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삶은 삶은 달걀
오늘은 괄사비누의 배신이 있었다. 괄사비누를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하며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그거 줄어들면 어차피 그냥 비누 되는 거 아냐?’였다. 나는 괄사비누가 워낙 딱딱해서 그렇지 않다고, 이건 굳은 채로 줄어든다고 그렇게 떵떵거렸다. 그런데 오늘 괄사비누로 전신 마사지를 하며 툭, 툭 무언가 묻어 나오는 것이 하나 둘 많아지더니 알고 보니 그것이 비누의 껍데기들이었던 것이다. 내가 했던 떵떵거림이 무너진다. 부끄러워진다. 나의 자기 확신이 망가진다.
그래도 이왕 이렇게 된 거 비누 껍질들을 모아 수모 속에 넣어 물과 함께 잘 풀어준다. 그 안에 수영복을 넣고 문질문질 비비며 내 수영복도 이 괄사비누의 우드 스모크 향을 경험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보글보글 비누거품을 보며 오히려 잘 됐다는 생각을 한다.
괄사비누로 몸을 씻으면 몸이 뽀득뽀득해진다. 이 상태에서 열탕에 들어간다. 처음에는 종아리만, 곧이어 하반신 전체를, 마지막에는 목 밑까지 몸을 푹 탕에 담근다. 나는 숨을 꾹 참고 조금 잠수를 해 본다. 방금 수영을 할 때의 감각이 아직 몸에 남아 있다.
탕에 있는 사람들은 나를 포함해 전부 삶은 달걀 같다. 푹 삶아지고 속이 단단해지고 몸 안에 있던 약하고 흩날리는 번뇌들이 하나로 뭉쳐 선명한 노른자가 된다. 이런대로 저런 대로 모두 잘 익어가고 있다.
탕에서 나와 찬 물에 씻어주면 껍질처럼 겉에 붙은 후끈한 열기를 한 겹 가볍게 덜어내고 그야말로 보기 좋은 완숙란이 된다. 조금 더 새롭고 말끔해진 내가 된 것 같다. 전과 같이 약하고 흐물거리는 모습이 아니라 멋진 정체성을 챙긴 삶은 달걀의 모양으로 탕에서 벗어난다.
삶이 동그란 모양으로 데굴데굴 굴러가는 것이 아니라 자꾸만 브레이크가 걸린 듯 덜커덕, 또다시 덜커덕거릴 때가 있다. 그 이유를 다자키 쓰쿠루의 여자친구는 정리했어야만 하는 관계 또는 일을 과거에 잘 마무리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라고 했다. 과연 정말 그럴까. 나는 그것보다 더 쉬운 방법을 찾은 것 같다. 탕에서의 5분. 이 5분 만이면 다시 매끈하고 동그란 삶은 달걀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