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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이경 Oct 19. 2023

 오이꽃

  제철이라선지 오이가 크고 실하다. 겨울 오이보다 한 치는 길어 보이는 것이 휘어진 데도 없이 곧게 자랐다. 이렇게 실한 열매를 딸 때 얼마나 뿌듯했을까 생각하며 미끈한 몸체를 정성껏 씻었다. 손끝에 검불 같은 것이 묻었다. 말라비틀어진 오이꽃이다.


  ‘뭐 하러 여기까지 따라왔을까?’


  물에 흘려보내려는데 자꾸 손바닥에 붙었다. 왠지 가슴이 아릿해졌다.


  오이꽃은 장미꽃처럼 화사하지도 않고 호박꽃처럼 크지도 않다. 그 꽃을 보고 감탄하는 사람도 없고 그것을 노래하는 사람도 없다. 반기는 사람은 농부뿐이기 일쑤다. 그러나 잠시라도 눈여겨본다면 작지만 옹골차고 다부진 금빛 별꽃에서 나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


  홀로 피는 수꽃과 달리 암꽃은 필 때부터 아기 오이를 달고 핀다. 꽃으로 피어나는 순간부터 어미로서 짊어질 짐을 지고 태어나는 꽃이다. 아기 꽃이 아기 오이를 업고 있는 모습을 보면 어린 시절 세 살 터울 누이 등에 업히던 동생이 생각난다. 포대기를 발끝에 끄는 누이와 그 누이 등에서 칭얼거리던 동생. 눈시울이 시큰해지는 풍경화다.


  작은 꽃에 업힌 아기 오이는 덩굴손이 한 뼘씩 올라가는 대로 몸을 조금씩 늘이다 보면 어느새 가시 수염이 까슬까슬해지고 길쭉해진다. 그때쯤 활짝 펼쳤던 별꽃의 금빛 날개는 힘없이 처진다. 허리가 휜다는 것은 그런 것일까. 후줄근해진 꽃이 제 매무새를 살필 새는 없다. 오이가 자라 갈 앞길만을 살피기에 여념이 없다. 


  등에 산 같은 짐을 지고 하늘조차 뒤로하고 땅만 바라보며 시들어 가는 꽃의 시간. 그것은 매일 한 올씩 제 몸속 금빛 실을 빼내는 일이다. 덩굴이 흔들릴까 염려하며 한 올, 돌바닥에 닿지 않을까 두리번거리며 한 올, 곁길로 휘어질까 구부러질까 애태우며 또 한 올…. 금빛은 사위고 날개는 허물어진다.


  마침내 곧고 미끈하게 자란 오이 끝에 매달린 검불 같은 것. 그것은 꽃이라고 하기엔 너무 남루하다. 그 남루에서 묻어나는 지극한 시간들. 차라리 목련이나 동백처럼 향기 품은 꽃이었을 때, 금빛 한 오라기쯤 남았을 때, 손 흔들고 훌훌 떨어져 내렸더라면….


  장수 시대 우리 모습이 오이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말라붙은 검불 같은 것이나 아닐는지. 어쩌면 떠나야 하는 때에도 떠나지 못하고 질척거리는 것이나 아닐는지. 


  그런데 어떤 마트에는 켜켜이 쌓인 오이들이 모두 산발한 노파의 머리처럼 마른 꽃을 달고 있다. 싱싱함의 증표로 내세우는 상술이란다. 그런 오이꽃은 떨어지고 싶어도 떨어지면 안 된다. 인고의 시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등이 허물어지도록 키운 제 새끼들이 빛나도록 허물어진 몸을 더 드러내야 한다. 그 남루한 몸으로 마지막 기도를 올려야 한다. 문득 금빛으로 환하게 피었다가 하얀 웃음으로 떠나는 민들레 갓털의 그 표표함이 생각나 목울대가 뻐근해진다.


  오이를 씻는다. 오이꽃 하나가 떨어진다. 손에 받아 쥐고 흐르는 물줄기 아래 한참을 망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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