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관리론] 데일 카네기
“사랑하지 못할까 봐,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을까 봐 두려워하지 않겠다”
- 데일카네기 [자기 관리론] 중에서 -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가? 만약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면 당신이 가장 궁금한 것은 상대도 자신처럼 당신을 사랑하는지 일 것이다. 그때부터 마음에 근심이 생겨난다.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어쩌지, 아니면 이미 상대의 마음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자리하고 있으면 어쩌지, 혹은 내가 사랑하는 만큼 상대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어쩌지… 등등 그렇게 사랑은 또 다른 이면의 근심을 만들어낸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상대의 사랑을 확인하고자 한다. 자신은 사랑의 감정을 들키지 않으면서 상대의 나에 대한 사랑과 관심의 정도를 측량하고자 한다. 그렇게 사랑의 감정은 근심과 함께 찾아온다.
요즘 유튜브나 인스타(릴스)에는 이성의 마음을 알아챌 수 있는 수많은 연애 전략들까지 알려준다. 갖가지 심리 테스트와 트릭들이 즐비하다. 아마 이런 영상을 찾아 보는 자들은 누군가를 머릿 속에 떠올리며 그 테스트와 트릭들을 적용해 보려 할 것이다. 유튜브 영상 속 연애 전략을 설명하는 사람들은 너도 나도 모두 연애 박사이고 사랑 애널리스트 들이다. 과연 그들은 그들이 말하는 완벽한 연애와 사랑을 하고 있을까? 상대의 마음을 모두 간파하면 이상적인 연애와 사랑을 할 수 있을까?
그들은 그들의 경험을 통해 혹은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마치 정답인 것처럼 말한다. 그들은 갖가지 연애와 썸 상황을 분석하고 그것을 진단하고 판단한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이 보편화 대중화되길 바란다. (조회수와 구독자가 늘어나길 바라는 것처럼…) 이런 연애 그리고 사랑에 관한 수많은 조언들이 과연 연애와 사랑을 보편화시킬 수 있을까? 이런 영상들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연애하고 사랑하고 결혼하는 이들이 늘어나야 하는데 실상은 그 반대이다. 아이러니(모순)이다.
물론 유튜버들과 인플루언서들은 더 많은 이들이 연애하고 사랑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심사 숙고하여 알려준 방법들이리라. 하지만 그 방법들이 보편화되면 인간은 자신의 드러나버린 감정을 숨기기 위해 더욱더 치밀해진다. 실전용 영상들을 보고 익히면서 내 앞에 있는 상대의 의도와 심리를 읽으려 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그런 상황에 처하지 않으려 의식적으로 행동하게 된다. 더욱 교묘해진다. 그리고 그것이 사랑과 연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게 된 것이라 여긴다. 그런데 사랑과 연애가 좀 처럼 잘 되지 않는다. 이상하다. 이론과 실전이 다르다는 것만 계속 깨닫게 된다. 이론과 실전 사이의 괴리 속에 갇혀버린다. 사랑과 연애에 관한 너무 많은 사전 지식이 자신이 사랑하고 연애하지 못하게 만듦이 아닐까? 사랑은 지식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알지 못한다.
사랑과 전쟁
이건 마치 우리가 사랑을 하기 위해 병법서를 익히는 것과 같다. 전쟁에는 병법이 있지만 사랑에도 병법이 있을까? 모든 관계와 상황에서의 대처 방법이라고 해야 할까? 갑자기 [사랑과 전쟁]이 떠오른다. 그렇게 자신을 내어주지 않고 드러내지 않고 상대를 알고 상대가 먼저 내어주길 바란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하는 사랑이 전쟁과 비슷하지 않은가. 사랑은 허물을 벗고 나를 먼저 드러내고 나를 상대에게 내어주는 과정인데 현실의 사랑은 항상 상대가 먼저 드러나길 상대가 먼저 다가오고 내어주길 바라는 모습이다. 알다시피 전쟁은 정보전이다. 사전에 상대를 간파하고 먼저 손을 쓰는 것이 전쟁의 승패를 판가름한다.
사람과 사람 간에 관계는 그렇게 논리적이고 이성적으로 분석하고 따져가면서 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건 애정관계가 아니라 이해관계이다. 애정관계는 상대에게 관심이 집중되지만 이해(利害 : 적은 것을 주고 더 많은 것을 얻어내는) 관계는 항상 상대의 눈치를 살피게 된다. 사랑하면 나를 잊어버리고 상대에게 모든 신경이 집중되지만 득실을 따지는 관계는 항상 상대를 보며 나를 의식한다. 상대가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살피는 것이다. 내외(內外)가 일치한다면 상관없지만 내외의 불일치는 부자연스러움으로 드러나게 마련이다. 단지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 위장된 모습으로 상대를 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어떻게 될까? 더욱더 치밀해지고 교묘해진다. 이쯤 되면 이제 서로의 말과 행동에 진정성을 파악할 수 없게 된다. 모든 것이 트릭이고 테스트가 아닐까 의심하게 된다. 삶의 모든 상황이 시험 같다. 서로가 서로에게 진실되면 드러나는 현상조차도 트릭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생겨난다. 진정성을 알 수 없게 된다.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먼저 더 많이 더 빨리 알아차리려던 전략이 서로에게 더 많은 의심과 의혹만 남긴다. 누구도 무엇도 믿기 힘들어진다.
기만과 간파 사이
어느 누가 자신의 마음과 머리 속을 간파당하는 것을 좋아하겠는가? 인간은 본디 나를 가리고 상대를 보고자 하는 본성을 지녔다. 짙은 선팅에 덮인 차 안에 있으면 편안함을 느끼지 않는가? 이런 공간 안에서 홀로 운전을 하다보면 또 다른 나의 모습이 드러나는 경험을 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내가 드러나지 않는 공간에서 나의 숨겨진 본성이 드러나는 법이다. 들키지 않기 때문이다.
이건 또한 세상을 살아가는 병법과도 같다. 손자병법에도 그렇게 나와 있다. 전면전을 피하고 상대를 기만하고 기습해서 손쉽고 빠르게 승리하는 것 그것이 전쟁터 같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사랑도 그렇게 하고 싶다. 그리고 모두가 자신이 사랑 병법의 전문가인 양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간파하는 병법 36계를 익히고 가르치지만 그 사랑 병법이 보편화 대중화 되면 그건 더 이상 병법이 아니다. 이젠 그 36계 병법까지 피해 가면서 자신을 숨겨야 하는 현상이 벌어지게 된다. 그럼 48계 72계로 병법은 계속 늘어나고 복잡해져 간다. 그러면 사랑은 더욱더 묘연해진다. 이젠 도저히 상대가 무슨 마음을 품었는지 알 수 없게 된다. 물론 병법가(전문가)들은 더욱더 뛰어나고 교묘하고 미묘한 차이까지 구별하고 간파하는 법을 찾아낼 것이다. 전략은 점점 고도화 첨단화되어 간다. 너무 어렵다. 어려운 사랑은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사랑은 두 사람이 실존의 한가운데에서부터 서로 결합될 때, 그러니까 각자가 자기 실존의 한가운데에서부터 자기 자신을 체득할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중에서 -
'사랑'과 '전쟁'은 완전히 상반되는 느낌의 단어임에도 우리는 왜 사랑을 전쟁에 비유하게 되었을까? 모순이지만 실제 우리는 모순을 경험하며 살고 있다. 서두에서 내가 인용한 문구처럼 우리는 어쩌면 사랑을 생각할 때 항상 상대를 먼저 떠올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전쟁은 상대편에 대한 두려움이 존재한다. 사랑도 처음에 근심과 함께 찾아온다고 설명했다. 그건 사랑이 받아들여 지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건 전쟁에서 패배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도 같다. 그렇기에 사랑을 전쟁처럼 접근한다. 기만과 정보전으로 상대를 파헤치고 분석해서 말하고 행동한다.
당신은 미군의 최첨단 군사장비와 탐색장비를 가졌는가? 그렇다면 해볼 만하겠다. 하지만 그렇게 상대를 쓰러뜨린다 한들 무엇하랴? 전쟁은 승리하면 끝이지만 사랑은 이제 시작이다. 뭐 전쟁처럼 상대에게 전리품(육체와 물질≒성욕과 소유욕)만 취하는 것이라면 상관없다. 하지만 상대와 삶의 동반자로 살아가려 한다면… 어떨까?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상대에 대한 성적 관심과 소유한 물질에 대한 관심은 길어야 1년을 넘지 않는다. 결국 다른 곳으로 눈길이 간다. 다른 상대와 또 다른 가지지 못한 물질로. 욕망은 끝이 없다.
사랑은 나를 아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가식과 허세와 갖은 현실의 욕망으로 뒤덮여 가려진 자신을 먼저 찾아야 한다. 진정한 자아가 드러나는 과정이다. 내 안에 내가 드러날 때 내가 자연스러워진다. 타인을 정복하고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정복하고 지배하는 것이다.
“주변의 사물과 사람에 대한 생각을 바꾸면 사물과 사람도 바뀐다는 것을 알아챌 것이다…(중략) 우리의 목적에 구체적인 형상을 부여하는 신성(神性)은 우리 안에 있다. 바로 자기 자신이다. 인간이 성취하는 모든 것은 생각의 직접적인 결과물이다.”
- 제임스 레인 알렌 [위대한 생각의 힘] 중에서 -
그럼 변화가 생겨날 것이다. 그 변화는 나로부터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나의 주변으로 퍼져나간다. 내가 사랑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사랑을 계속 생각하면 된다. 사랑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다. 나의 생각이 사랑으로 가득 찬다면 나의 눈은 사랑을 보게 되고 나의 귀는 사랑을 듣게 된다. 무슨 비현실적인 헛소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의 사랑이 현실에서 실현되지 않으면 그것이 무슨 소용인가?' 물론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 이런 생각은 우리가 현실에서 말하는 사랑이 실현되건 실현되지 않던 그것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왜냐 받을 것을 생각하지 않는 사랑이었고 두려움도 없었으며 두려움이 없었기에 아픔(상처) 또한 없다. 그리고 당신의 이런 기운은 상대도 언젠간 느끼게 된다. 다만 그것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함은 상대는 아직 자신 안에 두려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사랑받지 못할까 봐 두려운가? 사랑하는 이와 사랑하는 것들이 두려움(근심)을 안겨준다면 당신은 아직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있다. 또한 지금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건 아직 진정한 자아(자신)를 찾지 못했고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랑은 내 안에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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