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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에어에 비친 나, 붉은 방과 푸른 방

푸른 방에서 나온 그녀, 나의 이야기

by 할수 최정희

제2장 2 제인 에어에 비친 나

붉은 방과 푸른 방

제인과 나는 둘은 갇힌 적이 있다. ‘제인은 밖에서 잠긴 붉은 방에, 나는 스스로 걸어 들어간 푸른 방에. 이 두 개의 방은 벽의 재료만 다른 것이 아니라 벽을 쌓은 사람도 달랐다. 제인의 방은 외숙모가 학대와 억압으로 밀어 넣은 외삼촌이 돌아가신 바로 그 붉은 방이었다. 내 방은 육이오 전쟁 트라우마와 물려받은 슬픔, 그리고 장손제일주의에서 밀려난 아픔으로 도배된 푸른 공간이었다.

제인은 잠긴 문을 향해 맨몸을 던져야 했고 나는 내 안에서 끝없이 자라나는 빙벽을 맨몸으로 녹여내야 했다. 제인과 나는 각기 홀로 문을 부수고 얼음을 녹여야 했다. 우리는 서로 다른 고통을 겪지만 홀로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한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았다.

제인의 붉은 방은 억압과 수치심이 세차게 불타오르는 곳이었다. 그 불길은 제인을 태우지 못했고 제인은 그 불길로 자신을 강철처럼 벼려냈다. 나의 푸른 방은 나를 얼려버렸다. 나는 뼛속까지 시린 냉기 이외에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두 개의 방은 서로 다른 신을 모시는 제단이기도 했다. 제인의 붉은 방이 ‘사회적 질서’라는 신이 가난한 고아 여성인 제인을 처벌하는 제단이었다면, 나의 푸른 방은 ‘가문의 영속’이라는 보이지 않는 신을 위해 나를 희생제물로 삼는 제단이었다.

학대 생존자와 슬픔의 상속자

나와 제인 우리 둘의 내면을 지배하는 원초적인 상처는 서로 달랐다. 제인의 트라우마는 명백했다. 리드 부인이라는 가해자, ‘붉은 방’이라는 물리적 공간, 그리고 “너는 나쁜 아이야”라는 언어적 낙인. 그녀의 상처는 직접적 학대의 결과였다. 그렇기에 그녀의 싸움은 처음부터 자신의 존엄성을 짓밟는 부당한 외부의 권력자를 행해 있었다.

나의 ‘푸른 방’은 물리적 공간이 아니라, … 내가 태어나기도 전부터 집안을 잠식하던 애도되지 않은 슬픔의 기류와 가부장제라는 사회적 구조가 만든, 눈에 보이지 않는 실체와 사회적 구조였다.

나는 마른 천이 물을 흡수하듯 가족의 슬픔을 고스란히 흡수했다. 코미디 영화를 볼 때 터져 나오는 눈물은 내 감정이 아니라, 세대를 따라 스며든 가족의 슬픔이 내 안에서 흘러넘친 것이었다.

나의 슬픔은 한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다음 세대로 전해지는, 말하자면 ‘세대 간 트라우마’였다. 나의 투쟁은 외부의 적이 아닌, 내 몸에 스며들어 이젠 나의 일부가 되어버린 슬픔의 정체를 밝혀내는 것에서 시작되어야만 했다.

나와 제인과 내가 다른 트라우마를 가지게 된 이유는, 한 개인의 가치를 결정하는 기준, 즉 피에르 부르디외가 말한 ‘상징 자본’이 서로 달랐기 때문이다. 제인의 세계에서는 최고의 자본이 ‘부와 가문’이었다면, 나의 세계에서 상징 자본은 바로 ‘고추’, 즉 남성성이었다. 내가 아무리 사랑받는 딸이라 한들, 사회의 압도적인 상징 자본 앞에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세대를 흘러온 슬픔의 상속자’였고, 제인은 ‘직접적 학대의 생존자’였다. “저 고추 좀 봐라!”라는 찬가는, 철학자 사르트르가 말한 사물화 하는 ‘타인의 시선(The Gaze)’이었다. 그 시선 아래서 나는 고유한 존재에서 ‘남성성을 돋보이게 하는 도구’ ‘그것(It)’으로 추락했다.

기록되지 않은 슬픔

나의 이야기가 국가적 비극이 어떻게 한 가족의 내면을 수십 년간 세대를 넘어가며 지배하는지를 보여주는 미시사(Micro-history)라면, 제인의 이야기는 억압적 사회 구조가 한 개인의 영혼을 어떻게 옭아매는지를 보여주는 계급투쟁의 기록이다.

우리가 겪은 고통은 당대의 사회 구조와 깊이 연관되어 있었지만, 그 양상은 달랐다. 제인의 고통은 19세기 영국 사회의 견고한 계급 구조와 젠더적 억압의 산물이었다. 가난한 고아 여성이자 가정교사로서, 그녀는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무력한 존재였다. 그녀의 투쟁은 사회가 부여한 여성성과 계급의 한계를 벗어나, 한 명의 독립된 인간으로서 인정받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 가족의 비극은 한국전쟁이라는 국가적 트라우마 속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국가는 삼촌의 목숨을 ‘쥐꼬리만 한 보상금’으로 환산했고,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그마저도 아버지에게 돌아오지 않았다. 그 이유는 부모도 아니고 자식도 아닌 형제여 서다.

그리고 육이오 기념행사를 할 때 전사자 가족 중에서도 초대받는 유가족이 있었고 초대받지 못하는 유가족이 있었다. 할머니와 아버지는 초대받지 못했다. 나는 할머니와 아버지가 이 국가적 행사에 한 번이라도 초대받았더라면 조금은 더 위로를 받았을 것 같다. 유공자 가족을 초대한 현충일 기념행사와 이와 비슷한 행사를 할 때면, 어린 나도 ‘삼촌도 전사했는데, 왜 우린 저기 초대받지 못하지?’라는 억울함이 몰려왔다.

나는 삼촌의 부재를 온몸으로 느꼈고 삼촌의 전사가 준 그 슬픔을 물려받았는데 국가에서는 내게 아무런 관심이 없다. 전후(戰後) 가난한 나라는 ‘한강의 기적’의 향해 달렸다. 매일 온 나라에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잘살아보세. 우리도 한번 잘살아보세.’가 울려 퍼졌다. 이런 분위기에서 지나가 버린 일을 두고 슬퍼하는 것은 사치였다. 나라도 잘살기 위해 온 힘을 쏟아부어야만 했고 먹고사는 게 급했기에, 나라를 위해 치른 개인의 희생과 아픔과 슬픔을 쥐꼬리로 봉합했다.

우리 가족의 슬픔은 국가와 사회로부터 소외된 채, 온전히 한 집안이 감당해야 할 ‘사적 비극’이 되었다. 나라는 기적을 이루어내 선진국이 되었지만, 그 개인은 여전히 비극 속에 살고 있다. 육이오 기념식 장면 뉴스를, 나는 공허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이제는 보지도 듣지도 않는다. 저 기념식을 해서 국가와 사회가 기억한다고 해서 나와 내 자식이 달라질 것이 뭐가 있냐 말이다. 나는 물려받은 유산을 소진하지 못하고, 귀한 보물이라도 되듯 자녀의 어깨에 얹어주고 말았다. 그러니 화려한 기념식이 내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나는 삼촌의 자식이 아니다. 내 자식도 삼촌의 자식이 아니다. 근데 삼촌이 전사한 그 슬픔을 왜 내가 물려받게 되었냐고. 그리고 왜 그 유산을 내가 또 자녀에게 물려주게 되었냐고. 나는 내게, 이 사회에, 국가에게 묻는다.

삼촌은 자식이 없다. 이 사회 시스템에서는 슬픔도 쥐꼬리 보상금이 끊어지듯 끊어져야 이치에 맞지 않는가. 나는 왜 삼촌이 전사한 슬픔이 직계 후손도 아닌 내게 유산으로 넘어왔는지 그리고 왜 내 자녀에게 흘러갔는지에 대해 생각하는 중이다. 슬픔이 핏줄만큼이나 진해서인지 아니면 세상의 부조리라서 어쩔 수 없는 것인지를. 둘 다 맞더라도 지금 어찌해 볼 수 있는지도 생각해 보는 중이다.

국가는 전사자와 부상자와 전쟁에서 사용된 무기의 수를 기록한다. 국가는 나라를 위해 전사한 가족과 그 슬픔의 무게를 계급이 눈금인 저울을 가지고 잰다. 직계 가족의 슬픔과 아픔도 무게에서 제외되는 실정에 나와 같이 직계가 아닌 사람의 슬픔과 아픔은 아예 세상에 없는 일로 취급한다. 그들이 어떻게 이 일을 대하든 나는 슬픔을 온몸에 지고 살아왔다.


나는 국가가 기록하지 않은 내 개인의 슬픔의 무게와 깊이를 재고 그것을 기록하기 위해서 이 글을 쓴다. 제인 에어가 로우드 기숙학교에서 걸어 나왔듯, 나는 푸른 방에서 걸어 나가려 한다. 예전의 나와 달리 은밀하게 관찰자로서 이 일을 마무리하고 싶지 않다.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서다. 나는 국가가 기억하지 않은 고통과 슬픔을 유산으로 물려받아 그 비극을 살아낸 자가 그 비극을 딛고 일어선 자가 여기 있노라고 외친다. 나와 같은 삶을 살아온 어떤 사람에게 나처럼 슬픔을 물려받은 사람에게 바꿔 말하면 내 자식에게 위로와 희망이 될까 하여,

직접적인 폭력 vs. 구조적인 폭력

모든 싸움은 그 세계의 법칙을 이해하는 데서부터 시작할 수 있다. 그 법칙에 따라 전략을 달리해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제인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명확하게 구분 지을 수 있었다. 그녀가 마주한 게이츠헤드의 세계는 명백한 ‘계급의 질서’가 지배하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고통은 고아로서 재산도, 지위도 없는 최하층 계급이라는 사실에서 비롯된 ‘계급 폭력’이었다. ‘붉은 방’은 그 질서에 저항하는 자에게 가해지는 물리적인 처벌의 공간이었다. 제인, 그녀는 피해자였고 제인의 고통은 리드 부인과 존 리드라는 이름과 얼굴을 가진 사람이 직접 폭력을 휘두르는 가해자였다.

리드 부인은 냉정하고 권위적인 태도로 제인을 꾸짖고, 얼음장 같은 눈길과 말로 압박하며 “너는 더럽혀진 존재”라거나 “너 같은 아이는 용납할 수 없다”는 식으로 정신적 압박을 가했다. 존 리드는 제인을 때리거나 몸을 밀쳐 겁을 주며, 육체적 폭력을 행사했다. 하지만 폭력을 당한 제인이 억울하게 붉은 방에 갇혔다. 그녀는 붉은 방에 갇힐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 자신을 괴롭힌 리드 부인과 존 리드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나는 제인과 달리 협박하거나 때리는 사람이 없었다. 내가 마주한 세계는 계급이 아니라 ‘의식(儀式)의 질서’가 지배하는 공간이었다. 남동생의 백일잔치는 ‘남아선호’라는 가치를 재확인하는 사회적 의식이었고, 그곳에서 폭력은 주먹이 아닌 ‘배제’와 ‘역할 부여’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나를 옥죈 것은 남아선호사상, 장남제일우선주의, 여자는 출가외인이고 시집가면 그 집에 뼈를 묻어야 한다는, 여자는 시집만 잘 가면 된다는 그 시대의 사람들 머릿속에 있는 사고체계였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육이오 전쟁에서 삼촌이 돌아가셨는데, 할머니와 아버지와 고모가 이를 온전히 애도할 수 없었던 탓이다. 아마도 이태원 참사를 당한 가족처럼 울었을 것이다. 한번 혹은 몇 번 크게 운다고 슬픔이 모두 가시지 않는다.

시간이 흐를수록 나 때문에 가족들이 더 슬퍼할까 봐 서로의 눈치를 보면서 눈물을 삼켰을 것이다. 여기에다 잘 먹고살기 위해 한창이던 새마을 운동에 들뜬 동네 분위기에 슬픔을 내비칠 자리가 없었을 것이다. 물이 대야에 가득 차면 흘러넘치는 것과 같은 이치로 눈물을 흘려보내 않고 담아놓은 사람은 그 슬픔을 온몸에 있는 구멍, 땀샘으로라도 배출하고 만다.

즉 기쁜 사람은 기쁜 기색을 얼굴로 내뿜고 슬픈 사람은 슬픈 기색을 얼굴로 내뿜는다. 이런 분위기를 옆에 있는 사람은 그것을 감지할 수 있다. 우리 집에 배경음악처럼 깔려있는 슬픔을 나는 흡수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뜨거운 주먹과 냉철한 관찰

제인과 나는 부당한 세상 속에서 자신의 영혼을 지키려고 투쟁한 것은 같지만, 그 투쟁방식은 매우 달랐다. 제인과 내가 맞서 싸워야 했던 세계의 법칙이 달랐기에, 우리가 생존을 위해 벼려내야 했던 생존전략도 근본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었다.

제인과 나의 생존전략이 달랐던 이유는 각자의 애착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제인은 버려질 수 있다는 공포 속에서 외부 세계를 향해 더욱 치열하게 자신의 존재를 주장하는 ‘저항적 애착’의 길을 택했다. 반면 나는 사랑이 조건부라는 진실 앞에서 상처받지 않기 위해 침묵과 관찰로 자신을 지키는 ‘회피적 애착’의 길을 택했다.

제인이 맨주먹으로 세상의 벽을 두드리는 복서였다면, 나는 링 아래에서 이 모든 장면을 지켜보는 관객이었다. 제인은 링 위에 올라 때리기도 하고 맞기도 하면서 살았고 나는 맞는 것이 두려워 이를 지켜보며 얼어버렸다. 관찰자로 살면 직접 두들겨 맞지는 않는다. 대신 언제 맞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린다.

제인은 내면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았다. 나는 상황을 관찰만 할 뿐 감정을 드러내지도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말로 표현되지 못한 고통은 LNG 가스처럼 압축되어 몸속에 차곡차곡 저장되었고, 내 몸과 마음이 점점 얼어갔다.

제인은 서툴렀지만, 문제를 해결하는 전략이었고 나의 전략은 문제를 덮어두고 피해 가는 전략이었다. 완벽한 것이 아니었다. 제인은 비교적 빨리 문제를 해결하고 성장하는 삶,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다. 나는 문제를 묵혀두었고 곪아 터지고 난 후에도 버려두었다. 이제 노년에서야 더는 미룰 수 없어서 내 삶에 메스를 들이대고 있다.

해방의 의미

나와 제인이 추구하는 궁극적 해방의 의미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제인의 여정은 자신의 존엄과 가치를 스스로 확립해 나가는 자아 확립의 투쟁으로 그녀는 "나는 새가 아니고, 어떤 그물도 나를 잡을 수 없다"라고 선언하며, 사랑하는 남자 앞에서도 자신의 독립적인 의지를 포기하지 않는다. 그녀의 해방은 과거의 상처와 사회적 억압에서 벗어나, 온전한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나의 여정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 이전에, "나의 이 슬픔은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푸른 방의 기원이 무엇인지 대한 탐구여야 했다. 이태원 참사가 나의 슬픔과 가족의 역사를 연결 짓는 실마리가 되었고, 나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이 글쓰기는 할머니와 아버지가 온전히 수행하지 못한 ‘애도의 과업’을 내가 이어받아 마무리하려는 시도다. 그러나 그 슬픔이 내 자녀들에게 또 다른 형태로 대물림되었음을 자각한 순간, 나는 트라우마가 변형과 반복을 통해 세대를 따라 흐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개인의 해방이 얼마나 힘든 과제인지를 절감했다.

“내게 해방은 과거의 뿌리를 이해하고 미완의 애도를 수행하는 것이고, 제인에게 해방은 과거를 단절하고 자기 삶의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 즉, 나는 기억을 회수하는 방식으로 자유를 찾고, 제인은 망각과 결단을 통해 자유를 개척한다. 제인 에어의 서사에는 보이지 않는 유산, 즉 세대를 거쳐 무의식적으로 전승되는 ‘보이지 않는 상속’이 등장하지 않는다.

나의 이야기는 바로 이 유산, 곧 애도되지 못한 슬픔의 기억이 어떻게 한 인간의 정체성을 규정하고, 또다시 후대에 대물림이 되는지를 보여준다. 이는 심리학에서 말하는 세대 간 트라우마 전이와도 맞닿아 있다.

제인이 나의 거울이 되기까지

제인의 붉은 방은 보이지 않는 벽으로 둘러싸인, 내가 갇힌 방을 그대로 비춰주는 거울이었다. 내 푸른 방은 천장에서 고드름이 자라나고, 벽 틈새로 얼음물이 흘러들고 바닥은 미끄럽고 물이 철벅거렸다.

가족을 통해 물려받은 육이오의 슬픔이 나를 얼려버렸고 가부장제 제도가 나를 가둬버려서 나는 바깥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몰랐다. 날갯짓 한번 펴보지도 못했는데 노년을 맞았다.


나는 브론테의 제인 에어를 고등학교 때 처음 만났다. 그때 나는 그녀가 좋았다. 그녀의 삶을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녀를 이십 대에도 사십 대에도 만나 이야기를 나눴지만, 그녀를 속속들이 이해할 수 없었다. 노인이 된 나는 자신의 삶을 굳건하게 개척해 나가던 제인 에어를 만나 다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다시 책을 펴고 그녀와 이야기를 시작했다 이번엔 그녀의 삶을 깊이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그녀의 삶을 이해하니, 그녀는 나를 비춰주는 거울이 되어 주었다. 겉으로는 달리 보여도 제인과 나는 자신과 싸워 이겨야 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나는 나와 투쟁하고 있다. 관찰이라는 돋보기를 들이대고. 언제까지 이 돋보기를 들이대야 할지 나는 모른다. 그래도 제인과 대화를 하고 나면 제인이 겪어내고 자신을 살게 되었듯 내게도 그날이 올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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