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 칼럼
지난달 문학동네에서 재밌는 행사를 한다고 하기에 다녀왔다.
가을밤의 심야 책방이었던가?
다음 날 일이 있어 마지막까지 참여하지 못하고 12시가 조금 지난 시간에 행사장을 떠나왔었다.
이날 적어도 두 가지에 놀랐다.
하나는 의외로 참여자가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었다.
행사 참가의 조건 가운데 하나가 '지정 도서를 소지할 것'이었기에 간단히 참여를 결심할 것 같지 않았기에 조금 놀랐던 거다. 혼자 온 사람은 많지 않았지만, 그렇게 적지도 않았다. 자유롭게 왔다는 하나의 증거다.
행사는 공간이 넓고 볼만한 야경도 있었으며, 제공된 음식도 나쁘지 않았다. 입장료나 다름없는 책 값이 아깝지 않을 정도는 되었다.
다른 하나는 잘은 모르지만 문학동네의 마케팅 팀 가운데 한 팀 전체가 행사에 참여해서 늦은 시간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던 것처럼 보였던 점이다. 금요일 밤이었고, 행사가 다음 날 새벽 5시 30분까지 예정되어 있었기에 거의 이틀을 근무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이후 그에 상응하는 휴무가 주어졌을 것이라는 예상도 했다. 그럼에도 늦은 시간까지 자리를 지키는 모습은 분명 보기에 나쁠 것이 없는 것이었다.
행사에 참여한 참여자들도, 행사를 주최한 관계자들도 모두 저마다의 진지함을 품고 있었다.
술과 음식, 노래와 음악 그리고 책이 있는 그 밤은 아름답게 진지했다.
학부시절 전혀 무관한 전공인 '문헌정보학과 필수과목'을 수강 신청했던 적이 있었다.
문헌정보학과 졸업생은 사서가 될 것이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사서에 대한 호기심을 풀어볼 생각으로 정말 가벼운 마음에 신청했었다. 강의 설명이 있던 날 교수는 한 학기 동안의 일정을 대략적으로 설명했다. 그 설명은 몹시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그 설명을 받아들이는 학생들의 태도는 대단히 몹시도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교수는 수업 계획에 한 학기 동안 읽어야 할 책이 15권 정도라고 밝혔다. 한 달이면 충분히 읽을 수 있는 양이라고 생각했다. 교실 여기저기서 터져나온 반응은 '지나치다'거나 '너무 많다'는 것이어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사서를 포함한 '문헌과 정보'를 다루는 분야에서 일하게 될 친구들이 한 달도 아니고 한 학기 동안 15권의 책을 읽어야 하는 것에 이런 식으로 반응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
설명이 끝나고 수업을 마칠 즈음 교수가 나에게 한 말은 더 기가 막혔다.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이 수업은 문헌정보학과 학부생을 위한 수업이니 학생은 수업을 빼주세요."
그것은 부탁이 아니었다. 명령이고 통보였다. 갑자기 현실이 내 앞에 돌아와 있었다.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이나 다를 것이 없었다. 그래서 조금의 아쉬움도 없이 수업을 취소해버렸다.
그때 그 강의실에 있던 학생 가운데 지금 사서로 일하고 있는 사람이 있을까?
있을지도 모른다. 사서가 아니더라도 어딘가에서 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도 자신의 일을 진지하게 여기는 마음으로 해 나가고 있을까? 아니면 단순히 경제적인 이유로 일하고 있을까?
거의 모든 관계가 그렇지만 사람과 책과의 관계 역시 진지함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 진지함이란 진지한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도, 어려운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도, 진지하게 읽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만화책이나 무협지를 읽어도 얼마든지 진지할 수 있다. 진지함은 외적인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고 있으며, 본질 혹은 핵심으로써 대하고 있는가 하는 마음가짐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도서관 사서분들은 친절하다. 그러나 너무나 바빠서 그 친절함이 활약할 기회를 거의 얻지 못한다. 얼마큼 친절한가 하면 도서관 방문자가 놓고 간 뻥튀기를 며칠 씩이나 먹지 않고 보관해주실 정도로 친절하다. 그때는 정말 감동했었다. 며칠이나 뻥튀기를 놓고 왔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스스로에게도 놀랐고 말이다.
뻥튀기가 중요한 게 아니라 앞으로도 사서 분들의 친절함에 몇 번이고 감동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들은 자신의 일을 진지하게 여긴다. 마치 자신의 책을 대하듯 도서관의 책을 관리하고, 자기의 친구에게 빌려주듯 기꺼이, 친절하게 빌려준다. 그러나 모든 사서분들이 그렇게 진지한 것은 아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모든 사서가 책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은 최고의 사서는 '책을 읽지 않는 사서'라고 말하기도 했다. 제목과 표지, 목차로만 책을 대함으로써 편견이나 선입견을 갖지 않아야 최고의 사서가 될 수 있다는 맥락에서 말이다. 납득은 간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서는 책을 좋아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책을 더 진지하게 대할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출판사로 오면 그 진지함은 조금 더 사적이고 경제적인 사유에 얽매이는 경향이 강해지는 것처럼 보인다. 어떻게 말하든 책이란 팔기 위해 만들어진 상품이다. 당연히 고객에게 홍보를 해야 하고, 판매가 되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러나 경제적 문제가 개입함으로써 진지함이 훼손되는 일이 적지 않다.
일례로 '더클래식'이라는 출판사는 대단히 저렴한 가격으로 번역본과 영어 판본을 함께 제공한다. 현재도 온라인 서점에서 100권에 달하는 책을 30만 원도 되지 않는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실제로 가격에 부담을 갖고 있는 독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호기심 혹은 싸다는 이유로 이 책들을 산다. 그러나 더클래식 고전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번역이 얼토당토않을 만큼 엉망이라는 것이다.
한 번은 활동 중인 카페의 한 회원이 올려놓은 더클래식 판 <그리스인 조르바>의 감상을 접할 기회가 있었다. 재밌게 읽었던지 책을 읽고 느낀 교훈까지를 제법 길게 적었었다. 그러나 문제는 내용이 달랐다는 데서 생겨났다. 나 역시 <그리스인 조르바>를 재밌게 읽었었기에 댓글을 남겼다. 그러나 그 댓글은 감상을 작성한 분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분은 대단히 실망했다는 답글을 남겼다. 다시 읽게 되지 않을 것 같다는 배신감이 담긴 답글이었다.
번역이 나쁠 수는 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그 번역의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번역보다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있다고 밖에 달리 어떻게 해석하면 좋은 것일까? 물론 완벽한 번역이 있을 수는 없다. 그래도 거의 완벽한 번역이나, 더 나은 번역은 있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그만큼 진지한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싼 값에 같은 이야기를 읽을 수 있다면 당연히 싼 것을 사는 것이 옳다. 그러나 싸다는 이유로 샀다가 다시는 책을 가까이 하고 싶지 않게 만들어버리는 경험을 하게 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출판사의 진지함이다. 책은 상품이지만, 출판사의 얼굴이며, 미래다. 한 권의 책에 대한 실망이 결별의 계기가 될 수 있는 거다.
서점과 책을 홍보하는 업체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이들에게도 진지함이 필요하다. 서점은 책을 파는 곳이므로 이곳에서도 책은 상품이다. 그러나 서점은 출판사보다 더 직접적으로 독자와 관계를 맺는 공간이자 매체다. 독자를 낚거나 기만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서점에 실망한 독자는 출판사에도 실망할 수밖에 없다. 독자의 입장에서는 서점이나 출판사 모두 하나 혹은 한통속처럼 보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책을 홍보하는 업체는 돈을 받은 만큼 일해야 하기에 도서의 함량 혹은 진실성에는 개입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얼마나 많은 홍보의 신들이 계신지는 모르지만 낚이기도 여러 번 낚였었다. '최고의 책'이라고 하기에 예약판매 때 사서 한참 만에 받아서는 받자마자 읽고 내다 버렸던 일도 있다. 정말 최악이었다. 이런 경험이 축적된다면 책을 만든 출판사뿐 아니라 홍보를 접한 매체까지 불신하게 되어버린다. 결국 책을 홍보하는 업체에서도 엄격한 기준을 갖고 도서의 홍보를 대행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출판계가 어렵다고 하는 말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지금이 유난히 더 어려워 보이는 것 역시 분명 사실이다. 정부에서는 도와주겠다고 하면서 은근히 방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야말로 '최악'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그것이 얄팍한 수를 써도 되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오히려 더 진실하고 진지하게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필요할 것이라는 거다.
조금 이야기가 길어졌지만, 별 내용이 있는 글도 못 된다. 그저 혼잣말 혹은 넋두리 정도 될 뿐이리라.
오래전부터 책을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출판사에도 들어갔었고, 서점에서도 일해봤으며, 그 밖에도 책과 관련된 활동을 계속 해왔다. 그러나 지금도 모르겠다. 세상의 한 켠에서는 책을 읽는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하기도 한단다.
"진지 빨지 마라."
해석하자면 진지한 척하지 말라는 것이리라.
그러나 진지한 척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진지한 거다.
개츠비는 "이해시키기가 너무 힘들다"고 말했었다. 이해하는 것도 어려운데 하물며 이해시키기가 쉬울 리가 있을까.
이 넋두리는 오늘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한 혼잣말 같은 거다. 아직 스스로도 많이 이해하고 있다고 말하기가 부끄러운 수준이기에 누군가를 이해시킬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책을 진지하게 대하는 사람들이 늘었으면 좋겠다. 다시 말하지만 어려운 책을 읽는 게 진지한 것이라 믿지 않는다. 만화책을 읽더라도 얼마든지 진지해질 수 있다.
출판의 미래가 어둡다고 한다. 책의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한다. 그러나 책을 진지하게 대하는 사람이 사라지지 않는 한 책의 가치가 영영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니 다른 사람이 그렇게 하기를 기대하기보다 내가 먼저 책을 조금 더 진지하게 대하는 일을 시작하는 건 어떨까?
책 속에 미래가 있는지, 현재가 있는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러나 당분간은 책이 그 의미를 잃어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점만은 확신한다. 왜냐하면 아직까지는 진지한 마음으로 책을 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지하다는 것은 간단히 말하면 목적으로 여긴다는 것이다. 책은 얼마든지 목적이 될 수 있다. 책을 읽는 목적과 삶의 목적이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삶은 나아가고, 책은 그 삶을 나아가게 한다. 혹은 그 반대이기도 하다.
진지하게 책을 대하는 사람들을 사귀고 싶다. 그 사람들과 만나고 어울리며 삶의 다음 순간을 채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