사실 그 말을 들을 때 기분이 나빴어. 내가 저한테 삥이나 뜯을 남자 친구로 보이나 싶어서. 그래서 그러자고 했지. 어떤 경우에도 서로 돈 얘기는 하지 말자! 사정 따라 달라질 거면 그런 약속을 애초에 안 했어야지. 나라고 지애 만나는 중에 돈이 급한 적이 없었겠어? 가까운 사이일수록 약속을 잘 지켜야 하고 상대방이 거절할 수 없는 부탁은 하지 말아야 하는 거라고 걔가 늘 얘기했었다고.”

   “사람이 다 그런 거야. 자기한테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를 땐 무슨 말이든 하는 거지. 그래서 니가, 돈 얘기했다고 헤어지자고 했나? ”

   “아니, 내가 더 화가 난 건, 내가 못 빌려준다고 하니까 자기가 화를 내면서 먼저 헤어지자고 하더라고. 지애가 그냥 알았다고 했으면 헤어지지는 않았지. 자기가 자존심 다 내려놓고 딱 한 번 부탁하는 건데 어떻게 그러냐고 화를 내면서 헤어지자고 하는데 기가 막혀서 아무 말 못 하고 그냥 헤어진 게 지금 생각해도 열받아.”     

   지애가 상처를 받았겠구나 걱정스러웠는데 나 역시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고 오지랖 넓게 남의 걱정을 하고 있던 거였다.

   “그리고 엄마도 내가 지애랑 헤어졌으면 했잖아. 뭘 아쉬워해?”

   “엄마가? 엄마가 언제 그랬어?”

   “대놓고 말한 적은 없지만 나나 지애나 다 알고 있었지. 나는 엄마가 드라마에서 본 시어머니처럼 할 줄은 생각도 못했었는데. 지애 부모님이나 동생 얘기할 때마다 엄마가 지애 싫어하는 거 엄청 티 났었어.”

   드라마에서 본 시어머니라니. 누구네 며느리는 시집올 때 뭘 해왔더라며 며느리네 집을 돌려 까는 시어머니? 딸은 손가락 하나 까딱 안 하게 하면서 며느리만 식모처럼 부려 먹는 시어머니? 맛있는 반찬은 아들 앞으로만 몰아주고 며느리 앞에는 나물 반찬만 늘어놓는 시어머니? 고깃집에 가면 며느리는 고기를 굽게만 하고 알맞게 익은 고기는 아들 앞접시에만 놓아주는 시어머니? 시도 때도 없이 아들네 집에 가서 냉장고 안이며 집안 곳곳을 검사하는 시어머니? 아들은 언제 낳아 줄 거냐며 만날 때마다 손자 타령하는 시어머니? 자고로 여자가 돈 번다고 큰소리치지 말고 남편부터 하늘처럼 섬겨야 한다고 잔소리하는 시어머니? 내가 드라마에서 본 시어머니는 그런 시어머니인데 재훈이가 말하는 드라마는 어느 나라 드라마인 걸까.

  결혼도 안 한 여자친구가 자고 가면서 이불에 묻혀 둔 생리 피까지 아무 소리 안 하고 빨아 준 나에게 드라마에서 본 시어머니 같다니, 억울하고 분해서 한동안 밥이 안 넘어갈 지경이었다. 아들 키워 봤자 하나도 소용없다고, 결혼한 아들은 남이라는 시어머니들의 대사가 왜 드라마마다 등장하는지 단박에 이해되었다. 나는 남에게 싫은 소리 한 번 안 하고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생각으로 세상 유하게 살아가는 사람인데 순식간에 팥쥐 엄마 같은 악덕 아줌마 취급을 하다니, 어떻게 니가 그럴 수 있냐고 한 마디 하고 싶은 순간에 퍼뜩 스쳐 가는 생각이 또 있었다. 어느 해인가 추석 무렵이었다.  

   “엄마, 누나한테 너무한 거 아니야? 이제 누나 집에 와도 된다고 좀 해.”

   “재영이? 왜? 재영이가 집에 오고 싶대? 그렇게 반대할 땐 눈 똑바로 뜨고 잘 살 테니 걱정 말라고 악을 쓰더니, 너도 같이 가서 봤잖아. 왜 이제 와서 집에 오고 싶대?”

   “그 말 좀 그만하고. 엄마는 매번 그 말만 되풀이하는데 그러면 누나는 영원히 끝이야? 어떻게 해도 지난 일은 없앨 수 없는 거잖아. 그런데 자꾸 옛날 일만 얘기하면 어떡해?”

   “그럼 지난 일은 잘못했다고 한 마디 하면 끝인 거냐? 그렇게 편하면 다들 막살지. 뭐 하러 똑바로 살려고 애쓰나? 나는 지금도 니 누나가 걱정 말고 가라고 눈 똑바로 뜨고 대들던 게 잊히지 않아.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얼마나 괘씸한지, 지도 더 당해 봐야 알지.”

   “아니, 엄마, 남이면 그렇게 말할 수 있겠지만 자식한테 어떻게 똑같이 해? 자식이니까 잘못했어도 용서하고 그래야 하는 거 아닌가.”

   “너도 자식 낳아 봐라. 그렇게 되나. 자식이니까 더 괘씸한 거야. 쓸데없는 소리 하지도 말아.”

   그때도 재훈이가 재영이 편을 들면서 나를 너무한 엄마로 몰아가는 게 섭섭했지만 그건 형제간 우애에서 나온 말이었기 때문에 돌아서서는 재훈이가 기특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애 문제는 다르다. 헤어진 제 여자친구를 편들고 제 엄마를 나쁜 시어머니로 몰아가다니, 그건 이해할 여지가 조금도 없었다. 아무튼 지애 사건 이후 나는 재훈이가 좀 더 어려워졌다. 나에 대해 또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무서워졌다고나 할까.     

   

   재훈이가 아파트를 사서 독립하겠다고 했을 때 그래서 찬성한 것은 아니다. 남에게도 너그러운 내가 자식에게 그렇게 쪼잔할 리는 없다. 나 역시 대출까지 내서 아파트를 사겠다는 재훈이의 결심이 마음에 들지도 않고 불안 불안했지만 내가 자식 셋을 키우면서 터득한 가장 확실한 교훈은 자식이 하겠다는 것 말릴 필요 없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말릴 수가 없다는 것이다. 괜히 말리려다가 사이만 틀어진다는 것이다. 제가 대출 내고 제가 일해서 갚겠다는데 무슨 명분으로 반대를 한단 말인가. 만약 나중에 재훈이가 대출금을 못 갚아 남편과 내가 대신 갚아야 할 때가 온다면 그때는 화를 내거나 야단을 칠 수도 있겠지만.

   투다리집은 막내가 아파트 사서 나가면 결혼할 확률이 높아지지 않겠냐고 했지만 나는 그런 기대는 조금도 없었다. 재훈이는 재현이보다 아홉 살이나 어리지만 결혼을 할 확률은 재현이보다도 낮았다. 남편이나 나에게 지극정성으로 잘하지만 결혼을 하면 필수적으로 따르는 아내나 자식에게 희생과 양보를 할 수 있는 타입이 아니었다. 괜히 결혼했다가 돌아올 확률이 높은 타입이었다. 

   재훈이는 돈을 잘 버는 만큼 돈을 잘 썼다. 내 눈에는 다 똑같은 티셔츠를 몇 장씩 사고 제 형은 몇 년째 운동화 한 켤레로 사는데 신발도 방 안에 가득했다. 신발장도 아니고 방 안에다가 상자에 한 켤레씩 담아 쌓아 두고 외출할 때마다 하나씩 골라서 신었다. 옷이면 신발이며 죄다 인터넷으로 사서 거의 매일 하나씩 택배가 왔다. 택배를 집어다 재훈이 방에 둘 때마다 이게 다 돈인데 싶었다. 그리고 집에 밥 있고 반찬 있고 다 있는데도 저녁을 꼭 사 먹고 들어오거나 집에 와서 배달 음식을 시켜 먹었다. 치킨, 족발은 물론 막국수며 커피, 빵까지 배달을 시켜서 우리에게도 꼭 나누어 주었다. 비싼데 엄마 아빠 건 시키지 말라고 하면 많이 시켜야만 배달을 해 준다고 했다. 진짜 그런 건지 우리까지 먹이려고 거짓말을 하는 건지 알 길이 없었다. 남편은 속없이 맛있다며 먹었지만 나는 이게 다 돈인데 싶었다. 속을 끓이고 끓이다 딱 한 번 이야기를 했다. 

   “재훈아, 아껴야 돈이 모이지. 회사에서 나오면서 설비차랑 산 거 다 갚았으니 이제는 버는 거 다 니 돈인데 아껴서 저축해야지. 엄마한테 생활비도 주지 말고 이제 열심히 돈 모아.”

   “저금하고 있지. 걱정 마. 그런데 엄마, 안 써서 모으기도 하지만 많이 벌어서 모으기도 하는 거야. 쓰고 싶은 데 쓰려고 나는 토요일까지 일하잖아.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눈도 깜짝 안 하고 되려 나를 측은하다는 듯 말하는 폼이 마치 엄마처럼 미련하게 아끼기만 하면서 돈을 모으면 무슨 사는 재미가 있겠냐고 되묻는 것 같았다. 자기가 쓰고 싶은 것 다 쓰려면 결혼을 하지 말아야 한다. 결혼을 하면 자기가 쓰고 싶은 것을 참으면서 가족을 위해 돈을 써야 하는 법이니까.      

   

   지애랑 헤어지고 나서 적어도 내가 아는 재훈이의 연애는 없었다. 지애를 집에 데려와 숱하게 재웠던 재훈이니 굳이 연애 사실을 숨길 아이도 아니었다. 연애가 없었던 것이 맞을 것이다. 지애랑 헤어진 후에 회사에서 독립하고 자리 잡느라 바빴고 자리 잡고 나자 이내 빚을 내서 아파트를 사는 바람에 또 빚을 갚느라 바빴으니까.

   연애를 하지 않고 지금까지 이르는 동안 제 여자 이야기는 한 번도 한 적이 없지만 남의 여자 이야기는 줄창 했다. 나이는 재훈이보다 약간 많고 대학은 재훈이보다 엄청 좋은 데를 졸업했으나 재훈이 보조로, 재훈이에게 월급 받고 일하는 보조 형의 여자 이야기였다. 이야기의 주인공인 보조 형의 여자는 두 명이었다. 전 부인과 현부인. 얼마 전까지 전 부인은 현부인이었고 현부인은 내연녀였다. 

   서울에서 꽤 유명한 대학을 졸업한 보조 형은 꽤 좋은 회사에 취직을 했으나 곧 회사를 그만둬야 했고 서울에서 변변한 직장을 다시 잡지 못하자 처자식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보조 형의 자식들은 어려서 반대를 할 능력이 없었지만 처는 달랐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란 처는 회사에서 잘린 남편이 서울에서 재기할 생각은 않고, 누가 봐도 쫄딱 망한 채 고향으로 가자고 하자 차라리 헤어지면 헤어졌지 그렇게는 못한다고 했다. 보조 형이 사정사정해서 같이 이사했지만 처는 시골살이에, 사실은 쫄딱 망한 살림살이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했고 보조 형과 싸우는 횟수가 느는 만큼 마시는 술의 양도 늘었다. 보조 형은 보조 형대로 고향살이가 녹록지 않았다. 인터넷 선을 까는 일을 하면서 윗사람이나 동료들이나 후배들이 그런 대학 나오고 왜 이런 일을 하냐고 묻는 것에 답을 찾는 일이 노가다보다 힘들었는데 집에 가면 처가 하루도 빼놓지 않고 똑같은 질문을 해댔다. 집에 들어가는 시간이 늦어졌고 다른 여자가 생겼다. 애가 딸린 여자였다. 줄곧 이혼을 요구하면서 재산 분할과 양육비 타령을 하던 처는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생기자 당연하게도 절대로, 죽어도, 무슨 일이 있어도 이혼만은 안 해 준다고 돌변했다. 

   “재훈아, 절대로 절대로 결혼하지 마라. 맘에 드는 여자 있으면 그냥 사귀어. 사귀기만 해. 남자는 결혼하면 그냥 돈 버는 기계야, 기계. 내 마누라가 왜 나를 안 놓아주겠냐? 다 돈 때문이지, 돈!”

   보조 형은 결국 이혼을 해 냈지만 멀쩡하던 생니가 세 개나 빠질 만큼 시달린 후였다. 집을 포함해 자동차는 물론 거의 모든 재산을 처에게 넘기고 말 그대로 빤쓰만 입고 나왔다. 그리고 다른 여자랑 재혼해서 그 여자의 애를 데리고 살고 있다.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그 고생을 하고도 또 결혼하는 것 봐라. 그리고 행복해한다며?”

   “지금은 결혼 초니까 그렇지. 전 부인하고도 처음에는 행복했대. 그렇게 개고생 하며 이혼하고도 또 결혼을 하다니, 나는 정말 어이가 없더라고. 와, 나는 그 형 이혼하는 거 보면서 정말 결혼을 못할 짓이다, 생각했어. 문자 주고받은 것도 보고 녹취 파일도 들어봤는데, 와, 원수지간이라도 그런 쌍욕은 못할 거야.”

   보조 형의 현부인은 보조 형보다 세 살이나 많고 애도 딸린 여자였다. 나로서는 그런 여자와 재혼하기 위해 전 재산을 포기하는, 그리고 자기 애를 놔두고 남의 애를 데리고 사는 보조 형이 미친 걸로 보였는데 재훈이는 보조 형을 불쌍해했다. 저도 남자라서 그런가 싶었다. 


   보조 형의 이혼과 재혼 스토리를 듣는 동안 재영이 생각이 줄곧 났었다. 그러고 보면 보조 형은 나름 괜찮은 사람이긴 했다. 이가 세 개나 빠질 정도로 싸우면서 전 부인과 헤어지고 현 부인과 재혼이라도 했으니까. 재영이의 놈팽이는 저 골치 아픈 일은 벌일 생각도 없이 전 부인 현부인 모두 끼고 저만 편하게 살면 그만이라는 야비한 놈이었다.

   내 나이에 애가 셋이면 많은 것도 아니고 적은 것도 아닌 흔한 스코어다. 그런데 셋 중 하나도 보편적이게 사는 애가 없다. 설명이 필요하지 않도록 남들과 똑같이 평범하게 사는 애가 없다. 노래 교실에 암 치료가 끝난 젊은 할머니가 들어왔을 때 나는 재영이에게 그 할머니가 ‘아주 멀쩡해 보인다’라고 했다.

   “엄마, 멀쩡할 리가 없어. 사람들 앞에서 멀쩡한 척하는 거지. 엄마도 우리 때문에 골치 아파도 할머니들 앞에서 내색하진 않을 거 아냐?”

   나이를 먹고도 그만한 진리도 모르냐는 지청구가 붙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재영이 말이 맞았다. 나야말로 노래 교실 할머니들이나 남의 건물에 세를 얻어 장사를 하는 투다리집, 만두집, 치킨집이 보면 세상 근심 걱정 없는 팔자 좋은 할머니니까.     

   

   하긴 낳을까 말까 고민했던 막내가 다 커서 돈을 척척 벌어 아파트도 사고 날마다 회니 빵이니 영양제니 사 오고 하니 최미옥이 인생도 이만하면 꽤 성공한 것 같다. 이제 바라는 것은 딱 하나, 남편이 먼저, 그다음엔 내가 오래 아프지 않고 죽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내가 오래 아프지 않고 죽는 게 중요하다. 아들 둘은 곁에 있지만 며느리 하나 없고 하나 있는 딸은 멀리 서울서 혼자 제 딸을 키우며 산다. 남편이 앓아누우면 요양원에 보내고 내가 들여다보면 되지만 내가 오래 앓아누우면 진짜 큰일이다. 

   젊어서 빚 안 지고 애 셋을 키워 대학까지 보낸 것만 해도 기적이다 보니 보험 하나 못 들었다. 남편이나 내가 죽으려면 생돈을 까먹어야 한다. 어릴 때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돌아가실 때를 생각해 보면 요양원 따위에 들어가서 몇 년씩 돈을 까먹진 않았다. 암 수술, 항암치료 이런 것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냥 나이가 들면 식구들 곁에서 쪼글쪼글해지다가 스리슬쩍 사라졌다. 죽고 나서도 마당에서 천막 치고 손님들에게 펄펄 끓는 국밥을 대접했고 동네 사람들이 관을 메고 고개를 넘어 어딘가로 갔다. 죽는 데 많은 돈과 노력이 들지 않았다.    살기 위해서도 아니고 죽기 위해서 그토록 많은 돈과 시간과 노력을 써야 한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지만 요새는 그렇다. 남편이나 애들이나 내가 죽을 때를 대비하느라 맛있는 거 하나 안 사 먹고 좋은 옷, 신발 하나 안 사는 걸 답답해한다. 나도 가끔 그게 억울하다. 젊어서는 사느라 아꼈는데 늙어서는 죽으려고 아껴야 하다니. 

   하지만 뉴스에서도 그랬다. 요즘 젊은 사람들에게는 마지막으로 목돈을 쥘 수 있는 기회가 부모가 죽었을 때라고. 부모가 남긴 재산이나 사망보험금을 두고 형제자매 간에 피 터지게 싸우고 재판까지 가는 것도 다 그래서라고. 

   내가 보기에 요즘 젊은 사람들은 돈을 흥청망청 쓴다. 어렵다 어렵다 해도 주말마다 이 촌동네가 관광객들로 미어터지고 재영이가 여기 한 번 올라치면 기차표를 구하지 못해 쩔쩔맬 만큼 사시사철 매진이다. 명절이면 제 집들로는 안 가고 죄다 이 동네로 모여든다. 그러니 어떻게 돈을 모으겠는가 말이다. 나는 그래 보지 못했지만 설마 부모가 죽기를 기다리진 않아도 부모가 죽으면 뭔가 기대감은 약간 생길 수 있겠지 싶다.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바라는 것이 내가 죽고 나서 얼마라도 남긴 재산을 재현이, 재영이, 재훈이가 사이좋게 나눠 갖는 것이다. 물론 재현이 몫이 무조건 절반은 넘어야 한다. 남편과 내가 죽기 위해 모아 놓은 돈을 다 쓰고 애들 돈까지 끌어다 쓰는 것은 정말 최악이다. 맨 정신으로는 억울하고 미안해서 못 견딜 것 같다. 무릎이 아파서 병원에 가는 것 외에는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으려 하는 남편에게 호통을 쳐서 시내까지 데려가 연명치료중단 신청서를 작성해 두었지만 그건 산소호흡기나 떼어줄 뿐이자 정신이 헤롱헤롱해서 요양원에 있을 때는 아무 소용이 없다. 죽을 때까지 돈을 써야 한다.      

   

   죽는 생각은 이제 좀 접고 슬슬 저녁 준비를 해야겠다. 밥을 안치고 마트에서 쌈이랑 음료수만 사 오면 된다. 회를 먹지 않는 재훈이는 불고기 재워 둔 걸 좀 볶아 주면 될 테고. 식탁은 좁으니까 안방에 큰 상을 놓고 넷이 편안히 앉아서 먹어야겠다. 분부만 내리면 상을 꺼내서 닦는 것은 남편이 신이 나서 할 터이다. 오늘 저녁은 둘러앉아 싱싱한 회를 먹고 술들도 한 잔 하며 모처럼 북적북적할 것이다. 돈이 좀 아깝긴 하지만 내가 마실 맥주도 한 병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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