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황언니 Mar 18. 2024

잔잔할 때 제일 반짝이는

윤슬

 내가 사는 이곳 남쪽 끝 마을은 두꺼운 패딩과 코트가 이제는 따뜻하다 못해 더운 겉옷이 되었다. 얇은 재킷과 모직코트의 중간쯤의 계절이 되었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아이들의 옷으로도 그 계절을 체감한다. 이제는 담이 들지 않는 윗옷에 얇은 경량 패딩 쪼기를 입혀 나갔다가 더우면 벗으면 되는 그런 온도가 된 것이다.

 이제 실내온도가 답답하니 실외로 걷기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이 들었고, 잠들기 전 내일 아침에 꼭 운동을 해야지 다짐을 했다. 그리고는 눈을 떠보니 아침 8시다. 딸아이와 뒤엉켜 자는 막내 강아지와 방 밖에서 나머지가족들의 일어난 기척이 없자 혼자 고민했다.


'일어나 움직일까? 어제 좀 피곤하던데 일요일이라 좀 더 누워있는 것도 나쁘지 않지... 근데, 나 너무 후회할 것 같은데. 어제 좀 많이 먹어 더부룩 한 배가 아직까지도 안 꺼져있고, 분명 하루종일 지금의 나를 한탄하겠지? 일어나자!!'


벌떡 일어나 간단한 운동복으로 환복하고 이어폰을 양귀에 꽂고 제일 편한 러닝화를 신고 나간다.


역시나 오늘 햇볕은 온화하듯 따뜻했고, 온도는 적당했으며 일요일이라 그런지 아직 해안가에 사람이 많지 않다. 바람마저 적당한 게 퍽 기분이 좋다. 30분 정도 빠른 속도로 걷다 뛰다를 반복했더니 땀이 올라온다. 해안가 끝을 턴하며 도는 순간 등뒤로 불던 바람을 정면으로 맞이했다. 이내 땀이 위로 느껴지는 시원함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그러고 나서 바라본 바닷가에 윤슬이 눈에 들어왔다.

 

 아직 물이 가득했던 때를 지나 조금씩 물이 빠지는 중인 바다는 고요하고 잔잔한 듯 제 갈길을 가고 있었다. 오랜만이다. 창밖으로만 보던 윤슬을 이렇게 손에 닿을 듯한 거리에서 보다니 새삼스레 감동스러워 핸드폰을 들어 올린다. 몇 장이나 찍었을까? 10년 동안 살아온 이 동네에서 관광객처럼 연사로 사진을 찍어댔다.


 윤슬이 그렇다. 거세게 저항하고 나아가고자 할 때는 영롱하게 반짝이며 빛나는 윤슬은 보이지 않는다. 간혹 육지 위로 너울 되는 파도만 하얗게 부서질 땐 구경도 못할 때가 있다. 그러나 오늘처럼 잔잔하게 제 일을 조용히 하고 있을 때 바다는 윤슬을 보여준다.  그리고는 어느새 썰물 때라는 것을 어느새 밀물 때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한다.  

 

관계에 있어서 신경 쓰고 그 안에 속해 있으며 잘해보려 노력했을 때 나의 실수는 잦았고 내 본심과는 다른 해석으로 타인에게 상처를 받기도 하고 주기도 했다. 그럴수록 혼자가 되지 않으려 가까이 가려 밀어붙이기도 하고, 강하게 튕겨나가 부서지기도 했었다. 근데, 발버둥 치면 칠 수록 너무도 고독하더라. 고독해서 나의 혼자는 늘 위태롭고 외로웠다. 그럴 때마다 내가 너무도 싫었다. 내 모습이 싫어 나를 피하려고 타인을 만나야겠다 했지만 그마저도 위안이 되지 않았다. 혼자를 즐겨야만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취미생활들 몇 가지 중 제일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독서였다. 그렇게 나는 책을 읽었다.


 처음엔 나를 바꾸겠다며 자기 계발 서적을 몇 권 읽었다. 그때 베스트셀러들이었는데 ‘꿈, 확언, 메신저’ 뭐 이런 류의 책들이었다. 근데 읽으면 읽을수록 내가 하기엔 나를 또 괴롭혀야 하고, 나와 주인공을 비교하게 되었다. 그래서  자기 계발 서적이 아닌 그냥 다른 사람의 삶을 대리로 느끼고 내가 사는 삶과는 다른 인생을 살아보고 싶어 소설을 읽었다. 몇 권을 얼마나 읽었는지 모르겠다. 책의 눈에 확 띄는 교훈은 없지만 기쁨과 슬픔, 슬픔과 행복, 그리고 분노와 연민 등등의 감정이 나에게 남았다.


 그저 혼자의 공백이 싫어 읽었던 책들은 나의 감정 하나하나를 보기 좋게 키워주었고, 그것들 나의 혼자만의시간을 즐기게 해 주었으며, 고독에 빠지지 않게 해 주었다.

 

 잔잔한 물결이 윤슬을 이루듯 지금의 나는 나로서 반짝인다. 내가 나를 이기지 못하고 아직도 집이었다면 나는 이 풍경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나를 즐기지 못했으면 나는 어떤 사람으로서 지금을 보내고 있을까?

 이제 곧,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거리의 풍경으로 가득해질 것이다. 노란색이 많이 섞인 새싹의 연두색이 산을 뒤덮고, 해안가 길 따라 핀 벚꽃이 찬란하게 휘날릴 것이다. 장마가 오기 전까지 내가 사랑하는 계절의 매일을 느껴보겠노라 다짐해 본다.

이전 22화 사람을 보내는 마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