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Professor Sunny
Sep 08. 2021
중학교 2학년에서 3학년으로 넘어가던 겨울이었다. 그 날은 꽤 추웠는데 학원을 간다고 버스를 타고 내려서, 건물의 2층 학원으로 향하기 위한 계단을 오르고 있을 때, 그닥 친하지 않던 남자 사람 친구가 다가오다니, ‘이거 000이 너 주래’라고 말했다. 나는 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왜?” 라고 되물으면서도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단박에, 본능적으로 깨쳤다. 사실 그 선물 이후로 그 000은 나에게 한마디도 걸지 않았지만, 나는 그 사건을 전후로 완전 다른 삶을 살았다.
그 이후로도 종종 ‘고백’이란 걸 받았는데, 그런 사건들은 부모의 관심을 갈구했던 어린이에서 또래 사랑의 사춘기 청소년으로 태세전환을 시켜주었다. 물론 친구 사귀기도 큰 관심이었지만, ‘남녀’로서 좋아한다라는 것이 있다라는 것에 대한 자각을 했다. 내 본성은 솔직히 왈가닥 아이였는데, 본격적 사회생활을 위해 (?) 그런 성격을 점차 숨기기 시작했다. 청소년기는 아무래도 외형적으로 보이는 모습이 중요한지라, 또래가 좋아하는 말을 하고, 더 예쁜 웃음을 참 많이도 지었다. 그게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참 약았구나’ 싶지만, 친구 중심 삶이 된, 인기 많은 아이가 되고 싶던 그 청소년기 아이에게는 나름의 생존 기법이지 않았을까. 아직 짝을 찾을 나이도 아닌데, 고백을 주고받고 하는 그런 설레는 일들을 그 나이 때 최대한 많이 누리고 싶어서 안달이 났었다.
그런데 이 짧은 시기에 내가 받은 에너지는, 나의 낮았던 자아존중감을 많이 채워주었다. 그런 역할을 한 게, 지금은 내 이름을 기억조차 하지 못할 수도 있는 그 또래의 친구들이었다는 게 신기할 뿐이다. 10대의 아이들이 서로에게 관심을 갖고, 그 관심이 긍정적인 에너지로 전환되어 나의 정신을 따듯하게 만져줬다는 느낌은, 지금 40살이 된 나에게 여전히 감사한 일이고 내 삶에서 기억되는 아름다운 몇 순간의 기억이다. 더 발전해서, 아마도 나는 10대가 될 내 아이에게 ‘10대의 연애도 해볼만하지 않을까’라고 추천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굉장히 독립적인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10대 때의 길거리에 날아다니는 나뭇잎처럼 가볍던 이 모습이 그저 어리기 때문이라서 그랬는지, 아니면 나라는 인간은 정말 남들의 이목과 관심에 늘 목매고 있었던 건 아닌 건지 의심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