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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대가리의 첫 수업 이후, 하모는 모든 게 귀찮아졌다. 기만의 말도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공부가 될 리 없었다. 가장 좋아하던 영어는 골칫거리 과목이 되어버려 책을 펴도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알파벳 하나하나가 닭으로 변해 교실 안 이곳저곳을 날뛰고 다녔다. 책을 덮어야만 모든 게 멈추고 사라졌다.
하모는 턱을 괴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가 교실을 나와 1층으로 내려갔다. 교사용 화장실은 1층에 있지만 학생용 화장실은 건물을 나가야 했다. 화장실에서 나오는 그를 어둠 속에서 누군가가 불렀다.
“샌님 반장.”
“어? 누구?”
“나야, 기만이”
“거기서 뭐 해? 깜짝 놀랐잖아.”
화장실 뒤편에서 기만이 고개만 빼꼼히 내밀고 그에게 손짓을 했던 것.
“지난번에는 미안. 공부는 잘돼?”
기만의 손에 들린 담배 한 개비를 보면서 하모가 고개를 저었다.
“잘 안돼. 너는?”
“내가 뭐 공부하냐? 대학도 안 갈 건데.”
“근데 왜 남았어?”
“집에 가면 꼰대 때문에 미쳐 버린다. 얼마나 잘난 척을 하는데.”
“아저씨가 왜?”
“대학 못 가면 기술이나 배우라고. 이 가게는 나한테 안 준다고.”
“네가 아버지 도와서 하기로 한 거 아니었어?”
“그게 매일 달라. 술 취하면 말이 달라져. 안 준대. 너 같은 게으른 놈한테는 못 준다고. 애써 일군 가게 다 말아먹는다고. 더럽게 잘난 척해.”
“그렇구나. 그러면 정말 기술 배워야겠다. 아니면 공부해서 대학 들어가거나.”
“이제 공부해서 어딜 가겠냐?”
“그건 모르지. 사람 일은 아무도 모르잖아. 아직도 시간 많이 남았어. 승부는 지금부터고. 뭐 꼭 좋은 데 갈 필요 있어? 원하는 과 찾아서 가면 되지. 내가 도와줄게. 그리고 담배 하나 줘봐.”
“담배?”
“응. 담배.”
“너 안 피우잖아?”
“어차피 다 피우는 거 아냐? 줘 봐.”
“그럼 나중에 나 원망하기 없기다. 나 땜에 담배 배웠다고.”
“그래 네가 피우라고 한 것도 아니잖아. 어서 주기나 해.”
기만은 불을 붙여 주기는 했지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하모를 쳐다보았다. 하모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한 모금을 길게 빨았다. 헛구역질이 나고 머리가 핑 돌았다. 그는 캑캑거리며 기만을 마주 쳐다보았다.
“이게 맛있어?”
“담배를 맛으로 피우냐?”
“그럼?”
“속이 답답하니까 피우는 거지.”
“피우면 괜찮아져?”
“그럼. 한 대 빨면 마음이 편해지지.”
“마음이 편안해지면 그거 이상한 약 아니냐? 뽕 같은 거.”
“글쎄? 그런 건 안 피워 봐서. 하여간 괴로운 인생이다. 졸업하면 대학도 못 갈 텐데 뭘 해야 하나 생각하면 괴롭고, 또 꼰대한테 시달릴 걸 생각하면 괴롭고. 사는 게 다 괴로움의 연속이야.”
“그럼 담배 피우는 선생들도 다 괴로워서 피우는 건가? 교감도?”
“그걸 말이라고 하냐? 선생들은 우리 앞에서만 무게 잡고 근엄한 척하는 거야. 다 똑같은 사람이잖아. 교무실에 불려 가서 벌서고 있으면 다 들려. 자기들끼리 교감 눈치 보며 하는 얘기 들으면 얼마나 불쌍한데. 우리보다 나을 것도 없더라.”
“하기는. 교무실에서 학급일지 쓸 때 보면 안쓰럽기는 하더라.”
“맞아. 월급도 쥐꼬리만큼 받으면서 해탈이한테 매일 깨지는 거 보면 선생들 정말 별거 아니라고. 그래서 담배를 피우는 거야. 몸에 안 좋은 거 알면서도. 그런데 거기서 멈춰야 하는데 결국 꼭 나쁜 짓을 한다니까.”
“나쁜 짓?”
“저번에 말했잖아. 돈벌레가 되는 거지. 가난한 아이들, 아니 가난한 엄마 아빠들 삥 뜯어서 자기들은 잘살아 보겠다고 말이지. 불쌍한 놈들. 그런다고 행복해지겠어?"
“그래도 거머리는 걱정이 없어 보이더라.”
“아, 거머리는 담배를 안 피우지? 그놈이 진짜 무서운 놈이네.”
그들은 담뱃불을 끄고 터덜터덜 교실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