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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경 Oct 18. 2023

경계선 지우기

마술 같은 광고


  깨끗한 테이블보 위에는 아무것도 놓여있지 않았다. 페도라를 쓴 마술사가 “딱”하고 손가락을 튕기자 우묵한 프라이팬이 나타났다. 그는 하얀 손수건을 펼치더니 프라이팬 밑에 깔았다. 다시 한번 “딱” 소리와 함께 프라이팬 안에서 팝콘이 튀겨지더니 냄비에 가득 차올랐다. 손가락을 튕길 때마다 나타난 조리 기구에서는 달걀이 익고 찌개가 끓었다. 그러고는 조리 기구들을 쓸어낸 마술사가 빈 테이블 위에 앉았다. 언제 불을 피웠느냐는 듯 천연덕스러운 표정은 마술사만이 아니라 함께 앉은 대여섯 살 남짓해 보이는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인덕션 언더레인지 광고다.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 없는 Magic. 마술 같은 요리.”


  광고 카피가 아니라도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답은 간단했다. 테이블 아래에 인덕션 레인지가 감춰져 있는 것이었다. 두꺼운 식탁을 지나 냄비만을 유도가열 한다는 첨단 기술. 솔깃했다. 65mm 두께를 뚫고 전해질 수 있는 열, 그 열을 받아 끓는 요리. 그런데도 주변에는 뜨거움도 불꽃도 전해지지 않는 마술 같은 조리 기구라니.    

 



하이브리드의 세계     


  가스레인지가 여성 폐암의 주범이라는 보도도 있던 참이었다.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떠나 화재 위험이 없고 아이들도 안전하다니 얼마나 좋은가. 그래서 여기저기 광고를 더 뒤적이다 눈이 멈춘 곳은 하이브리드 전기 레인지였다. 하이라이트와 인덕션을 갖춘 것이다. 아무 주방 기구나 사용할 수 있는 하이라이트와 자석 용기만 사용할 수 있는 인덕션 레인지를 혼합해 놓은 것이었다. 


  하이브리드란 사전적 의미로는 이종(異種), 혼합, 혼성, 혼혈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또한 여러 가지 기술이나 기능이 융합되어 더 높은 성능을 가진 제품을 일컫기도 한다. 언제부터인지 우리 일상생활에 하이브리드 제품이 여기저기 자리 잡고 있다. 구두와 슬리퍼 또는 운동화와 구두를 결합하거나 틴트와 블러셔, 공기청정기와 냉·난방기를 결합한 제품들이 의외로 높은 판매율을 보인다고 한다. 사람들은 점점 하이브리드에 익숙해지고 그 편리함에 빠져드는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하이브리드의 역사는 정말 오래된 것이다. 


  뮬(Mule)은 ‘노새’다. 암말과 수탕나귀의 교배로 태어난 혼혈종 즉 하이브리드다. 말처럼 힘이 세고 당나귀처럼 끈기 있는 동물. 말과 당나귀의 좋은 점만을 물려받았다는 잡종강세의 대표인 노새. 그것은 성서에도 나올 정도로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런데 똑같은 표기인 뮬의 또 하나의 뜻은 구두인 듯 슬리퍼인 듯, 구두도 아니고 슬리퍼도 아닌 신이다. 구두처럼 정장에도 신을 수 있고 품격 있는 실내화로도 신을 수 있다. 그리고 뮬이라고 하면 노새보다는 이 구두를 먼저 생각한다. 뮬의 두 가지 뜻은 그것들이 모두 하이브리드인 것이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도 핸드폰 화면에는 전기 레인지의 광고가 계속 깜박거렸다. 핸드폰이 전화기이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을 전화기만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아니 어쩌면 전화는 이미 부차적인 기능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전화 기능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카메라, MP3, 내비게이션 등의 기능이 휴대폰의 성능을 결정하는 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사람들은 그것을 전화용으로만 사용하던 핸드폰과 구분하여 스마트폰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난 지금 그것으로 인터넷이라는 망망대해를 누비며 낚시질하고 있다. 진정한 하이브리드의 세계는 바로 손안에 있는 기계가 아닐까. 그것은 전화기가 아니라 새로운 세상이다.  

   



하이브리드의 결정판     


  어떤 연수를 참관할 때였다. 자신의 도덕적 소신을 영어로 가사를 만들고 작곡하여 율동과 함께 표현하는 과정이었다. 개인의 가치관을 어학과 문학, 음악, 무용 등의 예체능 분야까지 포함하여 표현하는 융합 교육방식. 주입식 교육 세대인 나는 그저 감탄할 뿐이었지만 젊은 교사들은 재빠르게 움직이며 해야 할 일을 분담하고 있었다. 


  짧은 순간이지만 젊은이들의 재치와 기발함이 엿보이는 무대가 즉석에서 마련되었다. 누군가 카피를 만들고 그것으로 영작하고 작곡하고 안무했다. 다 알아듣지 못해도 몸짓과 리듬으로 그냥 알아들어지는 그런 무대. 세상은 무섭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껴야 했다. 그런데 그 무대를 만드는데 가장 돋보이는 역할을 한 것은 핸드폰이었다. 사진을 찍고 음악을 들려주고 번역까지도 서슴지 않는 하이브리드의 결정판 스마트폰.


  그 안에는 온 세상이 들어있다. 그리고 그것은 날마다 진화하고 있다. “스마트”라는 이름이 붙은 수많은 기기가 휴대폰과 연결된다. TV는 물론 밥솥이, 오븐이, 냉장고가, 에어컨이 스마트란 이름표를 달고 새롭게 변신하고 있다. 각종 앱을 설치하여 웹 서핑, VOD 시청, SNS, 게임 등 다양한 기능을 활용할 수 있는 스마트 TV, 스마트폰으로 레시피를 찾아 오븐에 터치하면 요리가 시작되는 스마트 오븐. 냉장고에 음식물의 유통기한을 저장해 놓고 관리한다든지 가족들의 건강에 따른 음식물 관리도 한다는 스마트 냉장고. 그런 것들이 여러 가지 모습으로 곁에 다가오고 있다. 뿐만 아니다. 손목에도 자리 잡아가고 안경에도 둥지를 틀고 있는 스마트폰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세계는 손 안에서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 참으로 편리한 세상이다. 스마트폰. 그 안에 깃들이는 세상이 어디까지가 될까. 어쩌면 상상력의 끝 그곳이 바로 스마트폰에 융합된 세계가 아닐는지. 


  광고를 클릭하고 주방 기구를 탐색해 보는 짧은 시간에도 스마트폰 안에서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들이 그치지 않았다. 대선 후 급하게 변하는 정가의 움직임이 검색어 상위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경계선 지우기


   2017년 5월은 역사가 새로 쓰인 달이었다. 탄핵당한 대통령을 대신해 새 대통령을 뽑았다. 그 과정에서 마주 섰던 촛불과 태극기는 날 선 경계를 그으며 서로 상처받았다. 어느 것도 상처받아서는 안 되는 소중한 것들인데. 무엇이 그렇게 금을 긋게 했을까. 촛불의 간절한 뜨거움을, 태극기의 간절한 휘날림을 이제는 서로 보듬어야 할 때가 아닐까. 애초 그들의 바람도 가야 할 곳도 하나였던 대한민국. 이제 경계선을 지우고 하나 되어야 하는 때. 


  때맞춰 쏟아지는 ‘연대’나 ‘협치’라는 말이 낯설지 않다. 그 말을 들으면 일회용 종이컵이 생각난다. 한순간의 이권을 위해 헤치고 모이던 사람들의 변신술이고 이합집산의 포장지였던 단어들. 그들은 국민을 주권자로 떠받들겠다고 했다가 민초라는 이름으로 짓밟기 일쑤였다. 하나인 것 같으면서도 경계선이 선명했던 국민과 위정자. 


  다시 언더레인지 광고를 클릭한다. 마술 같은 요리가 재생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기는 열이 눈앞의 팝콘을 빵빵 터뜨리고 음식을 끓게 한다. 다시 보아도 신기한 마술 같은 일. 그런 일이 정치 현장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것일까. 불은 가장 낮은 곳에 보이지도 않게 감춰두고, 그 뜨거움으로 여린 것들을 어루만져 주는 새로운 융합의 세상. 살만한 협치의 세상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감추어진 것과 보이는 것이 어우러져 하나 되는 마술 같은 광고가 우리 정치 현실 융합의 세계이길 빌어본다. 극렬하게 부딪치던 촛불과 태극기, 두 몸짓이 먼 훗날 아름다운 역사가 되고 문화가 되어 남기도 빌어본다. 경계선이 지워지고 서로 보듬은 역사의 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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