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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들의 연대기
04화
돼지가 되길 바랐던 어느 날
by
CAPRICORN
Dec 26. 2024
Fact
돼지의 지방률은 15~20%로 부위와 사육 방식에 따라 다르다.
돼지는 뛰어난 후각과 지능을 가지고 있으며, 먹이를 찾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돼지는 청결한 습성을 지니며, 먹는 곳과 배설하는 곳을 철저히 구분한다.
Question
"내가 돼지로 태어났다면 더 행복했을까?"
복잡한
인간관계와 끝없는 경쟁 대신, 단순히 먹고 자고 뒹굴기만 하는 돼지로 산다면 얼마나 자유로울까?
돼지로 태어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나는 종종 그런 생각을 했다. 좁은 방 안,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한다.
"돼지는 얼마나 편할까. 그냥 먹고 자고, 아무 걱정 없이 살아가잖아."
사람들은 말한다. 돼지는 무책임하고, 더럽고, 아무 생각 없는 동물이라고. 하지만 나는 그 말이 부럽기만 했다. 복잡한 관계, 끝없는 경쟁, 그리고 나를 비웃는 세상 속에서 숨죽이는 것보다, 차라리
돼지우리 속 돼지가 되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그날 밤, 나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아니, 꿈이라기엔 너무 생생했다. 나는 돼지가 되어 있었다. 좁은 우리 속에서 다른 돼지들과 함께 있었다.
처음엔 예상대로였다. 좁은 공간, 나뒹구는 돼지들, 땅 위에 흩뿌려진 먹이. 나는 생각했다.
"봐, 이게 돼지의 삶이지. 아무 규칙도, 복잡함도 없잖아."
나는 편안히 뒹굴며 진흙 냄새를 맡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나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돼지들은 생각보다 체계적이었다. 어느 구역은 먹이를 먹는 장소, 또 다른 구역은 배설하는 장소였다. 돼지들은 결코 자기 먹는 자리에서 배설하지 않았다.
"너무 깨끗한 거 아니야? 돼지들이 이런 줄은 몰랐는데…"
내가 중얼거리자, 옆에 있던 돼지가 피식 웃었다.
"너는 돼지들이 아무렇게나 사는 줄 알았나 본데? 우리가 이러지 않으면 우리도 힘들어."
그뿐만이 아니었다. 돼지들은 먹이를 먹는 것도 규칙적으로 움직였다. 강한 돼지들이 먼저 먹고 약한 돼지들이 나중에 먹었지만, 서로 간에 큰 충돌 없이 차례대로 움직였다.
"진짜… 규칙적이네."
나는 돼지들이 단순히 흩뿌려진 먹이를 먹고 끝내는 게 아니라, 서로의 자리를 지키고, 필요한 만큼만 먹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놀랐다.
아침이 되자 돼지들은 우리 속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몇몇은 코를 땅에 대고 흙을 파헤치며 무언가를 찾고, 다른 몇몇은 울타리 근처를 서성이며 나름의 경계 역할을 하고 있었다.
"저게 뭐 하는 거야?"
내가 물었다. 다른 돼지가 대답했다.
"먹이를 더 찾아야지. 땅속에는 더 깊이 묻힌 게 많아."
나는 궁금했다. "그냥 누워있으면 안 돼? 어차피 먹을 건 주는 거잖아."
그 돼지는 피곤한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말했다.
"누가 준다고? 우리가 못 찾아내면 아무것도 없어. 여기가 그냥 밥이 나오는 줄 알아?"
그 말에 나는 침을 삼켰다. 돼지들은 누워서 쉬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그 순간, 돼지가 계속 말을 이었다.
"우린 대단한 걸 하려는 게 아니야. 그냥 해야 하니까 하는 거지. 안 그러면 우리가 여기서 못 버티잖아."
그 단순한 말이 마음에 이상하게 와닿았다.
나는 돼지들이 단순히 아무 생각 없이 누워있는 동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애쓰는 게 아니라, 그저 필요한 일을 묵묵히 해내고 있었다.
"돼지들도 그들만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거였구나. 사람들은 그걸 몰랐던 거고."
나는 돼지들의 삶을 보며 부끄러워졌다. 나는 돼지들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존재로
무시해 왔지만, 그들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내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꿈에서 깨어났다. 여전히 좁고 어두운 방이었다.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사람들은 나를 눈치 보게 하고, 내가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비웃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돼지우리 속에서 배운 게 있었다.
"돼지들도 아무렇게나 살지 않아. 그들은 필요한 일을 하고, 그저 하루를 살아냈을 뿐이야. 나도 그렇게 살아볼까?"
대단한 목표를 세우거나, 남들처럼 살려고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나만의 방식으로 해나가기로 했다.
일단 창문부터 열었다. 신선한 공기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햇빛이 비치는 방향으로 조심스럽게 한 발자국을 내디뎠다. 비록 서툴렀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그냥 내가 살아낼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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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들의 연대기
02
사마귀 문파의 최후: 조화는 불가능했나
03
도파민 중독 벌꿀오소리: 교만의 끝
04
돼지가 되길 바랐던 어느 날
05
남의 둥지에서 태어나다
06
728번의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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