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침묵 속의 목격자
Fact
1. 앵무새는 반복해서 들은 말을 기억하고 따라할 수 있으며, 특정 시간대나 자극에 반응해 말을 반복할 수 있다.
2. 앵무새는 감정 억양, 말투, 분위기까지 모방할 수 있다.
3. 앵무새는 애착을 느낀 사람의 부재에 스트레스를 받고, 그 사람의 목소리나 행동을 오랫동안 기억한다.
Question
1. 실제로 앵무새가 범죄 사건에서 단서를 제공한 사례가 존재할까?
Chapter 1. 9시 타이머
“연수가… 죽었다고?”
“응. 자택에서, 자살로 추정된대.”
그 말도 이상했고,
그보다 그게 연수라는 것도 말이 안 됐다.
며칠 전에도 나한테 톡 보내놓고선.
그 연수가 죽었다고?
자살이라고?
나는 다음 말도 듣지 않고 차에 올라탔다.
연수가 그럴 리 없다는 생각뿐이었다.
사건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연수의 시신은 수거된 뒤였다.
남겨진 건 흔적뿐.
초가을 치고는 높은 실내 온도에 숨이 턱 막혔다.
그리고, 나는 멈춰 섰다.
방 안의 공기가 기묘했다.
무언가, 조용히 틀려 있었다.
책과 옷가지들이 바닥에 널려 있었고,
화장대는 넘어져 있었으며,
의자는 뒤집혀 있었다.
천장 전등 갓 아래에는 밧줄이 늘어져 있었다.
누가 봐도 '자살'처럼 연출된 장면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게 너무 정돈되어 있었다.
정돈된 어지러움.
너무 의도적인 무질서.
나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건 누가 설계한 죽음일지도 모른다.
“이거, 처음 발견 당시 사진이야.”
사건 현장에 있던 낯익은 형사가
작게 출력된 사진 한 장을 건넸다.
나는 말없이 그 사진을 받아들었다.
연수는 치마를 입고 있었다.
한복 디자이너였던 그녀가
최근 마지막으로 선보였던 디자인.
표절 시비에 휘말려,
그 옷을 두고 꽤 괴로워했던 걸 기억한다.
멀찍이 떨어진 저고리는 끈이 모두 해져 있었고,
핸드폰에는 유서처럼 보이는 글이 떠 있었다.
어딘가, 어색했다.
유서조차 그녀답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의 목에는 미약하게나마 저항흔이 있었다.
교살을 당했다기엔 어딘가 애매하게 남은 흔적에 사람들은 마지막에 버둥거린 게 아닌가 의심할 수준이었다.
나는 멍하니 방 안을 훑고 있을 때,
기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9시… 타이머… 잘가라…”
쉰 목소리.
딱 세 마디.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그 자리에 있었다.
작은 새장.
붉은 머리를 가진 하얀 앵무새.
연수가 키우던 앵무새, 모모였다.
Chapter 2. 의심의 시작
나는 그날 이후, 거의 매일 사건 현장을 찾았다.
누군가는 그걸 미련이라 하겠지만——
나한텐 그냥,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은 느낌이었다.
모모는 점점 나를 알아봤다.
자주 봐서 익숙해졌는지,
이제는 내가 다가가면 고개를 들고
정확히 같은 말을 반복했다.
“9시… 타이머… 잘가라…”
처음엔 그저 기계적으로 들렸다.
어디선가 들은 말을 그냥 따라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점점, 이상해졌다.
발음은 또렷해졌고,
속도는 점점 자연스러워졌다.
무엇보다 감정이 실리기 시작했다.
그건 단순한 말이 아니었다.
모모가 기억한 누군가의 목소리,
그 사람을 찾아야 했다.
방 안을 다시 떠올렸다.
책과 천, 옷가지가 뒤섞인 바닥.
한복 조각들.
넘어진 가구.
그리고——
너무 뜨거운 공기.
그제야 생각났다.
초가을인데, 그날 방 안은 숨 막힐 만큼 더웠다.
그날,
연수는 분명히 자살처럼 발견됐다.
하지만…
연수는 정리정돈에 예민한 사람이었다.
사소한 물건 하나 놓는 자리까지도 정확히 기억하는 성격.
그런 그녀가
방을 저 지경으로 두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을까?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연수는 이런 상태에서 스스로 목을 맬 사람이 아니다.”
이 생각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리고,
하나둘씩 얼굴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첫째, 백유진. 룸메이트.
연수와 함께 살았고,
사건 당일 가장 먼저 시신을 발견한 인물.
알리바이는 없었다.
연수와는 사소한 일로 자주 다퉜다.
특히 청소 문제.
최근엔 밀린 월세 문제로 크게 싸운 적도 있었다.
경찰은 가장 먼저 그녀를 의심했다.
둘째, 윤서준. 남자친구.
연수와 1년 가까이 사귀던 사이.
하지만 사건 하루 전, 통화로 심하게 다투었다.
고성이 오가는 걸 들었다는 이웃의 증언도 있었다.
사건 당일, 그는
“회사 근처에서 혼자 산책 중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산책 경로도, CCTV도 없다.
그의 알리바이는
스스로 말하는 것 외엔 어떤 증거도 없었다.
셋째, 정건. 동료 디자이너.
연수와 같은 브랜드에서 일하며
겉으로는 늘 부드럽고 예의 바른 사이였다.
하지만 연수는 최근 자주 말했다.
“누가 내 걸 베껴. 너무 티 나게.”
“말은 못 하겠어. 너무 가까운 사람이니까.”
그 ‘가까운 사람’이 누구였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정건.
그는 사건 당시
청담동 쇼룸 미팅 중이었다고 했다.
보조 디자이너, 고객, CCTV
모두가 그의 알리바이를 보장해줬다.
너무 완벽했다.
그래서 더 수상했다.
그리고 그날 밤, 9시.
모모는 처음으로 문장 전체를 말했다.
“끈이 풀리면…”
나는 숨을 멈췄다.
머릿속에,
한 장의 사진이 떠올랐다.
연수의 목에 감겨 있던 천.
멀찍이 바닥에 떨어져 있던 저고리.
그리고, 해져 있는 고름끈.
그 끈은 마치
무언가에 강하게 당겨져 바느질 선까지 틀어진 것처럼 보였다.
사람들은
스트레스에 옷을 던진 흔적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어떠한 '힘'이 작용했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 힘은,
누군가의 의도에서 나온 것이었다.
나는 가방에서 수첩을 꺼내
무심히 펜을 뽑았다.
히터
고름
의자
내 필기는 거의 무의식에 가까웠다.
하지만 내 직감은 그때부터 확실해졌다.
의심해야 할 사람은
죽은 연수가 아니라,
그 곁에 있던 산 사람들이다.
Chapter 3. 설계된 죽음
앵무새는 계속 말하고 있었다.
> “9시… 타이머… 끈이 풀리면.."
그리고, 나는 이제부터 ‘사람들’을 직접 심문 하기로 했다.
[심문 1. 룸메이트 – 백유진]
“그날 밤 9시, 어디 있었죠?”
“한강이요… 조깅하려고.”
“혼자요?”
“…네.”
“연수랑 마지막으로 다툰 건 언제였죠?”
“2주 전이요. 청소 문제로요.
그 애는 너무 깔끔해서…
근데 그날, 방이 너무 엉망이라 저도… 솔직히 무서웠어요.”
그가 느꼈다는 ‘무서움’.
그건 충격이었을까, 죄책감이었을까.
[심문 2. 남자친구 – 윤서준]
“사건 전날, 통화 내용 기억나세요?”
“기억 안 날 수가 없죠…
제가 꽤 심하게 말했거든요.”
“무슨 내용이었나요?”
“디자인 문제였어요.
요즘 연수가 말이 많았거든요.
‘내 거 누가 따라한다’고.
직접 이름은 안 댔는데…
느낌상 정건 같았어요.”
“그날 밤 9시에 혼자 있었다고요?”
“네… 그냥 혼자 산책했어요…”
그는 고개를 들었다.
“…근데요.
그 앵무새, 진짜 그런 말 해요?
‘잘가라’ 뭐 이런 거?”
“…응.”
> “9시… 타이머… 잘가라…”
그 말에, 그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게 마지막이라면, 너무 잔인하네요.”
[심문 3. 완벽한 사람 – 정건]
“정건 씨, 불편하지 않으시면 몇 가지 여쭤볼게요.”
그는 단정한 셔츠 차림으로 미소를 지었다.
“물론이죠. 도와드릴 수 있다면 얼마든지요.”
“사건 당일 9시, 어디 계셨어요?”
“청담동 쇼룸에서 미팅 중이었습니다.
보조 디자이너 1명, 고객 2명.
CCTV도 있고, 확인해보시면 돼요.”
“연수가 최근 스트레스 많았던 건 알고 계셨죠?”
“뭐… 아티스트들이 다 그렇죠.
다들 민감하니까요.
그런데 저는…
연수를 ‘진짜 천재’라고 생각했어요.”
“혹시, 그녀가 자신의 디자인이 도용당했다고 말한 건 알고 계신가요?”
정건은 살짝 웃었다.
“그런 말은 처음 듣네요.
혹시 오해가 있으셨던 거 아닐까요?”
그는 웃으며 말했다.
심문은 끝났다.
완벽한 알리바이를 가진 한사람.
그리고 없던 두사람.
그때 앵무새가 추가로 말했다.
"더워..ㅡ"
순간 불현듯 그 현장의 더웠던 공기가 떠올랐다.
초가을에 비현실적이었던 그 온도.
나는 바로 사건현장에 달려갔다.
Chapter 4. 귀걸이와 섬유
모모의 말 한 마디에
무언가가 번뜩,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나는 사진을 다시 들여다봤다.
히터.
온도 설정은 ‘30도, 터보 모드.’
초가을에, 히터를 최대로?
그건——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시신의 온도'를 조작한 거다.
사망 추정 시각은 오후 8시.
하지만 그 온도라면
사후경직이 더 빨리 왔을 가능성.
의사가 본 건 '죽은 몸의 상태'였지,
'진짜 죽은 시각'이 아니었다.
정건의 알리바이?
그건 “연수가 8시에 죽었다면”만 유효하다.
하지만 9시에 죽었다면 그는 그 자리에 없었다.
그때, 쇼룸에 있었다.
정건은 그 시간대를 조작해야만 했다.
그때 문득,
나는 연수의 방 한켠에 있던 로봇청소기를 떠올렸다.
늘 충전기 앞에 놓여 있던 그 녀석이——
그날은, 다른 위치에 있었다.
나는 앱을 켜고 작동 로그를 확인했다.
9시 정각.
30초간 작동.
출발 지점: 의자 앞.
너무 이상했다.
하필이면—— 죽은 시간.
하필이면—— 그 자리에.
청소기는 의자 앞에서 출발해 벽으로 향했고,
우산 손잡이 근처에서 방향을 튼 뒤 멈췄다.
나는 무릎을 꿇고
의자 다리 옆 바닥을 들여다봤다.
흙먼지가 약하게 긁힌 흔적.
무언가가 끌린 듯한, 희미하지만 분명한 자국.
그 옆엔
느슨하게 풀린 고름끈이 붙은 저고리가 떨어져 있었다.
그 끈은——
연수의 목에 감겨 있던 그것과 같은 재질이었다.
이건, 의자에 묶여 있었던 끈이다.
사건 당시 사진을 다시 꺼냈다.
연수는 한복을 입고 있었다.
치마는 그대로였지만, 저고리는 바닥에 따로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치마의 매듭 방향은 오른손잡이 방식.
연수는 왼손잡이다.
그런 매듭을 만들 수 없다.
나는 조용히 수첩을 덮었다.
머릿속에서는
모든 조각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수면약 복용 → 의자에 앉힘
저고리 끈으로 의자와 연결
로봇청소기 타이머 작동 → 끈 당김
밧줄 조임 → 의자 전도 → 자살 위장
히터 작동 → 사망 시각 조작
이건 타이머로 작동하는, 완벽하게 짜인 살인이었다.
겉으로는 자살처럼, 속은 철저하게 설계된 죽음.
이제, 남은 건 단 하나였다.
이 모든 걸,
누가 설계했는가.
모든 실마리는——
정건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증거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