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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줍어도 수영장에 갑니다> 저녁 수영이 좋은 이유

저녁수영이 좋은 이유, 운동하는 직장인, 소파대신 수영장

by 산책이

나는 저녁 수영을 좋아한다.

처음엔 사실 새벽 수영이 멋져 보였다.
꼭두새벽부터 일어나 하루를 수영으로 시작하는 직장인이라니,
이 얼마나 ‘갓생’인가!

건강을 위해 수영을 시작한다고 말하면서도,
속마음 어딘가엔 사람들에게 으스대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이만큼 부지런하고 자기 관리 잘하는 사람이야.”
그렇게 자랑하고 나면
자존감도 올라갈 거라 믿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그건 좀 비뚤어진 믿음과 인정 욕구의 합작품이었다.

그런 마음으로 수영을 시작했다면
아마 일주일도 안 돼 고꾸라졌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현명하게(?)
새벽 수영은 쳐다보지도 않고 상상만 잠깐 해봤다.



현실을 따져봐도, 새벽 수영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나는 아침 7시에도 겨우 눈을 뜬다.
그런 내가 새벽에 일어나 수영이라니. 말이 안 된다.

만약 정말로 아침 댓바람부터 에너지를 써버렸다면,
그날 하루는 거의 좀비처럼 살았을 것이다.
그러다 결국, 겨우 시작한 수영과 영영 멀어졌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나는 차 안에서 아침밥을 해결하고, 화장도 차에서 한다.
즉, 일어나고 15분도 안 돼 시동부터 건다.

그런 내가 새벽 수영을 시작했다간,
수영도 출근도 다 엉망진창 됐을 거다.
장담한다.



퇴근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 현관문을 열면,
나는 늘 소파 위에 쓰러졌다.

리모컨을 돌리며 막장 드라마를 순례하는 것이
나의 저녁 루틴이었다.

그건 하루 종일 억눌렀던 감정을
그저 무기력하게 해소하는 의식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어느 날,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각성과 함께
소파와 TV를 과감히 없앴다.


하지만 놀랍게도,
나는 그 후로 바닥에 눕기 시작했다.

정말, 한심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집 안은 늘 정리되지 않았고, 청소는 생각조차 나지 않았다.
그나마 씻으면서 슬쩍할 수 있는 욕실 청소조차
그저 미뤄지기 일쑤였다.



그러다 저녁 수영을 시작했다.

그런데 의외로, 새벽 수영보다 훨씬 더 좋은 변화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느낀 건 욕실이었다.
샤워를 수영장에서 하고 오니, 욕실이 늘 건조하게 유지됐다.
분홍색, 검은색 물곰팡이 걱정이 줄어든 것만으로도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무엇보다, 저녁을 먹고 나면 수영장에 가야 하니
자연스럽게 저녁 6시부터 9시까지의 시간표가 생겼다.

왔다 갔다 하는 시간, 샤워하고 머리 말리는 시간,
그리고 수영장 쉬는 시간(매 시각 50분부터 정각까지)까지 포함해서,
내 저녁은 어느새 질서 있게 짜인 일정이 되었다. 정각에 못 맞추면 애매하게 10분쯤 멍 때리는 시간이 생기기도 하지만, 그조차도 예전처럼 소파나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시간보다는 훨씬 나았다.



사실 수영장도 사람이 몰리는 시간이 있다.

특히 8시 타임은 사람이 너무 많아서,
자유수영을 하다 보면 레인 안에서 눈치 보느라 기가 다 빠진다.

그래서 나는 최소한 7시 타임에는 가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시간 맞춰 수영을 다니다 보니,
예전엔 저녁밥 먹고, 과일도 먹고, 디저트까지 챙겨 먹던 나도
자연스럽게 식단을 조절하게 됐다.

“지금 배불리 먹으면 수영 못 가지...”
그 생각이 들면 먹는 양이 절로 줄어들었다.

사실, 진짜 배가 고픈 게 아니었던 거다.

그대로 식탁에 앉아 있었더라면 자기 전까지 입에 뭘 넣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운동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면,
“이제 먹으면 운동한 거 다 말짱 도루묵이지...”
싶은 생각에, 그냥 안 먹게 된다.

그리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침대에 눕게 되는데,
그 상태로 인스타 릴스를 돌려봐도 죄책감이 덜하다.

“어쨌든 수영 갔다 왔잖아.”
그 마음 하나로,
스스로를 한심하다고 느끼지 않게 된다.


이런 일상이 반복되다 보니
생리 기간이 다가오면 슬슬 겁이 난다.

“수영을 못 가는 날엔 저녁 시간을 도대체 어떻게 보내지?”
그 걱정이 먼저 들 정도다.

그러니,


새벽 수영이냐, 저녁 수영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단연코, 저녁 수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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