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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화 "인생의 이벤트"

by 김듀키

“아니, 용명 씨! 나가 사회자로서 쪼까 물어볼 것이 있는디라, 참말로 대구 출신이요?”


“네, 맞십니더!”


“근디 전라도 사투리로 노래를 불러불겄다? 여그 전~라도 으르신들 앞에서?”


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지역감정이다 뭐다 해도, 겉으로는 아무런 갈등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분위기는 흥겨웠고, 평화로웠다.


“함 들어보이소!”


“응~ 한번 불러나 봐라~”


김용명의 패기 어린 출사표에, 관객석 어르신 한 분이 농을 던졌다. 덕분에 장내에는 또 웃음보따리가 터졌다. 나는 입을 헤, 벌린 채 김용명의 사투를 바라봤다. 그의 얼굴에도 긴장감은 가득했다. 하지만 사회자의 짓궂은 놀림에 당황하면서도, 그는 뒤로 물러서는 법이 없었다. 몸이 항상 앞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언제든, 뭐라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반주가 흐르자, 흥 많은 어르신들이 손뼉을 치며 리듬을 탔다. 곡 반응은 일단 나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이 새어 나왔다.


“오메! 적당히 하소! 으찔라고 이라고 볶아부요 사람을!”


김용명이 구성지게 첫 소절을 뽑아내자, 객석에서 박장대소가 나왔다. 경상도 출신 가수가 뻔뻔하게 전라도 사투리로 노래를 뽑아내니, 어르신들 눈엔 그것만으로도 재미난 이벤트로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저그 인생씨~ 아니 인생님~”


노래가 클라이맥스로 다다를 때, 문득 머릿속에 잊고 있던 생각이 스쳤다. 이 노래, 첫 소절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다. 다른 세계의 내가, 내가 만든 곡을 듣고 가사가 어울리지 않는다며 첫 소절을 만들어줬지 않은가.


“나한테만 아끼고 아낀 그것~ 살면서 한두 번은 찾아오는 그것! 행복을 쪼께만 줘보시요!”


그렇다면, 나는 나에게 있던 한 가지 문제는 이미 한 번 극복해 낸 것이다. 내가 떠올린 메시지가 아니어도 쓸 수 있다. 만선이든, 흥부든 놀부든, 박 타기든, 내 안에서 녹여낼 수 있다. 한 번 해냈으니, 두 번 해내는 건 더 쉽다.


“네! 경상도가 낳고! 전라도가 키워블까, 으응! 어째야 쓸까! 고민 중인 가수 김용명 씨의 쪼께만 줘보시요! 잘 들었습니다. 오메, 요 앞에 아버님 용명 씨가 너무 맘에 들어부렀는 모양인디?”


“예~ 아주 겁나게 맘에 들어부요~”


무대에서 김용명은, 자기 존재를 분명히 알렸다. 아주 짧은 순간이라도, 분명히 반짝였다.


“근데 말이죠. 이 노래를 만드신 분은 뭔가 대박은 못 칠 것 같아! 행복을 많~이도 아니고 쪼께만 달라고 해가꼬 큰사람 되겄어요? 진짜 큰사람 될라믄 이런 노래 정도는 불러야죠. 유금미씨 심 봤다!! 심~봤다!! 큰 박수로 청해 듣겠습니다!”


유금미를 소개하기 위한 사회자의 너스레였겠지만, 나에겐 그 말도 마치 운석 하나가 갑자기 땅에 추락한 것처럼, 커다란 의미로 느껴졌다. 나에겐 정말 잘되는 것에 대한 감이 없는 게 아닐까? 하는. 하지만 한편으론, 땅에 떨어진 운석이 내 세상을 파괴하진 못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지금은 그냥, 내가 뭐라도 해서 좋아, 기뻐, 같은 감정이 내게 울타리를 쳐주는 것 같다. 운석으로 생긴 마음의 큰 구덩이마저도, 인생의 이벤트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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