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빨간 반딧불이

7

by 판도


오늘도 천장의 실링팬은 움직이지 않았다. 차츰 흐려지며 오후부터 국지성 호우가 퍼붓겠다는 일기예보대로 하늘이 조금씩 어두워지고 있었다. 천장 낮은 방에 들어온 것처럼 하늘이 내려앉았다.


머리 위로 둥둥 떠다니는 검은 구름은 당장이라도 먹물 폭탄을 터트릴 기세였다. 바람이 드나들 수 있는 모든 문이 열려 있었지만, 교실에는 뜨겁고 메마른 공기만이 가득했다. 하늘색 교복 셔츠를 입은 아이들의 등짝은 전부 땀으로 젖어 사방으로 살색 나뭇가지를 그렸다.


마지막 수업은 영어였다. 수업이 끝나도 야간 자율학습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마음만은 편안했다. 무거운 짐을 반쯤 내려놓은 느낌이랄까. 영혼이 가벼워지는 시간이었다. 안 선생은 늘 씩씩했고, 약속대로 아이들의 이름을 불렀으며, 욕설도 내뱉지 않았다.


사전 사건 이후 바뀐 사람은 뜻밖에도 기만이었다. 맨 앞자리에 앉아 잠을 잘 수도 없었겠지만, 그는 눈에 띄게 수업에 적극적인 학생으로 변해 갔다. 본문 읽기를 버벅거려도 안 선생은 나무라지 않았다. 잘못된 발음을 고쳐 주는 것으로 마무리 지었다.


나른한 교실에서 하모가 무거운 눈꺼풀과 씨름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우르릉 쾅쾅거리는 소리에 아이들 모두 창밖을 내다보았다. 번쩍하는 섬광과 함께 번개가 하늘을 가르더니 다시 쾅쾅거리며 천둥소리가 교실에 울려 퍼졌다. 아이들이 다시 창가로 시선을 돌리는 순간, 때맞춰 소나기가 세차게 퍼붓기 시작했다. 흙냄새를 몰고 들이치는 비를 피해 창가 자리의 아이들이 황급히 창문을 닫았다. 교실에는 다시 정적이 감돌았다.

‘비 참 시원하게 오네.’


퍼붓는 빗줄기를 바라보던 하모가 기지개를 켜며 막 하품을 하려는 찰나,

“꼬끼오 꼬꼬 꼬꼬.”


“꼬꼬댁 꼬꼬 꼬꼬.”


교실의 적막을 깨고 수탉이 우렁차게 울어 댔다. 아이들이 놀라 교실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리는데 판서를 하던 안 선생이 돌아서며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누구야?”


교실을 둘러보던 그의 부릅뜬 눈이 공산의 눈과 맞부딪쳤다. 공산은 성난 두 눈동자를 피하지 않았다.

“공산, 너야? 나와!”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꽂은 채 의자 등받이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은 공산은 씩 웃으며 벗어 놓았던 신발에 느릿느릿 발을 뀄다.


선생은 더욱 흥분했다.

“네, 네 어머니가 유, 육성회장이면 다야? 꾸물거리지 말고 빨리 나와, 이 새끼야.”


그가 욕설을 내뱉으며 약속을 깨는 순간, 또 다른 아이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공산이 그런 것이 아닙니다.”


“뭐, 뭐?”


그는 여전히 더듬거렸다.


“그, 그럼 누구야? 진짜 수탉이 울기라도 했다는 거야?”


“제가 그랬습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최강욱이었다. 공산이 최강욱을 노려봤지만, 그는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어, 강욱이…. 오늘은 학교 나왔네. 모, 몸은 괜찮고?”


최강욱은 들은 척도 않고 말을 이었다.


“아이들이 병든 닭한테 전염된 병아리처럼 졸고 있어서요. 애들 잠 깨라고 환기 좀 시켰습니다. 괜찮죠?”

말을 마치고 공산과 눈이 마주쳤지만, 두 사람 모두 얼굴에 표정이 없었다. 안 선생의 얼굴만이 빨개졌다.

“으, 응. 잘했어. 아버님은 잘 계시지?”


“네, 학교에 대해 걱정이 많으세요. ‘선생들이 잘해야 교육이 바로 서는데’라고 말이죠. 그런데 요즘은 선생들뿐만 아니라, 약아빠진 아이들까지 설치고 다녀서 학교가 개판이라고 답답해하셨습니다.”


선생은 말없이 고장 난 실링팬만 응시했다.


종이 울리자 서둘러 교실을 나서던 그가 갑자기 획 돌아서더니 공산을 향해 사납게 말을 던졌다

“너 내가 머리 자르라고 몇 번이나 말했어? 선생 말이 말 같지 않지? 내일까지 이발하고 교무실로 와. 약아빠진 자식.”


안 선생은 대꾸조차 하지 않는 공산을 노려보며 교실을 나갔다.


누군가 안 선생의 흉내를 냈다.

“아, 아버님은 잘 계시고? 다, 닭대가리는 정신 차렸고?”


아이들이 배꼽을 잡고 웃음을 참는데 다시 수탉이 울어댔다.

“꼬끼요오 꼬꼬꼬꼬꼬, 꼬꼬댁 꼬꼬꼬꼬.”


“저건 자기 머리 스타일이 죽이는 줄로만 알 걸. 영국 가서 공부는 안 하고 히피들 따라다니며 헤어 스타일만 흉내 낸 게 틀림없어. 그러면서 학생 머리를 간섭해? 두고 봐라, 내가 머리를 자르나.”

기세등등한 공산이었다.

keyword
이전 07화빨간 반딧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