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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건니생각이고 Mar 11. 2019

아빠, 나 네 살이거든!?

그래서???

 그렇습니다. 피해 갈 수 없는 시기라 단단히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또, 이렇게 급격하게 강해질 줄 몰랐습니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를 수없이 돌려 보며 다짐했던 '역지사지'도 소용없었습니다. 아이도 터지고, 엄마도 터지고 그 옆에 있던 저도 터집니다. 주변에서 보기엔 그저 '아웅다웅'하는 걸로 보이겠지만, 네 살 고집의 생생한 현장 속 저희 부부는 하루하루가 고난의 연속입니다.


© marcus_wallis, 출처 Unsplash


 사진만 보면 한없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비글입니다. 단, 정지해 있을 때만 그렇죠. 안타까운 건 정지해 있는 순간이 '거의' 없다는 사실입니다. 네 살이 된 딸내미를 얘기하려 했는데 저도 모르게 비글 얘기를 하고 있네요. 그렇습니다.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가만히 자고 있는 모습은 사랑 그 자체인데, 일어나서 활동하기 시작하면 '고집'의 결정체가 따로 없습니다. 독립적으로 키우고자 양치, 옷 입기, 손 닦기 등을 웬만하면 스스로 하게 했던 우리 부부입니다. 그 부작용인지 아니면 네 살에 찾아오는 과도한 독립성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요청하기 전에 도와줬다간 불똥이 튑니다. 물론, 안 도와줘도 불똥은 튑니다.


"어쩌라고!"


 소리치고 싶지만 참습니다. 유난히 말이 빨라 기특하고 이뻤지만, 고집불통인데 말까지 잘하니 당해낼 재간이 없습니다. 네 살 답지 않게 또박또박 정확히 원하는 걸 얘기하니 '적당한 둘러대기'가 통할리 만무합니다.

 

 한 번은 아내와 작정하고 버텨봤습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요. 그치지 않는 울음에 급기야 게워내기 시작합니다. 그 와중에도 고집은 그칠 줄 모릅니다. 여기서 달래주면 고집이 '수단'으로 자리 잡을 수 있기에 저희 부부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이 순간을 놓치면 이후엔 몇 배로 힘들어질 걸 알기에 안쓰러웠지만 단호하게 교육했습니다. 결국 딸아이는 고집을 꺾었고, 격렬했던 기싸움은 저희 부부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말이 승리지 사실 진이 다 빠졌습니다. 딸아이도 각인이 됐는지, 조목조목 앞으로는 고집부리지 않고 어떻게 하겠다는 다짐까지 하더군요. 마음이 짠했지만 어쩌겠습니까. 다 과정인걸요. 부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만을 간절하게 바랄 뿐이었습니다.


© cosmictimetraveler, 출처 Unsplash


 끝이 없어 보이는 육아이지만 견뎌야 합니다. 키우는 부모도 힘들지만, 성장통을 겪는 아이도 못지않게 힘들 겁니다. 이유 없는 짜증이 이어지는 시기를 겪으면 급격한 성장을 보여주던 딸아이입니다. 부모로서 마땅히 견디고 기다려줘야겠지요. 하지만 끝판왕도 이길법한 네 살 고집 앞에 엄마 아빠는 두 손 두 발 다 들게 됩니다.


"이제 시작이야"


 누군가 그랬습니다. 이제 시작이고, 지금까지의 행복한 기억으로 앞으로 다 참아내야 하는 거라고요. 먼저 이 길을 걸어본 인생 선배의 진심 어린 조언이라 우선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다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세상이 변한 만큼 부모와 아이의 애착관계도 변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이 관계는 더욱 단단해질 거라 믿습니다. 성장하면서 친구를 비롯한 다양한 관계가 생겨나겠지요. 이에 자연스레 부모와 보내는 절대적인 시간은 줄어들 테고 말이죠. 서운하겠지만 어쩌겠습니까. 다만, 부모와 함께하는 시간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도록 더 인내하고 노력해야겠습니다.


© laurenlulutaylor, 출처 Unsplash


신부 입장!


 봄이 되니 주변에 결혼식이 많습니다. 신부가 입장할 때 옆에 가만히 손 잡고 행진하는 '아빠'를 보면 남일 같지 않습니다. 마음 한가득 축하하면서도 예전하고 다른 묘한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딸 가진 아빠의 청승이죠. 오지 않을 것 같은 순간은 늘 찾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생각만 해도 허전하고 서운하지만 부모의 숙명인 걸 어쩌겠습니까.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순간인 만큼 지금의 '네 살 미션'도 기꺼이 감수하고 아내와 함께 잘 헤쳐 나가야겠습니다. 언젠가 돌아보면, 참 그리울 '지금'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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