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olievibes Oct 08. 2024

책도 인연인 이유

곧장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찾았다. 집 앞 도서관에 있는 책은 오래전 내가 읽었던 책과는 달랐다. 하드커버에 책 두께도 그것의 3배쯤 됐다. 교보에서 구매해 소장했던 적당한 두께의 책은 오리지널보단 생략된 부분이 많이 있었으리라 추측해본다.


몇 년전, 책도 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소한 삶이 내게 척척 들어맞으면서 책도 모조리 정리했다. 알라딘 중고에 팔기도 매도 불가능한 것도 그냥 버려주세요.하고선 그렇게 집에 있는 책을 비웠다. 그때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도 보냈다. 도서관에 가면 언제든 빌려볼 수 있다는 것이 비움을 가능하게 했다. 물론 읽어보고 싶은데 도서관에 없는 책이면 교보에서 사서 읽는다.


무튼 문득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불렀다. 서른 . 기억이 선명하다. 광화문  가운데. 높은 고층 빌딩 오피스 회의실에 앉아 읽어내려가던  모습. 광화문 사거리가  눈에 들어오는 풍경과 폭풍우처럼 휘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  모든  온몸으로 감각하고 있는  사이의 경계. 니체를 만났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달까. 나는  시절 닥치는대로 책을 읽었다.


아침 7시 전에 출근해 아직 아무도 오지 않는, 아무 인기척이 없는 곳이어야만 안정됐고 편안했다. 당시 내게 니체의 언어는 어려웠다.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난해한. 낯선. 그 어떤 문장도 한 번에 이해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었다. 마치 죽자사자 달려드는 맹수처럼. 책을 읽으면서 이토록 이해하려 애쓴 책도 이게 처음이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완독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되던 시절이었다. "이 책은 다시 읽어내려가야겠어. 몇 번은 읽어야 이해될까? 내 것으로 체화될까?" 그로부터 6년이 흐른 지금. 어쩌자고 이 책을 꺼내들었까? 무엇이 이토록 위로받고 싶은 걸까?


내가 고전을 사랑하는 이유는, 이토록 단순한데, 생각하게 한다. 질문하게 한다. 자기 자신이 될 수 있게 돕는다. 사유의 시선을 높여준다. 새로운 세계를 만나게 한다. 본질을 체험하게 한다. 결국 자기 자신을, 자기 삶을 사랑하게 한다.


고전작가들과의 만남은 마치 그들이 나와 마주하고 있는 듯한, 꿈속에서 늦은 밤 촛불 하나 켜고 나무 책상에 앉아 글쓰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제3자처럼 지켜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한참이 지난 뒤, 나이 들어가면서 알게 된 것들이, 깨닫게 된 것들이 많아진 이 시점에 읽어내려갈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내게 어떤 메시지를 던져줄까? 내게 어떤 또 다른 소름돋음 혹은 황홀경을 느끼게 할까? 그래도 좋고 아니어도 좋고 있는 그대로 발라봄으로 이 책을 읽어내려가다보면 나만의 관점으로 나만의 경험으로 나만의 시선으로 해독될 수 있겠지.하는 마음이 있다.


애써 해석하려 하지 않을 텐데. 실은 어떤 해석도 필요없는 것이다.

삶이 살아지는 것처럼 책도 읽어지는 것이다.



이전 14화 감자 닮은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