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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미래 Jan 26. 2023

밤새 안녕하신가요?

친정엄마 팔순 기념 제주도 가족 여행 당시


오랜만에 유 선생님 사모님 이야기를 쓴다. 그동안 친정엄마 일상이 특별한 일 없이 편안하였다는 증거다. 감사하다.


유 선생님 사모님은 오늘도 주간보호센터에 잘 다녀오셨다. 보호센터 대표님께서 아침에 초인종을 누르시면

"네, 나가요."

하시며 빠른 걸음으로 나가신다. 물론 현관 밖에 계시는 대표님께는 들리지 않는다.


여름부터 가을까지는 시간 맞추어 1층 현관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셔서 보호센터 차가 올 때까지 계단에 앉아서 기다리셨다. 하루종일 실내에 계시니 잠시 햇볕을 쬐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겨울이 되면서부터 날씨가 춥기에 현관에서 초인종을 눌러 달라고 부탁드렸다.


끝나고 오실 때는 아파트 1층 현관 앞에 내려드리면 카드키를 찍고 3층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와서 우리 집 현관 카드키를 찍고 집으로 들어오신다. 자서 이만큼 하실 수 있는 것도 요즘 너무 감사하다.


어제 보호센터에서 오시며

"오늘 남자가 점심 먹고 쓰러져서 119가 와서 데려갔어. 그런데 계단이 고장 나서 119가 계단으로 싣고 갔어. 오늘은 나쁜 일이 두 가지나 생겼어."


처음에 무슨 말씀인가 했는데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서 아침에도 저녁에도 계단으로 걸어서 다녔다는 거였다. 보호센터가 3층인데 다리가 불편하신 어르신들이 고생하셨을 것 같다. 인지가 조금 안 좋으시다 보니 엘리베이터가 생각 안 나서 계단이라고 하신 거다.


어제 119에 실려가신 어르신은 오늘 센터에 안 나오셨다고 하신다.


밤새 안녕하신가요

나는 트라우마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눈길 운전이다. 눈이 내린 다음 날 운전하고 출근하다가 큰 사고가 날 뻔한 사건이 있어서 눈 오는 날이나 다음 날 눈이 얼어 도로가 미끄러울 것 같으면 운전하지 않고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또 하나는 시어머니께서 돌아가신 사건이다. 시어머니께서 돌아가신 지 20년이 넘었다. 큰 아들 초등학교 1학년 때 돌아가셨다. 시어머니는 따로 살았는데 시장 다녀오시다가 골목에서 쓰러지셔서 경희대 한방병원에 입원하셨다. 치료를 받았지만 왼손을 못 쓰게 되셨다. 그때부터 우리 집에 오셔서 함께 살았다.


시어머니는 멋쟁이셨다. 그 옛날에도 귀를 뚫으셨고 늘 화장을 곱게 하셨다. 요리도 잘하셨는데 뇌출혈 이후에는 하실 수가 없었다. 우리는 가장 큰 안방을 시어머니와 아들 둘이 함께 쓰고 우리 부부는 작은 방을 사용했다.


그날이 일요일이어서 늦잠을 자고 일어났다. 아들 둘은 일찍 일어나 거실에서 놀고 있었다. 어머니는 평소에 일찍 일어나시는데 이상하게 기척이 없으셨다.


"할머니 일어나지 않으셨네."

큰 아들이

"내가 깨웠는데 할머니가 안 일어나셔."

이상한 기분이 들어 남편이 얼른 안방 문을 열며

"어머니, 아침 드셔야지요."

말씀드려도 기척이 없으셔서 들어가 보니 어머니가 움직이지 않으셨다.


남편이

"어머니."

하고 흔들며 통곡을 하였다. 시어머니가 주무시다가 그대로 돌아가셨다. 전날 저녁도 잘 드시고 주무셨는데 말씀 한 마디 못하고 돌아가셔서 너무 기가 막혔다. 밤새 안녕이란 말을 그때 실감하였다.


친정엄마는 늘 주무시다가 그대로 가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씀하신다. 어르신들이 모이면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 같다. 하지만 자식 입장에선 너무 허망하다.


그때부터 트라우마가 생겼다. 가끔 친정엄마가 시어머니처럼 주무시다가 돌아가시면 어떨까 겁이 난다. 아침에 방문을 열 때마다 조마조마하다.

"엄마, 일어나세요. 복지관 가셔야지요."

"몇 시야."

하는 기척에 마음이 놓인다.


친정엄마는 주간보호센터를 복지관이라고 부르신다. 오늘도 수요일이라 노래교실 선생님이 오셔서 신나게 노래 불렀다고 하신다. 족욕도 하고 식사도 맛있게 하셨다며 즐거워하신다. 친정엄마는 복지관 가는 걸 너무 좋아하신다. 재미있다고 하신다. 친구분들도 있고 매일매일 프로그램도 달라서 체육도 하시고 미술도 하시고 음악도 하신다.  어르신 유치원이다.


어제 쓰러지신 어르신이 어떻게 되셨을지 정이 된다. 잘 회복되셔서 보호센터에 다시 나오시길 바란다.


친정엄마는 오늘도 신나게 복지관에 가셨다. 늘 밤새 안녕하셔서 오래오래 우리 곁에 계셨으면 좋겠다. 유치원 다녀온 아이처럼 오늘도 복지관에서 있었던 이야기 하시며 매일매일 행복하시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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