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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lievibes Oct 02. 2024

마음은 잘못이 없다

머리카락을 한껏 끌어올려 야무지게 뒤로 묶어 올린다는 건, 오늘 하루. 분명 비장하겠다는 의미다. 이번엔 정말이지 조급해하지 말자. 더는 내가 원하지 않는데에, 즐겁지 않은데에, 행복하지 않은데에, 내일.내일.내일.하며 이 소중한 순간들을 놓치지 말자고 다짐한지 벌써 한 달째다.


정확히 한 달. 한 달 동안 좋아하는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여행도 하고 그렇게 마음껏 놀아보자, 그 끝엔 선명해지겠지.했건만, 사람 잘 변하지 않는구나 싶은 것이. 마음껏 제대로 놀지도 못하는 내가 영 못미더워 시월 이일. 눈뜨자마자 머리를 질끈 묶은 것이다.


그 누구도 뭐라 하지 않거늘, 왜 노는 것도, 왜 쉬는 것도 어느 것 하나 화끈하게 혹은 제대로 쿨하지 못한 걸까? 담대하지 못할까? 왜 이렇게 불안해할까? 두려워할까? 이럴 때면 아직 멀었구나.싶다.


한 달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돈 벌지 않아도 죽지 않는데, 어떤 일이 일어나지 않는데, 무엇에 집착하고 있는가? 그런 모습에 실망한 모습이 역력하면서도, 영 못미더우면서도 그러면서도 속상한 나와, 이상과의 괴리가 이 가을 날 또 옭아매려든다.


이럴 때 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즉각적인 방법은 글쓰기인데, 절로 키보드에 손이 간다. 폭풍우처럼 휘몰아치는 내 마음을 가라앉히는데 이만한 게 없다. 절로 키보드에 손이 간다는 건, 그마만큼 무언가를 와르르, 쏟아내고 싶은 배설하고 싶은 것이다. 즉각적인 효과있다.


글쓸 때 어떤 계산도 들어가지 않는다. 진솔하다. 이토록 사소하지만 시시하지만 솔직할 수가 없다. 진짜가 아니면, 진실되지 않으면, 솔직하지 못하면 그것은 진짜가 아니다. 그것은 쏟아냄 혹은 배설이 아니다. 글쓰는 동안과 마지막 문장 마침표를 찍은 직후를 보면 안다. 이 글쓰기가 진짜 나인지 아닌지.


글 쓸때, 희한하리만치 백스페이스를 누르지 않는데, 휘리릭 쓰다보니 생긴 오타를 고칠 때 정도. 이런 날 글쓰기는 내 안에 정말 글쓰기 요정이 있는 건가. 아니야 글쓰기 괴물인거야.싶을 정도로 글의 소재며 문장들이 비비빅 맴돈다. 그러니 하루에도 몇 편은 쓰게 될 수밖에.


청바지나 바지를 불편해해 사계절 가릴 것 없이 미디 스커트나, 롱스커트를 즐겨입는데, 상의는 박시한 맨투맨티, 하의는 하늘색 롱스커트를 입고 나왔다. 집 근처 카페를 갈 땐 굽이 살짝 있는 슬리퍼를 동네 마실용 데일리로 신는데, 이젠 제법 발이 시렵다. 이러다 금세 추운 겨울이 찾아오겠지.


나이 들어가며 언제부터인가 차가운 겨울이 좋아졌다. 추운 겨울이 외려 살아있음을 선명하게 느끼게 해준달까. 예전에 비하면 가을이 확실히 짧아졌다. 아쉬운 건 아쉬운대로 흘려보내야지. 이토록 짧아진 가을이라서, 더욱 가을가을할 수도, 이 가을이 이 계절이 더욱 아름답고 애틋할지도 모른다.


서른 일곱해를 살아오면서 확실하게 알게 된 것들이 있다. 그 중 하나는, 나란 사람 정말이지 생각이 너무도 많다는 것. 그 생각들로 지난 내 삶을 방치하고 방관하고 막다른 곳으로 침잠하게 내버려둔 죄.가 있다는 것. 서른 초반에 호되게 앓았던 우울이라는 방황의 계절은 내 스스로에게 내린 가혹한 처벌이었다는 것.이다. 생각이 많다는 걸 긍정적인 방향으로, 내 삶에 유리한 방식으로 치환하지 못했던 것에 대한 아쉬움 이따금씩 밀려오는 아쉬움과 후회는 어쩔 수 없는 거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씩씩하게 일어서 다시 제 갈 길을 가야한다. 삶은 본래 힘들다. 그래서 더욱 소중하고 아름다운게 아닌가. 나이 들어가며 알게 되는 것들이, 깨닫게 되는 것들이 앞으로 내 삶에 하나씩 하나씩 촉촉히 스며들어 좀 더 현명한 좀 더 지혜로운, 좀 더 따뜻한, 좀 더 상냥한, 좀 더 친절한 사람이 될 수 있게 해 줄거란 믿음이 있다.   

  

실은 마음은 잘못이 없다. 지난 시절 왜 그토록 마음과 싸우려 들었는지. 싸우려할 수록 저항할수록 멀어져가는 마음이다. 우당탕당, 쨍그랑, 시도때도 없이 카오스 상태가 돼버리는 마음이 그땐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생각이 나라고 감정이 나라고 착각했던 지난 시절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밑바닥을 쳐보고서야 알게 된 것들... 필연이었다. 삶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게, 자기 자신이 되어갈 수 있게 이 우주가 마련해 놓은 장치가 아니었을까.


감사한 마음으로 살면 감사할 일이 자꾸 생겨난다. 실은 그 어느 것 하나 깨달음을 주지 않는 것이 없다.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고 내 눈 앞에 펼쳐진 모든 현상들이 감동스러워보이는 마법. 서른 중반이 넘어서야 비로소 알게 됐다.


아침부터 계속해서 내 안의 소리가 들린다. "지금을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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