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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는 비밀을 말한다 (2부)

2부 : 진실의 목소리부 : 진실의 목소리

by CAPRICORN


앵무새는 비밀을 말한다 (1부)

Fact

1. 앵무새는 반복해서 들은 말을 기억하고 따라할 수 있으며, 특정 시간대나 자극에 반응해 말을 반복할 수 있다.

2. 앵무새는 감정 억양, 말투, 분위기까지 모방할 수 있다.

3. 앵무새는 애착을 느낀 사람의 부재에 스트레스를 받고, 그 사람의 목소리나 행동을 오랫동안 기억한다.

Question

1. 실제로 앵무새가 범죄 사건에서 단서를 제공한 사례가 존재할까?




Chapter 5. 진실의 입구



그 어떤 것도

‘결정적인 한 방’은 되지 못했다.

지문도 없고, CCTV도 없고,

그놈의 알리바이는 히터가 조작된 그 시간대에만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나는 연수의 방에 그냥 멍하니 앉아 있었다.



바닥 어딘가에서 로봇청소기가 느릿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익숙한 기계음이 울리는 그 모습이

왠지 모르게 비웃는 것처럼 보였다.


“웃기지 마…”


나는 말도 안 되는 분노에

청소기 옆구리를 탁— 하고 쳤다.


덜그덕.


청소기가 한 번, 크게 흔들렸다.


그리고——


‘딸각’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바닥에 굴렀다.

나는 숨을 멈췄다.

바닥 위에

작은, 둥근 진주 한 알이 굴러 있었다.


사진 속 연수의 귀걸이가 한쪽 밖에 없던 것이 청소기 안에 부자연스럽게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사진을 찍었고

장갑을 끼고 증거물을 채집했다.

그 때 진주귀걸이 외에 청소기 속에 매우 얇고 낯선 섬유 조각이 보였다.


나는 그걸 보는 순간,

뇌 안에서 무언가 ‘뚝’ 끊어졌다.


정건이 청담동 쇼룸에서 말했다던 그 소재.


“올봄 시즌, 제일 먼저 공개한 메인 안감이에요. 흘러내리는 곡선이 예술이고 제가 개발한 독점 섬유라고 볼수 있죠. ”


그 "독점"이라던 섬유가 지금——

그 섬유가, 연수의 집 청소기 속에 들어가 있던 것이다.

아마 알리바이 조작을 위해 쇼룸에서 프리젠테이션 하기전에 급하게 작업 했을 그의 소매속에 들어갔던 "섬유"가 아닐까


나는 귀걸이와 섬유를 지퍼백에 담았다.

그리고 그걸 두 손으로 감싼 채,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나는 그걸 국과수에 넘겼다.

이제는 시간싸움이다.

그가 빠져나갈 틈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Chapter 6. 그의 목소리



“청담동 쇼룸에서 그렇게 말했죠. ‘이번 봄, 오직 나만 쓴다’고. 특별한 안감이라고, 자랑까지 했잖아요.”



정건의 눈이 테이블 위 지퍼백 안의 섬유 샘플을 피하지 못했다.

입술이 말라붙은 듯, 그는 아무 대꾸도 없었다.

나는 한 걸음, 천천히 그에게 다가섰다.



“연수의 귀걸이 한 짝. 사건 이후 사라졌던 그 귀걸이요. 로봇청소기에 밀려 들어간 채로 나왔어요.”

“………”

“거기에—— 당신 옷의 섬유가 감겨 있었어요.”


정건의 목이, 아주 살짝, 아래로 움직였다.

그가 도망칠 길은 없었다.

그의 말이, 그의 손이, 연수의 죽음을 따라다니고 있었다.



그 순간——


조용하던 새장 안에서 앵무새가 입을 열었다.

마치 누군가가 타이밍을 재듯, 정확한 그 순간.


“9시… 타이머… 잘가라… 다 네 탓이야…”


쉰 듯하지만, 또렷한 목소리. 어딘가 인간과 너무 닮아 있었던 말투.

정건은 그 자리에서 힘없이 주저앉았다.

마치 자기가 던졌던 말이, 돌고 돌아 자기 목을 조를 줄 몰랐다는 얼굴로.

나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Epilogue. 잘 가, 연수야



사건이 끝난 후, 모모는 다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모모를 입양했다.

새장은 작고 조용한 내 방 한구석에 자리 잡았다.


그날 이후로, 모모는 시름시름 앓듯 말이 없었다.


타이머도,

잘가라도,

더는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숙이고, 작은 가슴을 조용히 오르내릴 뿐이다.

정건은 잡혔고, 법은 그의 죗값을 계산 중이다.

세상은 잠깐 떠들썩 했다. 유명한 디자이너가 살해 당했고 살해를 범했으니까.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사망 뉴스는 너무 빠륵게 다른 자극적인 뉴스들로 덮여졌다.



하지만 아직도, 그녀의 방은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그 방의 더운 공기.

헝클어진 천 조각.

그리고 멀찍이 떨어져 있던 저고리의 끈.



나는 매일 밤, 창문을 열고 중얼거린다.


“괜찮아.

이제 다 끝났어.”



그 말이 내게 하는 말인지,

연수에게 닿기를 바라는 건지,

아니면 남겨진 앵무새에게 전하는 위로인지

이젠 나도 잘 모르겠다.


그날 밤, 작은 숨소리처럼 들렸다.


“잘 가… 연수야…”


나는 고개를 돌렸다.

모모는 고요히, 눈을 감고 있었다.

그 조용한 목소리에

나는 더 이상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입술을 닫고, 고개를 숙이고 모모가 연수를 보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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