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아침부터 먹구름이 몰려들었다. 조회 종이 울린 지 한참이 지났건만, 담임은 나타나지 않았다.
“거머리 있잖아, 해탈방에 들어가더라.”
벽에 걸린 시계를 힐끔거리는 하모에게 공산이 귀띔했다.
아이들은 교장의 분신과도 같은 몽둥이를 ‘해탈봉’이라고 불렀다. 몽둥이에 ‘解脫’이라는 두 글자가 새겨져 있던 까닭으로, 자연스레 교장을 해탈이라 불렀고, 교장실도 ‘해탈방’이 되었다.
평소 ‘독설 선생’으로 불리던 독고 선생이 국어 시간에 그 한자를 읽어 주면서 교장을 위선자라고 하여 아이들을 놀라게 했다. 해탈이란 ‘굴레에서 벗어난다’라는 뜻인데, 몽둥이를 휘둘러서 그게 될 일이냐며 답답해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교장이 해탈봉을 선생들에게도 나눠주어 아이들을 두렵게 만들었는데, 누구보다 먼저 거머리와 방 일병이 그 위험한 물건을, 꼬맹이들이 장난감 칼 가지고 놀듯 마구 휘두르고 다녔다.
해탈은 두 얼굴을 가진 사람이었다. 아이들에게는 인자하고 다정한 이웃집 아저씨 같았지만, 선생들에게는 두렵기만 한 존재였다. 해탈봉을 휘두르며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선생들을 혼내고 다녔기 때문이다. 성적이 나쁜 학급의 담임이나 육성회에서 지적 사항이 나온 선생들은 어김없이 그의 제물이 되었다. 그래서 교장이 해탈봉으로 해탈을 시키는 것은 아이들이 아니라 선생들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선생들 모두 해탈방에 들어가기를 두려워했고, 그 방에서 나오는 선생들은 하나같이 넋이 나가 있었다.
오직 단 한 사람, 3학년 1반의 담임이자 교무부장인 거머리만은 달랐다. 그는 오히려 해탈방에 드나드는 것을 즐기는 사람처럼 보였다. 왼쪽 다리를 조금 저는 것을 빼고는 그는 특별히 눈에 띄는 사람이 아니었다. 치와와처럼 두 눈이 튀어나오고 몸집도 왜소해서 외모는 볼품이 없었다. 그러나 그는 교장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학교가 설립되고 교무부장으로 부임한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전 학년에 걸쳐 우열반을 편성한 것이었다. 매 학년 전교 100위 내의 아이들을 모아 우등반이라 하여 국영수 별도 수업을 받게 하였고, 기타 과목도 야간 자율학습 시간과 휴일 및 방학을 이용하여 보충수업을 병행했다. 또한 매월 1회 우등반만 학력고사에 준하는 난이도의 모의고사를 실시하여 자신의 실력을 스스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학생 간의 경쟁을 부추겼다. 한 학기 만에 아이들의 성적이 쑥쑥 올라간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마침내 그 해 학력고사에서 아이들은 교무부장과 교장의 기대대로 스카이를 포함한 명문대 합격자 기준, 전국 5위안에 들어가는 성적을 거두었고 학교는 단번에 서울의 신흥 명문 사립고등학교로 부상했다.
새로 생긴 학교에 아이들이 전학을 가고 입학하게 된 것을 달가워하지 않던 학부모들은 불과 1년 만에 입장을 바꾸었다. 학부모들은 너도나도 학교 앞으로 주소를 옮기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거머리는 학기 초에 1반의 아이들을 두 패로 갈라놓았다. 기준은 간단했다. 대학에 가겠다고 한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었다. 그는 아이들을 닦달하지 않았다. 성적이 나쁜 아이들도 혼내지 않았다. 오직 공부하는 아이들을 방해하는 아이들만 가차 없이 처단했다. 껄렁대던 아이 몇이 공부하는 아이에게 시비를 걸다 거머리에게 걸려 호되게 혼이 난 후에는 아무도 공부하는 아이들을 건드리지 않았다.
담임은 1교시가 시작될 즈음에야 땀을 뻘뻘 흘리며 들어왔다.
“이것들은. 아직도 한밤중이냐? 수업 안 할 거야? 왜 이렇게 어두워. 빨리 불 켜!”
앞문 쪽에 앉은 아이가 전등 스위치를 똑딱거렸다.
“정전입니다.”
“뭐? 또 정전이야? 이 새끼들은 전기를 몰래 팔아먹나? 허구한 날 정전이야, 허구한 날. 아, 아참. 강욱이는?”
그가 최강욱의 자리로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결석입니다.”
하모가 대답하며 일어섰다.
“차려.”
“됐어.”
담임이 인사말을 자르며 하모에게 고개를 돌렸다.
“강욱이는 결석이 아니야, 아파서 못 나오는 거지.”
하모가 그대로 서서 입술을 달싹이며 머뭇거리자, 거머리가 소리를 질렀다.
“뭐야, 반장! 할 말 있어?”
그제야 하모는 맥없이 자리에 앉았다. 담임이 튀어나온 두 눈을 끔벅거렸다.
“오늘부터 음악, 미술, 체육 시간은 국영수 보강 수업을 진행한다. 그리고 예체능 전공 지원자만 별도로 수업이 있다. 알았지?”
“네.”
아이들 몇이 마지못해 대답했다. 거머리는 엄기만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잘 들어. 다시 한번 경고하는데 야자 끝나고 교문 앞에서 뻐끔거리지 마라. 떡볶이집 아저씨가 교무실까지 찾아와서 뭐라고 그랬는지 알아? 밤만 되면 교문 앞에 빨간 반딧불이가 날아다닌대. 무슨 말인지 알지? 화장실 뒤, 저 위 철탑 아래, 사람 똥 냄새나고 개똥 널린 곳에서 어정대지 좀 마라. 괜히 의심받고 죽도록 두들겨 맞고 나면 너희만 손해 아니냐. 아무튼 걸리면 죽는다. 공산이 너는 신발 좀 신고, 껌도 뱉고. 사내자식들만 있는 교실이라지만 해도 너무한다. 홀아비 냄새도 안 나니?”
거머리는 코를 감싸 쥐더니 인사도 받지 않고 나가 버렸다.
그가 나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기만이 목에 핏대를 세우고 욕설을 퍼부었다.
“근데 저 빨갱이 새끼, 선생 맞냐? 나야 담배를 피우니까 할 말이 없지만, 저 새끼는 정말 쓰레기다.”
공산이 실실 웃었다.
“왜 용기만 님의 전용 흡연 구역을 감히 금연 구역으로 정해서?”
“웃기지 마. 저 새끼가 피우지 말란다고 내가 못 피울 것 같냐?”
“그러면 왜? 뭐가 또 못마땅한데?”
“야, 선생이면 학생이 담배를 못 피우게 해야지, 여기서 피우면 죽여버린다고 하는 게 말이나 돼? 어떻게 저런 게 선생이라고 우리 학교까지 굴러들어 왔을까?”
기만이 흥분했지만, 공산은 여전히 웃기만 했다.
“혼자 열 받지 마라. 쟤가 그래 봬도 재단의 영웅 아니냐? 스카이 많이 보냈다고 해탈이 얼마나 예뻐하는데. 학부모들도 그렇고”
“재단의 영웅 좋아하시네. 지가 공부했나? 애들이 한 거지.”
“그런데 기만이 너, 방 일병 닮아가는 거 알아?”
“무슨? 왜 내가 그 새끼를 닮아?”
“너 요즘 말끝마다 ‘빨갱이 새끼, 빨갱이 새끼’라고 하잖아.”
“내가 정말 그랬어? 어휴, 그럼 안 되지. 왜 나쁜 건 금방 배울까.”
“그래, 정신 차려. 너까지 꼴 보기 싫어질라.”
기만은 아직 분이 풀리지 않은 듯했다.
“그리고 또 있어. 빨간 반딧불이 좋아하시네. 반딧불이가 얼마나 깨끗한 곳을 좋아하는데. 이렇게 더러운 학교에서 예쁜 반딧불이가 살 수 있을 거 같아? 거지 같은 새끼.”
하모가 막 끼어들려는데 교실을 나갔던 거머리가 다시 돌아왔다. 모두 입을 다물었다.
“전달 사항이 하나 더 있는데, 수업 시간에 장난 좀 그만 쳐라. 신참 선생들 군기 잡지 말고. 선생들 울리면 너희들한테 좋을 거 하나 없다. 특히 공산이, 말썽 좀 그만 피우고. 그 좋은 머리로 공부를 더 하라니까. 그러면 전교 1등…, 물론 전교 1등은 당연히 호석이지만.”
거머리는 아차 싶었는지 양호석의 눈치를 살피며 서둘러 화제를 바꿨다.
“선생님 모두 자기 이름이 있다. 해괴한 별명 그만 만들어 부르고. 사내자식들이 뒤에 숨어서 치사하게 그게 뭐냐? 그리고 별명을 만들 거면 좀 예쁘게 만들던지. 뽀미가 뭐냐? 뽀미가. 나쁜 자식들. 새로 오신 영어 선생님 별명도 벌써 소문이 쫙 퍼졌더라. 그런 식으로 사람을 우습게 만들면서 너희가 제대로 대접받을 줄 알아?”
뽀미는 기만으로부터 연애편지를 받은 – 물론 기만은 그런 편지가 아니라고 잡아뗐지만 – 미술 선생의 별명이었다. 하모는 복도에서 처음 마주친 청순한 얼굴의 여선생을 아이들이 뽀미라고 부르는 것을 듣고 나서야 그녀가 학교에서 제일 예쁘다는 천보미 선생임을 알았다. 그렇지만 아이들의 설명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뽀미는‘뽀글이 미친년’의 줄임말이었다. 파마한 예쁜 선생이 미쳐 날뛴다고 선배들이 지어준 별명이라는 거였다.
거머리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공산이 손을 들었다.
“선생님도 별명을 지어 저희를 부르지 않나요?”
“또 시작이다. 선생님은 너희들 한 명 한 명을 잘 기억하기 위해 그러는 거지. 그게 따질 일이냐? 이제 고3이면 산이 너도 철 좀 들어라. 다들 어서 수업 준비나 해.”
거머리는 짜증 섞인 목소리만 남기고 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
그의 구둣발 소리가 멀어지자 다시 기만의 고함이 들려왔다. 말투는 더 험악해졌다.
“거머리 개새끼! 해탈이 앞에서는 꼼짝도 못 하고 딸랑거리는 놈이 우리 앞에서만 지랄한다니까. 또 지들은 맘대로 별명을 지어 부르면서 우리는 부르면 안 된다고? 정말 거지 같네, 이 학교.”
듣고만 있던 공산이 참견했다.
“기만아, 학교가 더러운 게 아니야. 학교 안에 숨어서 왕 노릇 하고 돈만 밝히는 선생들이 더러운 거지.”
하모도 기만도 공산을 쳐다볼 뿐 그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하모가 기만에게 물었다.
“기만아, 나도 거머리는 좋아하지 않아. 그런데 학교가 더럽기는 뭐가 그렇게 더러워?”
“야, 샌님 반장. 너도 정말 답답하다. 매일 수업 끝나면 교무실에 가서 학급일지 쓰지? 그때 교무실이 어떻게 보이던? 그 쓰레기들이 떠드는 거 너도 봤을 거 아냐? 하는 얘기는 돈 얘기 말고 더 있어? 누구 돈 빼먹을 궁리만 하지 않던? 그놈들이 선생이라고? 돈벌레일 뿐이야. 그것도 썩은 냄새 풍기는 돈벌레.”
기만이 하는 말이 무엇인지 하모는 알고 있었다. 교무실의 그들이 항상 돈 얘기만 입에 올리는 것은 아니지만 그 얘기가 자주 오가는 것은 사실이었고, 그 얘기를 특히 자주 하는 선생들이 따로 있었다.
기만이 말을 이었다.
“내가 괜히 거머리를 싫어하는 줄 알아? 나도 치사해서 지금까지 참았는데 하나만 말할게. 내가 3학년 되고 나서 그 새끼가 아빠 가게에 몇 번이나 왔다 갔는지 알면 너희도 깜짝 놀랄걸. 말을 말자, 정말. 또 네 엄마.”
기만은 자기가 내뱉은 말에 놀라 말을 멈추고 하모의 눈치를 살폈다.
“우리 엄마가 뭘 어쨌는데?”
하모가 발끈했다.
공산이 기만의 앞을 막아섰다.
“기만아, 그만해.”
기만은 말리는 공산을 한번 쏘아보더니 하모에게 고개를 돌렸다.
“모르면 됐어. 그만하자.”
하모가 일어나서 기만에게 달려가 녀석의 멱살을 잡았다.
“우리 엄마가 뭘?”
기만이 멱살이 잡힌 채로 한참이나 하모를 노려보다가 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하모 네가 정말 모르는 거 같아서 말해 준다. 설마 너만 잘나서 네가 반장이 됐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네가 반장이 되기 전부터 네 엄마가 몇 번이나 학교에 왔다 갔는지 알기나 해? 학교엔 네 엄마가 왜 왔겠어?”
“왜 왔는데?”
“그만하자.”
“뭘, 그만해? 빨리 말해.”
그가 멱살을 잡은 하모의 손을 뿌리쳤다.
“궁금하면 네 엄마한테 물어봐. 아니면 거머리한테 물어보거나. 그래 거머리한테 물어봐라. 그 새끼가 뭐라고 하는지 들어 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