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캐나다에서 50만 원만 모아보자.

by 캐나다 부자엄마

돈이 어느 정도 모였다.


처음엔 50만 원, 그래$500불만 모으자고 생각했다. 50만 원을 모으고 그다음을 다시 생각하자고 했다.

난 시간당 15불을 받았다. 한국돈 만오천 원을 받았다. 그게 모여 한 달이면 $2500불. 한국돈 이백 오십만 원을 벌 수 있었다. 출퇴근길엔 오며 가며 빈병도 주웠다. 그건 한 달에 $20불에서 30불 사이. 그 정도 되었다.


내가 사는 반지하는 한 달에 $600불 정도 돈을 냈다. 핸드폰은 사지 않았다. 어차피 연락할 사람들도 없었다. 인터넷은 친절한 앞집 이웃이 와이파이 번호를 공유해 주었다. 잘 잡히지 않는 가느다란 와이파이라 연결이 끊어졌다. 이어졌다 했다. 그래도 감사한마음이 더 컸다. 그런 마음은 가벼운 게 아니니까. 남을 돕는 마음 같은 거. 나에게 이득이 없어도 남을 돕는 마음 같은 건 쉬운 게 아니니까.


허리띠를 졸라맸다. $500불. 50만 원이 모으고 싶었다. 그래서 허리띠를 졸라맸다.


음식은 일터에서 해결했다. 아침 겸 점심을 일터에서 먹었다. 간혹 가다 칼칼한 김치찌개가 먹고 싶었다. 그건 나중에 돈을 정말 많이 벌게 되면, 한국에 가서 그때 먹기로 했다. 가격표를 보지도 않고 김치찌개 곱빼기를 먹어야지.


한국 음식이 그리운 날엔 꿈에서도 한국음식이 나왔다. 얼마나 꿈이 맛있었냐면 일어나서도 입에 쩍쩍 군침이 고였다.


옷은 사지 않았다. 뉴펀들랜드는 비가 많이 왔다. 우비라도 하나 살까 하다 그냥 말았다. 가격이 부담되었다. 아니 사실은 어디서 사야 되는지 조차도 몰랐다. 비가 많이 온날은 물에 쫄딱 젖은 생쥐 같은 꼴을 하고 반지하에 돌아오다가 앞집 아주머니가 헤이해이 하고 날 불렀다. 이렇게 하고 다니면 감기 걸린다고.


물이 뚝뚝 떨어지는 날 집에 들이고선 입지 않는다고 내 몸의 두 배는 되는 남색 비옷을 주셨다. 신지 않는 장화니 우산도 같이 손에 들려주셨다.


너무 많아요. 너무 죄송해서요. 저는 드리는 것 없이 항상 받기만 해서.... 끔뻑거리며 소처럼 뒷걸음치는 나에게 아주머니는 괜찮다며 딸들이 이제는 다 커버려서 입을 사람이 없다며 그것들을 기어코 내 손에 들려주셨다.


내가 사는 반지하 문고리엔 어느 날은 사과봉지가 들려있고 어느 날은 빵봉지가 들려있었다. 처음에는 경계의 눈으로 날 대하던 이웃들이었다. 문고리에 걸린 사랑 같은걸 잔뜩 들고 반지하에 들어선다. 나를 믿어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말아야지. 지금은 불편한 반지하 생활이지만 참아야지. 나중을 위해서. 그래 어렸을 적에 엄마가 프라이팬에 칼집을 내어 구워준 줄줄이 소시지를 난 제일 마지막에 먹었거든. 흰쌀밥을 먼저 한 숟갈 크게 뜨고 그다음에 줄줄이 소시지를 먹었거든. 맨 마지막에. 그럼 진짜 맛있었거든. 참는 거야. 나중에 줄줄이 소시지를 한꺼번에 먹기 위해 지금은 불편해도 조금 참는 거야. 그래. 그러자.


돈이라는 게 정말 재미있는 게 $500불을 버니까 데굴데굴 굴러가. 이제 지 혼자서 구르면서 돈이 불어나더라고. 그게 신기했어. 내 이름으로 된 통장에 그것도 캐나다에서 돈이 있는 거야. 신기하더라. 신이 나더라 돈 모으는 게 얼마나 재미있었냐면 내가 1불만 생겨도 은행으로 가서 저금을 했다니까. 돈이란 게 모이니까 재밌더라고.


돈 모으는 재미로 하루를 살았어. 말이 안 통한다고, 한국에서 왔다고 무시받는 날도 있었고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치사하고 더러운 날도 많았거든. 근데 돈 모으는 재미가 그걸 이기더라. 그래. 오늘만 일하면 돈이 더 쌓이니까. 난 목표가 있으니까.


원래 가시밭길을 지나야 들판이 나오고 꽃길도 나오는 법이니까.

keyword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연재
이전 09화시키는 대로 다 할게요. 캐나다 영주권만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